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 아이들 카르페디엠 34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이 그리 매끄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번역자 모임이라고 되어있던데, 특별한 오역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원문을 보지 못했으므로 알 수 없음) 한국말 같지가 별로 않달까요. 딱딱하던데요.

예를 들어 중간에 '신용할 수 없다' 라는 말이 있던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말 안 쓰잖아요? (...일본 만화 번역책에서는 난무하는 표현이긴 합니다만;;) 일본에서는 '信じられない'와 '信用できない'라는 표현이 구분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당신을) 못 믿겠다'나 '(당신에게) 믿음이 안 간다' 정도로 쓰지 그런 상황에서 '신용할 수 없다' 라는 말은 안 하죠.

그 외에도, 일본에서는 성과 이름을 혼용하기 때문에(어떤 경우에는 '구즈하라' 어떤 경우에는 '준' 이라고 섞어 부름) 우리나라 독자들의 혼란을 줄이려고 '구즈하라 준'이라는 식으로 모든 등장인물의 성과 이름을 한꺼번에 쓴 것 같은데, 그건 그것대로 또 읽다보면 어색합니다. 그냥 원문에 나온 대로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원문이 그렇게 이름 성을 병기하고 있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내용은, 번역의 어투가 낯설었기 때문에 확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만 전반적으로 괜찮게 읽었습니다. 중간에 '선생님들이 다양하다면 학생들의 다양성은 왜 인정하지 않느냐'는 대사는 굉장히 공감이 갔고요, 별다른 갈등이나 사건이 없이 열린 결말로 끝난 것도 처음엔 좀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진짜 현실을 반영한 결말 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번역을 조금 더 다듬었다면... 이라는 아쉬움이 드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독소전쟁에 대한 내 최초의 독서는 13년 전 읽은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에 나왔던 짤막한 단락들이다. 레닌그라드 포위전 때 박물관에서 그림들을 일일이 져날랐던 어느 여성의 이야기라든가, 그런 전쟁 때는 사람들이 일기를 쓰지 않아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다든가, 평생 나비에 미쳐 주위의 놀림을 받았던 과학자의 색채미학 연구가 전쟁 때 위장기술에 응용되어 많은 건물들이 폭격에서 구원받았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 어린 나는 그 전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은 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즈음하여 많은 전쟁 서적이 쏟아져나왔다. 그 중 어느 한 주, 모든 신문의 독서 섹션을 점령한 책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13년간 간직되어 왔던 오랜 기억을 떠올렸고, 어떤 운명적인 감흥마저 느끼며 이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으로 숱하게 접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2차대전의 분수령인줄만 알고 있었던, 냉전 하에 교육받은 평범한 나 같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진실을 보여주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런 상식적인 지식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독재자 스탈린의 추한 모습을 가감없이 그대로 그려내는 객관적인 시각도 마음에 들었다. (뭐, 혹자는 그래도 소련을 미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이 승리한 전쟁에 대해 언급하다 보니 확실히 소련에 후한 점수를 준 측면은 있다)

가장 마음에 든 대목을 고르라면 '이것은 위대한 투르게네프의 것이오'라는 말에, 목숨이 달린 피난길에서도 순순히 길을 터준 러시아의 평범한 민중들의 모습을 꼽고 싶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구절이었던 역자 후기의 한 러시아 청년의 말 '전쟁은 사람이 하는 건데!' 라는 말과도 어느 의미에서 하나로 통하는 대목이랄까. 굳이 노동가치설까지 들먹일 건 없더라도, 결국 위대한 것은 사람이라는 잔잔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

역사에 관심은 있지만 어려운 책에 부담을 가지는 일반 독자들에게 2차대전 입문서로서도 훌륭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중간에 그런 구절이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는 우리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문화라고. 그래서 더욱 많은 것을 바라고 손에 넣도록 강요하다가 중요한 것을 잃게 만드는 문화라고.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며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힘차게' 살아가도록 내몰린다. 중간에 멈춰서서 자신의 도끼날을 갈 여유도 없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는 더더욱 없다.

