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동진 평론가가 망치로 뒤통수 맞는 느낌이었다, 라고 한 게 영화의 강력한 메인 카피가 된 인상인데 솔직히 이정도가 망치라면 전 지금쯤 한 열두 번쯤 더 맞아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겠습니다. 뭐 괜춘한 영화긴 한데 망치 가격까진 좀 오버다 싶고.
2. 그래도 전체적으로 잘 빠진 영화가 맞긴 맞습니다. 연기들은 좋고 연출도 과욕 없이 기본기 탄탄하게 잘 짜냈고. 아마도 봉준호의 영화에 진하게, 그리고 제대로 영향 받은 첫세대 영화가 아닐까 싶군요. 사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살인의 추억]에 대입이 가능한 일종의 거울효과 같은 영화랄까요. 뭐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 기시감을 일으켜서 제 성에 썩 차지 못한 모양입니다.
3. 영화는 살인자를 쫓는 부분과, 말단 경찰에서부터 청와대 내각에까지 병신들로 가득 찬 이 사회의 진절머리 나는 부조리들을 지긋지긋하게 전시하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사실상 살인자를 쫓는다는 동적인 긴장과 즐거움은 초반에 몰려 있고 중후반부는 후자쪽에 더 촛점이 맞춰져 있죠. 살인자가 누군지, 그의 범죄가 무엇인지, 심지어 쫓느라 고생하는 장면까지 초반에 다 나와버립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이후부터죠. 살인자가 체포되고 마땅히 법의 형벌을 받아야 하건만, 그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광경에서 오는 공분. 여전히 어떤 정치사상보다도 감정의 힘이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촘스키가 이론이 아닌 서사 영역을 통해 이뤄질 인간 변화의 희망을 얘기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문제는 항상 '그 다음'이겠지만. 그러나 어쩌면 변화도 로또, 안착도 로또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4. 여기서 차이의 문제는 중요해집니다. 그것이 소소한 차이일지라도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상 살인자인 영민이나 그를 쫓는 중호나 둘다 쓰레기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보면 중호 또한 자신이 데리고 있는 여자들에게 경영자이자 직업적인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못한 것이고 억지로 떠밀어서 사지로 보내버린 거니까요. 영화는 그런 풍경을 보며 그래 그냥 둘다 쓰레기 모두가 다 똑같은 쓰레기니까 뭐든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거야, 이렇게 결론이 나버리는 것에 대한 경계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쓰레기의 자기반성에 대한 이야깁니다. 똑같은 인간쓰레기였던 작자가 어떻게 시스템의 부조리를 체감하고 그걸 의지로써 수정해보려고 발버둥치게 되는가. 바로 이것이 다같은 병신들 속에서 살아가는 병신들에게 갖춰야 할 중요한 부분이겠죠. 적어도 자신이 병신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은 그나마 낫습니다. 그것조차 모르는 병신들이 문제죠.
5. 여성분들이 영화를 볼 때 불편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상황이란 것이 이 나라에서 여성이 갑작스럽게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피해당사자와 가질 수 있는 직업적 괴리감에도 불구하고 그 익숙한 풍경과 거의 범죄 원형적인 전개 때문에 스스로 대입이 안될 수가 없겠다고 보이거든요.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인적 없는 골목이 주는 두려움은 타워펠리스나 단지형 아파트에 살 돈이 없는 직장인 여성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을 올라가던 중에 느껴야했던 꽤 익숙한 것 아닐까요. 그런 점은 감독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훌륭한 프러덕션 디자인이 그 두려움을 배가시킵니다. 그에 반하면 남자들은 이 영화를 장르영화적 쾌감을 예상하며 즐길 수조차 있겠죠. 어찌되었든 살인자가 말한 생리 냄새가 난다는 말에 다리를 다소곳이 수그리는 여성형사의 모습이 나오는 영화가 [천하일색 박정금]의 시청율을 올려주는 여성들의 성에 찰지는 미지수입니다.
6. 녹음 상태가 좀 빈한한 것 같았습니다. 극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들이 어째 붕 뜨는 느낌이고 배경음도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