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 여름 가을 겨울 연못 이야기 ㅣ 웅진 세계그림책 96
조이스 시드먼 지음, 이상희 옮김, 베키 프랜지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독특한 그림책이다. 2006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인 이 책은 연못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보여주는 과학책인데도 불구하고 정보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시어와 강렬한 색상, 힘이 넘치는 선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인과 판화가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조화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봄 ♠ ♠ ♠ ♠ ♠

땅이 녹기 시작하는 봄부터 얼음이 어는 겨울까지 연못은 놀라운 일로 가득한 곳이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온갖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며, 먹고 먹히는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소리의 주인공은 고성청개구리다. 크기가 약 2.5센티미터 정도 되는 이 청개구리는 겨울에 몸이 거의 얼어붙은 상태로 지낸다. 하지만 세포 속에 어는 것을 막아 주는 ’부동액’ 같은 특별한 액체가 있어서 피와 세포는 완전히 얼지 않는다. 언 땅이 녹자마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서는 끈끈한 발가락으로 잔가지와 수풀을 타고 올라간다. 우렁차고 규칙적으로 떨리는 고성청개구리 수컷의 밤노래는 암컷의 관심을 끌어 짝을 찾으려고 외쳐대는 소리다.
내 목청은 봄 사랑으로 부풀어 올라요.
비 사랑,
물 사랑,
청개구리 사랑으로 부풀어 올라요.
내 노랫소리는 높다랗고 아름답지요.

어미 미국원앙이 둥지를 만들기 가장 좋아하는 곳은 15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나무 구멍이다. 알에서 새끼가 나오면 어미는 하루 정도 새끼의 몸을 따뜻하게 품고 말려준다. 그런 뒤 물로 내려가 새끼들을 소리쳐 부르지요. 새끼들은 어미가 부르는 소리에 대꾸하며 둥지 구멍으로 다가간다. 그러고는 아직 날 줄도 모르지만,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둥지에서 차례로 뛰어내린다. 물로 떨어지건 땅으로 떨어지건 다치는 일은 거의 없다.
폴,
짝,
후
루
루.
폴,
짝,
후
루
루.
퐁당!
어푸, 어푸,
고개 들고
찰박, 찰박,
엄마다!
쫓아가자,
쫓아가자.

물방개는 ’물 호랑이’라고도 한다. 무척 사나운 물속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크기가 3.8센티미터밖에 안 되지만 움직이는 것이라면 거의 모든 걸 잡아 먹는다. 단단한 턱으로 자기보다 훨씬 큰 생물을 공격하기도 한다. 물방개는 대부분 밤중에 날아다니며 먹이를 구할 새로운 곳을 찾는다.
세상의 애벌레는 다 내 것.
올챙이, 작은 물고기, 도롱뇽도 내 거야
큰가시고기, 날도래, 거미,
작은 개구리까지도 모두 다 내 것.
달팽이, 알, 곤충들도 다 내 거야
한마디로 말하면,
뭐든 움직이는 건 다 내 거야.
근처에 있는 것도 다 내 것.
배가 고프면(사실 난 항상 배가 고파.)
내 거, 내 거, 다 내 거야.

푸른무늬왕잠자리는 5천여 종에 이르는 잠자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커다란 눈으로 사방팔방을 다 볼 수 있고, 네 날개가 다 따로따로 움직인다. 잠자리들은 저마다 대단한 비행사다. 시속 56킬로미터로 재빨리 수직으로 날아오르고, 날다가 갑자기 멈추고, 빙빙 맴돌고, 심지어 뒤쪽으로 날 수도 있다. 잠자리는 물 속에서 애벌레로 몇 달 또는 몇 년을 보낸다. 그러다가 따뜻한 봄밤에 물 밖으로 기어나와, 마지막으로 허물을 벗고는 반짝이는 공중 곡예사가 된다.
날이 밝아 오면
날쌘 새들이 널 잡아채려 기다리지.
날아라 잠자리야! 날아라!
여름 ♠ ♠ ♠ ♠ ♠


연못의 생명은 식물에서 시작된다. 식물은 햇빛으로 영양분을 만든다. 이런 식물들은 작은 물벼룩이나 물벌레처럼 식물을 먹는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는데, 이런 조그만 동물과 벌레들은 자기보다 커다란 벌레들에게 먹힌다. 그리고 이 커다란 벌레들은 작은 물고기나 올챙이처럼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들한테 먹히고, 작은 물고기는 더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힌다. 눈이 날카롭고 부리가 뾰족한 왜가리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먹는다.

