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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시간 1
장진우 지음 / 시공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리뷰 제목입니다만, 정말로 책이 예쁘게 나왔는걸요. 시공사, 만화 계열사도 갖고 있더니 권신아씨를 일러스트레이터로 채용했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분 그림의 고전적이고 미술적인 일러스트가 내용과 잘 어울립니다. 옛날 '프린세스 조슈아'가 황금가지에서 나왔을 때의 그 구린 표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지는군요.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은 황금가지 공모 게시판에 연재됐던 것이기 때문에 그쪽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마술피리에서 나온 걸 보니 황금가지는 한국 판타지는 이영도 외에는 다 접을 생각인가...... 쩝. 하긴, 마케팅 의지가 별로 안 보이는 디자인이었죠, '프린세스 조슈아'는.
이 이야기 '소녀의 시간'은 글자 그대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읽다보면 (남자) 작가의 소녀 취향 집착이 느껴져서 조금 무서워지기도 합니다만(웃음), 일단 내용 자체는 재미있습니다. 못생기고 평범한 소녀가 귀족 소녀와 몸이 뒤바뀌어 겪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는데요, 영혼은 평민인 소녀가 대귀족으로, 그것도 군사적 지휘관으로서 헤쳐나가는 과정도 만만찮게 흥미롭고, 그 곁다리로 얽혀드는 로맨스도 감초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기에-언젠가는 원주인에게 몸을 돌려줘야 한다는-함부로 연애에 빠져들지도 못하고, 그러다가 오해를 사서 상대 남성에게도 상처를 주는 그녀를 보면 참 답답하고 안타깝죠. 또한 그녀의 군사적인 성공 과정도 보다보면 정말 아슬아슬한 것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평민이니까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작전도 짤 수 없는데, 그런 그녀가 최선을 다해 내놓는 어떤 좌충우돌적인 방법들이 놀라운 우연의 바람을 타고 신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과정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줍니다.
어디까지나 '정신은 사춘기 소녀인' 아르베라제가 이야기의 중심이자 사실상의 화자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서술 폭이 조금은 좁게도 느껴집니다만, 한 소녀의 신나는 모험담을 읽다보면 그런 것쯤은 날아가는군요. 책도 정말 예쁘게 나왔고, 오랜만에 나온 살만한 한국 판타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