죽어가는 자신을 연구 거리로 내놓은 모리 교수는, 그런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결국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확실히, 지금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는데. 지나간 과거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반감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모리 교수는 루게릭 병이라는 엄청난 치료비가 드는 병을 감당할 재력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그 부는 그가 여지껏 교수로서 노력하여 쌓아올린 실적의 대가이고, 병원비를 충당한 선인세 역시 그의 인품됨이 책으로 나올만큼의 수준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평생을 가치있게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똑같이 루게릭병에 걸렸더라도 집 한 채 없는 홈리스도 있다. 만약 그가 집을 소유한 중산층이 아니라 셋방에서 근근히 월세 내며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치료받다 방세를 못 내 길거리에 쫓겨날 지경이었다면, 그래도 '물질은 중요하지 않다'고 설파할 수 있었을까? 모리 교수쯤 되는 탁월한 사람만이 이런 병마에 맞닥뜨리고도 여유를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돈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느 정도 생존이 해결되어 그 다음 단계를 추구하는 중산층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무소유를 설파하는 법정스님조차도 한해 인세가 2억인 상황에서 모리 교수만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리라. 책이라는 것 자체가 먹고 사는 건 어느정도 해결된 사람이 집어드는 물건이니까.

그런 독자층을 놓고 본다면, 그의 말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던 문화론,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성찰, 스스로를 사랑하고 남보다 먼저 용서하는 것...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이고 모리 교수도 저질렀던 실수들을 통한 교훈을, 그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읽을 당시의 기분에 꽤 좌우되는 책이었다. 비참한 서민들의 삶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보면 짜증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여운이 있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땅에 태어나 영어 잘하는 법 - Neoquest English 1
네오퀘스트 지음 / 김영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happy는 '행복한'이 아니다>를 읽고 상당한 감명과 충격을 받았었다. 그 책의 저자가 참여해서 쓴 책이라기에 이 책을 집었다. 이 책은 <happy...> 이전에 나온 책인데, <happy...> 와는 단어설명 부분 같은 것은 겹치는 부분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독해 청취 작문 문법의 전반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 영어 공부 방법론 책이다.

조금 옛날에 나와서 그런지 요새 나오는 책들처럼 눈에 쏙쏙 들어오는 편집은 아니지만 내용은 진국이라고 하겠다. 네오퀘스트의 저자들은 인스턴트 비법은 없으며 다만 꾸준히 토대를 쌓아나가는 데 있어서 제대로 된 토대를 쌓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가령 단어를 익힐 때 보캐불러리 22000을 볼 것이 아니라 단어의 개념을 그림으로 그려서 익히면서 하나하나 익혀가다 보면 기억에도 더 오래 남고 궁극적으로는 진짜로 '영어로 생각하는' 토대를 쌓는다는 것 등. 어렸을 때 빼곡한 단어장 들고 달달 외워봤지만 남는게 없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유용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실제로 지금 진짜로 영어의 도사들-통역대학원 출신들이라는 사실도 이 책에 신뢰성을 더한다.

비법류에 현혹되지 말고 영어를 제대로,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영어를 제대로, 오랫동안 차근차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야툰 - 비빔툰 에피소드 1 문지 만화 1
홍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작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색기가>가 원래는 문광부 주최 만화 대상을 받아야 했는데 문광부에서 성인물이라는 이유로 인기상으로 깎아서 줬다나 뭐라나... 그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일간스포츠를 몇달간 볼 일이 있어서 아색기가를 챙겨보긴 했었으되 그게 그렇게 대단한 만화인가...라는 의구심은 들었다. 상상력은 인정하겠지만 너무 지나친 남성 판타지가 아닌지. 남자는 하나같이 우락부락하고 여자는 하나같이 가녀리면서도 밝히고, 남녀 모두 우람한 페니스에 목을 걸고 있다. 헌데 나는 이런 게 바로 성 왜곡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상의 신문과 잡지의 건강 섹션 모든 곳에서 'Size doesn't matter'(고질라 영화 카피같군;)를 외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본 <야야툰>은, 바로 그 과장된 판타지의 거품이 빠졌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우리네 평범한 소시민들의 있을법한 성 이야기라는 사실성 말이다. (아직 결혼 안 해봤고 남자가 아니니 100% 장담은 못 하겠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본 <야야툰>은 상당히 흥미로운 만화였다. 먼저 철봉을 이용한 정보통의 첫 '개안'을 그린 프롤로그. 영화 '몽정기' 관련 기사에서 '철봉' 얘기가 나오는 걸 꽤 의아해했던 차였기에 이 만화를 보고 '아항~'하고 무릎을 쳤다. 철봉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었구나!

그리고 동성애 판타지 부분에서는, '음... 여자만 야오이를 꿈꾸는 건 아닌 모양이구나'라는 것을 알았으며, 기타 부부의 성의 슬픔-애 키우면서 섹스 나누기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남편처럼 섹스하기' 에피소드에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노력하는 정보통(그리고 작가)의 자세도 눈에 띄어서 좋았다.

이 만화는 '성'이란 부부 어느 한쪽(특히 남편)만이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서로 배려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고 있다. 분량이 적어 아쉽지만, 표지부터 마음에 드는 어른들의 성(性)일기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