개구리밥은 꽃을 피우는 식물 가운데 가장 작고, 연못 위에 떠다닌다. 뿌리를 아래로 늘어뜨려 필요한 영양분을 빨아들인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면 작은 연못을 뒤덮어, 수많은 곤충과 동물들에게 숨을 곳을 만들어 준다. 연못에 사는 모두가 좋아하며, 특히 오리가 좋아한다.
난 공기 없이도 떠 있어요.
흙 없이도 뿌리 내려요.
모두가 나를 먹지만,
내 이름에는 그 중 하나만 붙였어요.

’물여우’라고도 하는 날도래 유충은 알에서 깨면 곧바로 자기를 보호하고 위장할 집을 만들기 시작한다. 잎사귀, 모래, 자갈 따위처럼 연못 밑바닥에서 찾아낸 것은 무엇이나 한데 붙여서 기다란 원통 모양으로 만들어 자기 몸을 감싼다. 유충은 자라는 내내 이 작은 집에 의지해서 산다. 때가 되면 구멍을 막고 2주에 거쳐 탈바꿈을 한다. 날개가 달린 날도래로 말이다.
저마다
쪽 뽑아 입은
옷이 2센티미터도
안 되지만,
어때요?
1등이 되면
날개를
얻을 텐데요.

물벌레와 송장헤엄치개는 어느 연못에서나 볼 수 있는데, 크기가 1센티미터가 조금 넘고 둘이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둘 다 몸통이 배 모양이고, 다리는 노처럼 생겼다. 송장헤엄치개는 작은 곤충을 잡아먹지만 물벌레는 주로 식물을 먹는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뱃사공의 삶이 바로 나의 삶.
나는 늘 물풀 사이에 있을 거라네.

물곰은 축축한 이끼 사이를 꼭 곰처럼 느리게 돌아다닌다. 길이가 0.06센티미터를 조금 넘고, 날씨가 뜨거워져 이끼가 마르면 혼자서 몸을 움직이거나 먹이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죽지는 않고, 쪼그라들어 몇 달, 몇 년, 심지어 몇 십 년을 살 수도 있다. 그러다 물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곧 몸이 부풀어 느릿느릿 움직이는 물곰의 생활로 되돌아간다.
쪼그만 점,
쪼그만 알갱이.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마른 풀 조각 같은
물곰은
바람이 불어와
자신을
더 시원하고
더 촉촉하고
더 따스한 봄날 같은 곳으로
데려다 주길
기다린다.
가을 ♠ ♠ ♠ ♠ ♠

부들은 정수식물 중의 하나다. 정수식물은 뿌리는 물속 진흙에서 자라고 줄기와 잎은 물 밖에서 자란다. 부들의 크고 뾰족한 잎사귀가 퍼져 연못가를 둘러싸면, 수많은 동물들의 은신처가 된다. 부들의 가장 독특한 부분은 갈색 ’꽃’이다. 꼭 막대기에 꽂은 소시지처럼 생겼다.
붉은 날개를 단 장군들이
우리를 버리고 달아난다.
툭 터지는 베개 속처럼
용기가 보풀보풀 솟아오른다.

비단거북은 다른 파충류처럼 변온동물이다. 변온동물은 사람처럼 혼자 힘으로 몸을 따뜻하게 덥히지 못한다. 주위의 열을 얻어서 자기 몸을 덥힌다. 그래서 가을에 날씨가 싸늘해지면 햇빛이 모자라서 더 이상 활동할 수가 없다. 다른 동물들처럼 연못 진흙 바닥에 굴을 파고 겨울잠에 들어간다.
안녕, 안녕!
따뜻한 날들을 잊지 말아요.
싱그러운 날들을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요.
기억해 주세요.
겨울 ♠ ♠ ♠ ♠ ♠

서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다. 모두가 잠든 봄 밤, 연못은 작은 우주다. 정글이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은 누군가를 잡아 먹고, 그러다 잡아 먹힌다. 크기가 크던 작던 생명을 가진 것들은 생명이 다 할때까지의 삶을 멈출 수가 없다. 책을 보는 내내 연못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숨소리까지 죽여가면서. 시종일관 리듬감 넘치는 시어들과 그 시어를 멋지게 배열한 모습이 흥을 돋아준다. 때론 이 쪽에서 때론 저쪽에서 위에서 아래서 옆에서 장소를 바꿔가며 바라보는 듯 하다. 자연의 신비로움,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생태계를 이해하는 과학적인 정보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놀랍고도 신기하다. 그림책에서 품격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