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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롱이의 꿈 ㅣ 동심원 11
이옥근 지음, 안예리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9월
하루 하루 살아가다 보면 주변의 사물들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자극거리가 아닌 것엔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된다. 그렇게 무뎌지고, 게을러진 마음으로 동시를 마주하면 부드럽고도 잔잔한 시어들과 반짝거리는 표현들이 시원한 샘물처럼 온몸을 시원하고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푸른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동심원 시리즈 중 『다롱이의 꿈』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호기심과 일상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표현하고 있다. 너무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아서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 동생>
오랫동안 꿇어앉아
벌 받던
내 동생
일어서려다
힘없이 주저앉으며
울먹인다.
-엄마,
발가락이
사이다를 먹었나 봐.
발저림을 발가락이 사이다를 먹었다고 표현했다. 읽으면서 "맞아'하며 박수를 치고 말았다.
<은행나무>
"돈이 필요한 사람은 오세요."
"은행으로 오세요."
황금빛 은행나무가
반짝반짝 금돈을 흔들며
사람들을 부릅니다.
배고픈 사람 지나가면
노란 은행잎 떼어 주고
직장 잃은 아저씨가 지나가도
골고루 한 장씩 나누어 주더니
금세 금돈을 다 써 버린 은행나무
텅 빈 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넉넉한 하늘이
빙긋 웃으며
은행나무 빈 가지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겨울바람이 달려와 말했습니다.
“어, 은행나무에 하늘이 열렸네?”
배고픈 사람들, 직장 잃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노랗게 물든 자신의 잎사귀를 나눠주고 싶은 은행나무. 은행나무처럼 넉넉한 마음을 닮고 싶다.
<횡단보도 사다리 타기>
초록빛 신호에
나는 재빨리
길 위에 놓인 사다리를 탄다.
검은 칸은 훌쩍 건너뛰고
흰 칸에서 다시 힘을 모아
또 한 칸 성큼 건넌다.
"잘못하면 빠지니까 조심해. 아래는 검고 깊은 강
이 흐르고 있어. 물귀신이 네 다리를 잡아챌지도
몰라. 무시무시한 악어가 입 벌리고 있거나, 뜨거
운 유황불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수도 있어. 정신
바짝 차리고 조심조심 잘 건너."
엄마는 조심하라며
내 손을 잡아끌지만
한 칸 한 칸
나는 혼자서도 잘 탄다
횡단보도 사다리
엄마는 교통사고를 염려하며 무시무시한 말들로 주의를 주지만 아이에겐 그저 재미난 사다리 놀이인 횡단보도 건너기다. 얼마전에 아이와 횡단보도 앞에서 나도 겁을 주는 말들을 했는데 아이는 손으로 횡단보도를 가르키며 "사다리, 사다리"라고 했다. 이 시를 보면서 깜짝 놀랬다.
<갯벌 마을 철새>
갯벌 마을에 철새들이
이사를 왔습니다.
갯벌 식구들은
칠면초로 붉은 융단을 깔아 놓고
갈대 현수막으로 환영했습니다.
도요새, 백로, 흑두루미가 으스대고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가 떠들어도
아무도
텃새를 부리지 않습니다.
고향이 어디냐고.
몇 년째 다시 왔느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날 철새라고
눈총도 주지 않습니다.
모두 어우렁더우렁
정답게 살아갑니다.
뜨끔하다. 우리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가만히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을 사귀는게 아니라 신상조사를 먼저 하게 된다. 나이는 몇인지, 고향은 어딘지, 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집은 몇 평에서 사는지 등등... 그걸로 그 사람을 반쯤은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새들처럼 따져묻지 않고, 텃새부리지 않고, 어우렁더우렁 정답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사람의 사귐이 깊지 않고 그저 얉은 만남으로 판단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질책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