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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사냥을 떠나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
헬린 옥슨버리 그림, 마이클 로젠 글,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달 전에 아동문학을 들었는데 그 수업에서 이 책을 추천해서 보게 되었다. 책을 보면서 어릴 적 기억 하나 떠올랐다. 어릴 적 엄마와 나는 노루를 잡으로 간 적이 있었다. 우리집은 산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새벽이면 노루 울음소리가 들렸다. 물론 나는 들은 적이 없지만 잠귀가 밝으신 엄마는 아침이면 내게 말씀해 주시곤 하셨다.
그 날은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내게 뒷산으로 노루를 잡으러 가자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내게 묘하게도 주문을 걸었는지 금방이라도 노루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신이났고, 흥분이 되어 집을 나섰다. 나와 엄마는 산을 오르면서 가다 쉬다했는데, 엄마는 누군가가 베어놓은 나무도 살피셨고, 나는 길가에 핀 작은 꽃들을 쳐다보느라 노루에 대해선 깜박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어느 쯤에서 앞서 가시던 엄마께서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나는 멈춰선 엄마 곁에 섰다. 엄마의 눈길이 머문곳을 보니 뼈다귀가 있었다. "누가 덫을 놨었나 보네. 여기서 노루가 죽었나 보다"라는 엄마의 말씀에 나는 노루잡으러 떠났던 원래의 목적은 잊어버린 채 어떤 나쁜 사람이 이런 짓을 했을까, 미리 알았으면 내가 약을 발라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나는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 날 정말 엄마는 노루를 잡을 생각이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그저 나와 산길을 걷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 책은 한 가족으로 보이는 아빠와 엄마, 아들, 딸, 그리고 아기와 개가 곰 사냥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은 곰 사냥을 떠난다는 느낌보다는 소풍을 떠나는 것 같아 보인다. 곰 사냥을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난다. 그 때마다
’곰 잡으러 간단다.
큰 곰 잡으러 간단다.
정말 날씨도 좋구나!
우린 하나도 안 무서워’
라는 말이 나온다. 반복되는 이 말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주문이 되고, 가족은 그 어려움을 수를 써서 피하기 보다는 그대로 헤쳐 나가곤 한다.

어려움을 만나는 장면은 단색으로 표현했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장면은 컬러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만하게 곰사냥길을 떠난 가족은 막상 곰을 만나자 잡기는 커녕 허겁지겁 집으로 도망간다.


도망가는 장면은 왔던 길을 역순으로 돌아가는데 그 모습이 위급한 상황을 묘사하듯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진흙탕 길을 만났을 때 사냥을 떠나는 장면에선 앉아서 여유롭게 신발을 벗는데 비해 도망가는 장면에선 달리면서 신발을 벗는 것을 볼 수 있다. 뒤 쫓아오는 곰을 보면서 도망가는 장면은 긴박감을 더해 준다.

곰은 집 앞까지 따라오고, 급히 문을 닫는 모습은 긴박한 상황의 절정을 보여준다.

가족은 아래층도 아닌 윗층까지 올라가서 이불속으로 들어가 눈만 빼꼼하게 내놓고 다시는 곰 잡으로 가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한다. 이 장면의 재미는 다른 사람과는 상관없는 아기의 모습이다. 아기만 놀래지 않은 양 곰인형을 들면서 웃고 있다.
세살배기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줬다. 반복과 리듬감이 있어서 아이가 좋아할 듯 싶어서다. 한 번 읽어주자 마자 아이는 "다시’라는 말을 했고, 두번째 읽을 때는 의성어를 따라했고,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해서 말을 웅얼거렸다. 우리 아이가 너무도 좋아하는 의성어들을 소개해 본다.
풀밭을 헤치고 지나가는 장면에선
사각 서걱!
사각 서걱!
사각 서걱!
강물을 가로질러 가는 장면에선
덤벙 텀벙!
덤벙 텀벙!
덤벙 텀벙!
진흙탕을 밟고 지나가는 장면에선
처벅 철벅!
처벅 철벅!
처벅 철벅!
숲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에선
바스락 부시럭!
바스락 부시럭!
바스락 부시럭!
눈보라를 헤치고 지나가는 장면에선
휭 휘잉!
휭 휘잉!
휭 휘잉!
마지막으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선
살금!
살금!
살금!
헬린 옥슨버리의 그림 역시 볼 만하다. 한 장면 한 장면 살펴보면 여러가지 재미를 맛볼 수가 있다. 이 책은 내 아이처럼 세살배기부터 취학전 어린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글밥은 많지 않지만 리듬감이 있어서 마치 시(詩)어 같고 그림을 살펴보면 가족의 표정들이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듯 싶다. 읽어주는 부모 역시도 이 책의 묘미를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