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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밥 ㅣ 낮은산 작은숲 1
김중미 지음, 김환영 그림 / 낮은산 / 2002년 3월
작가의 이름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으나 어쩐지 차일피일 미뤄만 졌다. 이 힘든 세상에서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내 삶도 바람에 흔들리는데 남의 고단한 사정을 어쩌면 돌아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왠지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 이 팍팍한 세상에 애써 닫고 있는 빗장이 와르르 풀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그러다 결국 <종이밥>을 읽고야 말았다. 작가의 글을 통해 가난한 동네에서 공부방 선생님인 작가가 현장에서 만난 아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송이는 아까부터 방바닥에 엎드려 뭔가 끼적거리고 있는 철이가 못마땅하다. 철이에게 눈을 한번 흘기고 종합장을 죽 찢어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기 시작한다. 송이는 심심하거나 배가 고프면 종이를 먹는 버릇이 있다. 종이 씹으면 밥풀 냄새가 난다는 거다. 철이는 그런 동생의 이야기를 숙제인 동시로 쓴다.
철이가 끓여준 라면을 먹고 방다박에 벌렁 드러누운 송이에게 철이는 밥먹고 누우면 소 된다고 일어나라고 하자 송이의 대답 "내가 밥 먹었나 뭐. 라면 먹었지."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 중이시다. 퇴원하셔도 아파서 장사 나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
오빠가 학교에 가고 나면 송이는 딱히 갈 곳이 없다. 동네에는 같이 놀 또래 친구가 없어서 함께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들이 사는 길건너 아파트 놀이터를 기웃거린다. 그런데 유치원 다닐때부터 짓궂게 굴던 아이들이 송이에게 자기네 놀이터에서 놀지말라며 못되게 군다.
겨우 하나뿐인 친구 다솜이가 빨간색 새 투피스를 입고 다솜이에게 옷 자랑을 하러 나왔다. 곰돌이 푸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분홍색 책가방을 자랑하자 약이 오른 송이는 나도 집에 빨간색 곰돌이 푸 가방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날씨가 몹시 춥지만 외로운 송이는 오빠가 교실에서 나오길 기다리면서 운동장을 돌고 있다.
철이는 송이를 보자마자 눈살부터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왜 기다리고 있었냐고 말한다.
철이가 송이의 기다림이 반갑지 않은 이유는 친구들과 함께 게임방에 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송이로부터 송이의 가방을 살 돈을 벌러 할아버지가 장사 나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철이는 시장으로 향한다.
시장 골목 한 귀퉁이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맞아 보인다. 철이는 목이 꽉 막히는 것 같다. 결국 몸이 성치 않은 할아버지는 밤새 기침하더니 새벽녘에 다시 병원으로 가셔야 했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가신 것도 모르고 잠든 송이를 보니 철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송이는 곧 절로 보내질 예정이다. 여섯살 때부터 철이는 송이를 돌봐야 했다. 일 나간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에 올 때까지 송이를 안고 분유도 먹이고 업어 재웠다. 철이가 입학하자 할머니는 송이를 방에 두고 문을 잠갔다. 철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열쇠를 따고 방문을 열 때까지 송이는 단칸방에서 혼자 놀았다. 그때부터 송이는 종이를 씹기 시작했다. 심심하고 배고플 때,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송이는 종이를 먹는다.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 할머니는 청소일을 하신다. 조퇴를 한 철이가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 화장실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는 할머니에게 철이는 송이를 절에 보내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자신도 송이를 따라가겠다는 말이 나온다.
"난 송이 없으면 못 살아. 나두 송이랑 같이 갈래. 송이랑 살 거야."
우는 소리를 듣고 잠을 깬 철이가 부엌문을 여니 할머니가 울고 있다.
늘 병치레를 하고 마음이 여린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언제나 억척스럽고 강했는데...
송이를 절에 보내려는 할머니를 미워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을 것 같다.
송이에게 가방을 사줄려고 저금통을 털었는데 2만원 밖에 안된다. 가방가게에 갔더니 송이가 원하는 가방은 3만원이 넘는다. 다솜이에게 곰돌이 푸 가방이라고 말한 송이는 푸 가방 아니면 안사겠다고 하고 화가 난 철이는 울면서 따라오는 송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걷는다.
숨겨놓았던 농산물 상품권 만원짜리를 합쳐서 철이는 송이의 가방을 사준다. 할머니는 가족 사진을 찍자고 하고, 송이는 푸 책가방 메고 사진을 찍을 거라고 한다.
가족 사진을 찍으며 철이는 생각한다. 젓가락질도 못하는 아기였던 송이를 이제까지 보살폈는데 정말 송이를 절에 보내고도 살 수 있을까.
큰스님이 보고 싶어 한다며 할머니는 마침내 송이를 절로 데려가시고 송이를 보낸 아침 철이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황망하다.
송이가 없는 방에 누워 있다가 문득 종이밥 생각이 난 철이는 종이를 씹어본다. 송이 말대로 종이를 씹으면 밥풀 냄새가 나는지 질겅질겅 씹는데 밥풀 냄새는 나지 않고 송이의 재잘대는 말소리만 떠오른다. 송이처럼 종이를 씹는 철이의 모습에 울컥~~
아침부터 내내 골목 어귀에 나와 있는 철이.
새벽 일찍 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혹시 송이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정말로 송이가 왔다. 할머니는 마음이 걸려서 결국 송이를 데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송이는 할머니가 넣어두었던 옷가지들을 하나씩 꺼낸다. 가난해도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다시 돌아온 송이를 위해 봄 방학식 날 받은 농산물 상품권을 꺼내 슈퍼로 향하는 오누이.
송이가 좋아하는 간식도 사고 할머니 좋아하는 삼겹살도 사겠단다.
송이를 업은 철이의 모습이 따뜻하고 정겨우면서도 가슴이 짠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두 아이들을 바라보며 질곡의 삶을 살아내는 모습에도 마음이 아프고, 오빠인 철이와 종이밥을 씹어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송이의 모습이 너무 애잔하다.
송이와 철이를 닮은 아이들이 지금도 많다. 항상 위만 바라보고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시기하지는 않았는지 내 모습을 반성해본다. 철이와 송이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이들도 형편이 어려운 가족이 많다. 갈수록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인 사람은 더 많은 부를 획득할 수 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내 이웃에게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내밀수는 있겠지만 한두 번의 온정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래도 역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 밖에 없겠지.
언제나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