이야기의 시작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때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 익숙한 동영상을 잘 알고 있다. 서태지가 처음으로 데뷔한 평가무대, 공연, 그리고 역대 최하점수 표시, 심사위원들의 낮은 평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태지는 불사조처럼 솟구쳤다! 서태지는 랩댄스라는 혁명을 대한민국에 도입했다! 그리고 시대의 트렌드가 됐다!
말하자면 이건 꽤 반복됐던 영웅설화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보자. 과연 '난 알아요'가 우리들에게 그토록 새롭게 다가왔는가. 그렇게나 혁신적으로 느껴졌는가. 난 여기서부터 의심한다. 과연 모든 이가 그 '새롭다'라는 의견에 동의했던가. 나처럼, 그저 당시 유행하던 댄스가요의 스피디한 발전형 정도로 여기고 스무스하게 받아들인 이는 아무도 없었나?
그 노래에 그토록 새로움과 혁신의 아우라를 씌워준 이들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건 언제부터였는가. 나는 자꾸만 그 데뷔무대에서의 전설로 돌아가는 후대의 시도들이 타자 입장에서의 팬픽 생성 경향으로 생각된다. 창세신화는 드라마틱해야 하는 법.
오히려 당대에 서태지라는 아우라로써 제대로 생성된 부분은 단순한 영역에서였다. 하지만 중요했다. '환상 속의 그대'로 댄스가요로도 맨날 사랑타령만 안 불러도 된다는 걸 증명해보였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기존의 댄스가수들과 변별점을 마련해주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자산이었다. 얕게 얘기하자면 그건 '뭔가 좀 있어보이는 가사'였으며 그런 사고를 애들이나 듣는, 나이트클럽용으로나 쓰였던 댄스가요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그러니까 서태지라는 '다른' 의미는 보다 직접적인 '텍스트'를 통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서태지라는 아이콘의 특별함에 대한 자산가치가 붙기 시작한다. 이것은 연예인이라고 쓰고 공인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부여될 기대치에 대한 시작이기도 했다.
2집은 은둔이라는 신선한 마케팅 요법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이벤트의 가치를 일깨워줬다. 타이틀인 '하여가'는 예상보단 난해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난 알아요'의 스피드가 보다 빨라진 하더댄패스트적인 변용이자 수용가능한 난해함이었고, 보다 강화된 메탈사운드의 역할과 댄스음악에서의 본격적인 국악 사용을 통한 음악적 신선함-이슈성이 보장되고 있었다. 이때부터 서태지 음악에 들어간 혼합장르적 특징들이 분석되기 시작했고 '죽음의 늪'과 같은 노래에선 보다 파괴적이고 음울한, 그러니까 '댄스가수답잖은 특별함'이 보장됐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서태지란 아이콘에 대한 사회적 짐지우기가 시작됐다. 말하자면 '역할론'의 등장이다.
역할론을 노렸던 건지, 아니면 정말 진심으로 순수하게 할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서태지에게 부여된 은근한, 기존의 것과는 '다른-사회참여적' 이미지가 프러듀스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3집에서부터였다. 보다 현실적 차원에서, 통일문제를 얘기하고 교육문제를 얘기했으며 검열과 노골적으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교실이데아'의 됐어 외침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 10대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서태지는 이제 정치적으로 완벽한 10대-20대의 영웅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서태지에 대한 균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3집부터였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발해를 꿈꾸며'는 얼터너티브록이라고 마케팅됐다. 그런데 그게 얼터너티브록이라고? 누가 그렇게 말한 건가? 누가 그렇게 받아들일 건가? 얼터너티브록이란 게 뭔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아니 애초에 얼터너티브의 정의는 뭐였는가? 만약 그때 얘기됐던 얼터너티브록이란 게 시애틀 그런지를 말하는 거라면, '발해를 꿈꾸며'는 얼터너티브록의 틀로서는 더욱 납득하기가 힘든 노래다. 당시 해외 얼터너티브씬에 익숙한 이들에게 3집 앨범의 전체적인 인상은 원본과 비슷하긴 하지만 마냥 비슷하다고 말하긴 힘든, 묘한 뽕짝끼와 장르적 모호함의 믹스로 생각됐을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음악적 논의들을 다 말아버린 건 저 백워드 마스킹 논란과 검열논란이었다. 억압을 이슈로 만드는 힘은 시대를 간파하는 재주를 가진 이만이 가능한 것이다. 서태지는 그에 능했고 자신만의 커뮤니티를 구성할 분명한 결과물(또한 기이한 얼터너티브)을 여기서 남기게 됐다.
균열을 연장해서 보자. 과연 서태지란 독자성은 무엇인가. 어느 사이엔가 자리가 잡힌 '서태지는 다르다'라는 명제를 만족시킬 음악적 독자성은 확보되고 있는가. '다르고 독자적'이란 서태지 브랜드는 적어도 2집까지는 혼합장르적 특성으로 보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3집에서부터 서태지는 보다 단순해지고 장르 원형지향적인 컨셉, 해외 트렌드의 수용이라는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서태지의 방향성이 개인적인 음악 취향의 근원-록으로의 회귀라는 것이 보다 분명해지면서 카피 차원에서의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그런 위험성들을 꾸준히 안고 가는 서태지의 음악적 선택, 장르적 변신들은 그에 수반될 끊임없는 리스크들을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다. 이것은 본격적으로는 4집에서부터 격하게 논의될, 그리고 이후 솔로 2집과 3집, 국소적으론 1집에까지 적용될 서태지 브랜드의 진정한 균열점이었다.
