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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고마워 ㅣ 동심원 8
민현숙 지음, 조경주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6월
평점 :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개개인의 삶의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커다란 세계의 여러 흐름에 의해 개인의 삶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잘살기를 희망하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옛날이 살기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내 어렸을 적 보다 훨씬 많은 물질을 향유하고 있고, 원하는 것은 더 쉽게 가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 그건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이 가퍅해지고 여유를 잃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도둑이라 하지 않는다>
단지의 꿀 날마다 퍼 가도
꽃은 벌에게
도둑이라 하지 않는다
바닷속 소라 멍게 해삼.....
망사리 가득 주워 가도
바다는 해녀에게 도둑이라 하지 않는다
들판의 달래 냉이 씀바귀....
바구니 가득 캐 가도
땅은 사람에게
도둑이라 하지 않는다
<고마워 고마워> 동시집의 동시들은 내 기억의 호수에 돌을 던져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기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시골에서 그것도 섬에서 태어난 나는 유년시절을 한 마리 노루처럼, 숭어처럼 마음껏 산으로 바다로 뛰어다니며 놀면서 자랐었다. 봄이 오면 새싹들이 생글생글 돋아나고 앞산에 진달래가 가득 피면 앞산으로, 산딸기와 머루, 골짜기의 물이 졸졸졸 흐르는 것을 보고 싶으면 뒷산으로, 여름엔 눈을 뜨자 마자 바닷가로 달려가 벌거숭이인채로 파도에 몸을 맡겼고, 오후엔 물이 빠진 갯벌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조개, 굴, 조가비, 게, 고동을 살피고 잡기도 하였다. 가을이면 노랗게 익어가는 귤과 유자를 따러 들로 나가고, 겨울이면 뒷산 묘뚱의 마른 풀 위에서 신나게 미끄럼을 타곤 했었다. 그렇게 자연은 우리를 그대로 품어 주었고, 자연의 품 안에서 마냥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러다 도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시멘트 속에서 살다보니 마음이 점점 닫혀가고, 이해의 득실에 따라 사람의 관계도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연에서 배우기>
할머니는 말씀하세요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돌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돌 하나하나 들춰 보지 않아도
그 품이 안아 기른
지네 노래기 방울벌레....
수도 없이 많을 거라고
할머니는 또 말씀하세요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풀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그 풀 헤쳐 보지 않아도
됫박벌레가 숨어 있고
노린재 알이 깨어나고
태어나 처음 집을 짓는
어린 거미가 있을 거라고
이렇게 팍팍한 내 삶에 시 한편은 위안이 되기도 하고, 가뭄처럼 쩍 갈라진 마음에 촉촉한 단비가 되어 내리기도 한다. <고마워 고마워>란 시가 꼭 그렇다. 민현숙 시인은 "동심을 빌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우리 어린이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어요. 세상을 보는 창이 되어 어린이 여러분이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것들까지 찾아내서 느끼게 하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하찮아 보이는 벌레나 생쥐, 나비, 잠자리에도 시인의 따뜻한 눈길은 머물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이 세상 만물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고마워 고마워>
꽃아, 내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피어 줘서 고마워
새야, 내가 슬플 때 노래 불러 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 나의 엄마 아빠가 되어 주셔서 고마워요
친구야, 많고 많은 아이 중에 내 짝꿍이 되어 줘서 고마워
신호등아, 내가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도록 파란 불을 켜 줘서 고마워
옆집 개야, 내게 꼬리를 흔들어 줘서 고마워
신발아, 내 발 대신 흙탕물을 밝고 걸어 줘서 고마워
버스야, 나를 외할머니 댁으로 데려다 줘서 고마워
자전거야, 심심한 나랑 놀아 줘서 고마워
해야, 꽁꽁 언 시냇물을 녹여 줘서 고마워
가스불아, 내가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 줘서 고마워
암탉아, 맛난 계란을 낳아 줘서 고마워
일기장아, 내 비밀 얘기를 들어 줘서 고마워
고마움을 알면서도 미처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고마운 것들아, 너희들도 고마워.
따뜻한 마음과 깊은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은 이렇게 우리와는 다른가 보다. 어린이들에게 동시집을 권장하고 싶다. 노린재가 무엇인지, 됫박벌레가 무엇인지 아이와 함께 찾아도 보고, 아이들의 마음에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란 씨앗을 심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