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장르적으로 본다면 히키코모리형 오타쿠를 갱생시키는 일종의 치유물.... 인데 작가가 오쿠 히로야니.

인체 비례를 멋대로 그린 부실한 장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서, 작가가 부업 삼아 알바로 그린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제 그만....

 

애완동물의 죽음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죽음이란 주제를 9권에 와서야 직접적으로 접하게 되다니 이 만화도 어지간히 호흡이 긴 듯. 애초에 도구와 인간의 경계에 선 인격체라는 소재에서부터 노리고 있는 비극의 성질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제법 성공적으로 그려낸 듯. 그리고 꽤 오랫동안 죽쑤던 작화가 이번 권부턴 이상할 정도로 업그레이드되서 돌아왔다.

 

때되면 마왕이니 기사니 하면서 절라 닭살 돋게 만들게 되는데 여전히 그럭저럭 즐겁게도 해주고,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뭐 이렇게 급전개인지. 에피소드 두 개 정도 사이에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다 출현시키는 걸 보면 인기투표 결과가 별로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언제까지 연재될런지 불안함.

 

마법사+소꼽친구+거유 미소녀.... 라는 너무도 먼치킨 덕후스러운 소재들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별로 그런 인상이 들지 않는 건 초보자들이 연애할 때 느끼는 감정을 풀어가는 진지한 자세 덕분인 듯. 그러나 구슬이론은 참신하긴 한데 썩 못 살려낸 느낌이랄까, 별로 절박한 느낌이 안 드는데다(이건 내 문제인가...) 상황 전개는 너무나 전형적이라 내용적인 깊이로 보면 차라리 [치사X뽕]이 더 나음. 그런데도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던 건 웬간한 에로망가 뺨치는 색기 넘치는 작화 덕분인 듯. 그리고 마지막권 병원에서의 고백씬 연출이 훌륭하다.

 

일단 캐릭터들의 연령대가 올라간데다 뭔가 이것저것(적당하게 표현되는 워킹맨 라이프, 자매 간 갈등 등등) 많이 넣어서 [큐피드의 장난]보다는 풍성해진 사고 흐름과 텍스트를 보여주는데, 욘사마 닮은 주인공과 로리녀와의 감정 공유가 왜 그토록 절실하게 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아서,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임. 뭐 그림은 여전히 좋고.

 

에이즈 환자와 사랑하기. 어떻게 보면 스스로 죽음 가까이 간다는 것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랑의 힘 덕분일 게다(이 이야기의 주인공들 사이엔 현재 제왕절개로 낳은 네살짜리 딸이 있다). 그런데 [푸른 알약]은 그 진부함을 설명하느라 질질 끌지 않는다. 대신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죽음과 감염이 만들어내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겪어야 할 심각한 생활사적 고민이다. 자신들이 태어난 원인을 찾느라 고생하지 않는 것처럼 이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기에, 이 만화는 기구한 사연에 대한 신파적이거나 감정적인 표현을 거부하고 다분히 현실적인 불안과 그의 극복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덤덤한 수기를 풀어간다. 그렇기에 그 흐름이 심심하게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에이즈라는 호들갑스러운 병을 그토록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자전적인 작품을 그린 힘을 말해주고 있다(작가의 성향 또한).

무엇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쾌활한 작화 자체가 좋았다. 그런데 작가 나이가 올해로 32살밖에 안됐다는 것에 좀 놀랐음. 이거 냈을 때가 7년 전이니 25살.... 완전 노땅처럼 그려지더만.

 

...이건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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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4-06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뭥미?, 에서 완전 웃음.

저도 봐야겠어요. 저 푸른알약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