4집은 서태지라는 아성을 지키기에 다소 상업적 동력이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있는 상태에서 나오게 됐다. 그러나 영 낯설었던 갱스터랩 타이틀 '컴백홈'은 일주일만에 아이들의 입가에 완전히 정착되었고, 이슈메이커로서의 서태지와 앨범 판매량 차트의 왕자로서의 서태지를 동시에 만족시켜줬다. 그즈음의 서태지라는 아이콘에 대한 평가는 비평계에선 굳건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3집의 연장선에 서서 4집의 노래들은 '역할론'에 만족스럽게 여전히 사회적이었고, 검열에 항의하며 가사를 삭제하고 내놓는 용단도 했다. 그러나 '컴백홈'의 노골적인 사이프레스힐 창법 모사는 당시 힘이 붙기 시작한 통신공간을 중심으로 서태지의 표절설에 대한 의혹을 가속화시켰다. 비로소 서태지의 음악적 소재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표면에 드러난 것이다.
서태지의 음악에 대한 비판자들은 흔히 서태지가 외국 조류를 수입해서 그냥 갖다 쓰는 것뿐이라고 폄하한다. 난 개인적으론 외국 조류를 가져와서 그에 영향받은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해선 별 거부감이 없다. 어차피 인간의 역사란 게 다 그런 게 아니겠나. 그러나 서태지의 음악들이 의심스러운 곡들과의 비교에 있어서 상당히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는 것들이 상당수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서태지에 대한 분노는 '역할론'에 근거해서 더욱 증폭된다. 즉슨, 서태지라는 무게, 서태지라는 브랜드가 고작 그래서야 되겠냐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건 기대치에 관한 얘기이다.
서태지의 솔로 1집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야심적이었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앨범은 2집만큼이나 서태지의 독자성을 보장해주고 있다(비록 스매싱 펌킨스에 대한 너무도 낯뜨거운 애정을 노골적으로 고백해버리는 'Take 5' 같은 곡도 있지만). 그리고 이 앨범은 동시에 서태지라는 범주가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지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시장은 그에 화답했다. CD 판매가 음악시장의 주축이었던 시대의 끝자락이었던 때에 그저 제목이 Take라고만 붙여지고 단 한 번의 방송 출연도 하지 않으면서 오버그라운드에선 유례가 없는 사운드와 감각들을 들려줬던 이 앨범은 백만 장 이상을 팔았다. 그것은 어쩌면 서태지라는 브랜드의 완성을 확고하게 알려주는 기록이었을 것이다. 이 앨범에 대한 수용과 비수용의 여부를 통해 드디어 서태지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비의적 커뮤니티 확보의 본격적인 초석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때까지 마케팅 포인트로도 활용됐던 사회적 역할론이란 짐더미에서의 탈주가 시작된다.
이후 서태지는 자신의 화두를 마니아로 잡는다. 솔로 2집은 그에 대한 노골적인 선언문이었다. 아이들 시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엉켜놓는 가사들과 코드들을 보라. 그러나 시장은 한국의 메이저권에선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하드코어 장르를 적극적으로 사들인다. 보다 마니악하고 비의적인 영역으로 자신의 포지션을 잡은 서태지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들' 시절에는 뒤로 갈수록 연간 앨범 차트 1위 타이틀에선 멀어졌던 서태지의 음악은 2000년대를 넘어서서 연간 판매 차트 1위를 연거푸 차지했다.
그렇다면, 하드코어라는 장르가 서태지라는 이름으로 그토록 팔리게 된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서태지는 규정할 수 없다, 서태지의 음악은 규정되지 않는다'는 서태지 홈페이지의 선언은 장르적으로 끊임없이 옮겨다녔던 서태지의 자리옮김에 대한 어줍잖은 설명으로 들린다. 또한 그것은 연대의 거부를 뜻하는 것처럼도 들린다. 솔로 2집이 나왔을 때 서태지의 하드코어에 맞춰서 서태지라는 배를 타고 인디씬이 솟아올라야 한다고 얘기했던 딴지일보의 의견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얘기였다. 이미 서태지는 씬이 아니라 브랜드가 되어 있었으며 서태지가 가장 사회적이었던 시간에도 씬이 수혜를 받은 것은 없었다. 90년대 중후반의 락씬의 음악적, 양적 주축은 인디였고 그것은 각개격파와 마니악한 수용으로 이뤄졌다(서태지와 같지 않은가?). 그러니까, 애초부터 우리나라에서 씬이란 대중과는 그렇게도 별개였다. 서태지가 하드코어를 한다고 콘의 앨범 판매가 늘어날 수는 없다. 물론 콘을 몰랐던 서태지팬들이 서태지 덕분에 콘을 구입하는 순작용까지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태지라는 때마다 돌아오는 이벤트의 소비는 서태지라는 틀 안에서의 축제가 되어갔고 씬 전체에 대한 거시 규모의 수혜로 이어지진 않았다. 당연히 불만들이 터져나온다. 바로 그 오래 전 서태지에게 짐씌워졌던 '역할론'을 기억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어쩌나. 이미 서태지는 당신들의 꿈이 아닌 걸. 일찍이 거기서 탈출했는 걸.
난 자신의 상업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서태지의 동선은 사업가적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물론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지지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이 나라에서의 씬의 부흥은 거시적인 문화적 차원에서부터 고려해야 한다. 정말로 풍요로운 문화적 환경, 인문학과 예술의 수용과 지식의 전파가 이루어지려면, 아니 걍 락씬에만 국한해도 그 배고픈 영역을 살리려고 한다면 어찌됐든 교육과 군대제도의 근본부터 모조리 뜯어고쳐야 한다. 지금의 제도된 공통경험의 틀에서가 아니라 삶의 개념 자체가 달라질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아주 순수한 정치의 영역이다. 하지만 서태지는 액티비스트는 아니다. 제도의 의도된 이탈경험자로서 가능성은 있었을지 모르나, 적어도 현재까지의 패턴으론 아니다. 서태지는 어느 지점까진 확산한 다음, 소비층을 자신만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정치적으론 고착의 방법론을 구사했다.
어쩌면 서태지라는 이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것 아닌가. '문화대통령'이란 매스컴이 좋아하는 명칭에 너무 매달렸던 것 아닌가. '서태지=저항의 대변자, 시스템 파괴자'란 공식은 귀는 업그레이드 댄스가수로써 받아들였지만 그 이후에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에 의해 주입된 것은 아닌가(신화를 통한 재시스템화). 서태지는 네오가 아니었다(의심스럽게도, 네오인 척 했을 수는 있다. 그러니까 바로 이 부분에서 순수주의자들은 열받아하는 거겠지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모두'를 대변하지 않기로 했다. 상업적인 판단에서든 개인적인 성향에서든 어찌되었든 간에.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바로 그런 서태지, 지금의 서태지가 된 게 벌써 거의 십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 차원에서 서태지의 진정한 역할론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절충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말하자면 컴백할 때쯤 ETP를 여는 것 정도로. 무조건적으로 그 이벤트가 악랄하게 이용 당하는 거라고 말할 순 없다. 나는 예전에 했던 ETP에서 서태지가 이 무대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콘이라며 그들에게 축제의 주연 자리를 넘기고 사라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그쯤일 것이다. 타협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그렇기 때문에 배신당했다고까지 말하는 이들이 등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들은 서태지라는 길을 따라갔던 이들이다(어떻게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서태지가 만든 종착역에는 안착하길 거부한 이들이다(어떻게 안착할 수 있었겠는가).
개인적으론 무척 좋아하는 앨범이지만('로보트'를 좋아한다. 물론 더 유즈드가 문제지만 낄낄) 솔로 3집 또한 서태지에 대한 무언가 끊임없는 노이즈들, 특히 외국 트렌드의 영향, 표절과 같은 문제들을 자극시켰다. 음악적으론 지루했던 솔로 2집의 극복이긴 했지만 외적인 트러블들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커뮤니티의 폐쇄성 또한 지속됐다. 그리고 그해 앨범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이후 해는 흐르고 흘러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전과는 비할 데 없는 온갖 이벤트들과 매스컴 플레이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앨범의 성과가 어찌될 진 모르겠으나, 인디씬에서의 서태지에 대한 피해의식은 더없이 크게 느껴진다(서태지의 '컴백 이벤트' ETP 때문에 다른 '정규' 페스티벌 파이가 줄어든다는 판단이 상당히 작용하는 듯싶다). 그것도 어찌 보면 역할론의 연장이긴 하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다. 서태지에게서 역할론의 무게를 덜고 이벤트로써 바라보면 된다. 씬의 부활이라기보단 씬에 대한 모종의 단기적 관심이란 점에서 이것은 근본적인 에너지원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인정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이미 일찌감치 인정했어야 했을 것을.
우선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번 앨범의 주제는 기만과 거짓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거기에 결정타를 달려면 우리 MB님에 대한 얘기가 직접적으로 나왔으면 하는 반응들도 있는 모양이다.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앨범 활동 중에 그런 컨셉이 있다면 소위 진정성이란 허울 좋은 놈과 꽤 재밌게 짝짜궁할 수 있는 소재란 생각이 들긴 한다(그리고 여전히 미련들이 있는 서태지 역할론에 대한 이벤트적 복귀이자 제법 묵직한 방점이 될 것이다). 그런 것까지 기대하기엔 좀 오랫동안, 그리고 멀리 와버린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되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벤트에서 현실정치에 대한 의외의 텍스트들이 나온다 해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 게 바로 승부사라는 거니까. 널리 얘기되고, 무엇보다도 아주 잘 팔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