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다 - 강제 징용자들의 눈물 보름달문고 37
문영숙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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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음산하고 무겁다.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어두컴컴하면서도 습기가 가득할 것도 같고, 먹물이 번진 듯한 모습이 왠지 이 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고, 아픔을 지닌 듯 한 인상을 준다. 

작가 문영숙은 신문에서 일본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생존자 김경봉 옹의 기사를 읽고, 바다 밑에도 탄광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한다. 어떤 사명감에 이끌리듯 김경봉 옹을 찾았고, 징용으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간신히 살아났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또 조세이 탄광 수몰 희생자 위령제가 해마다 열리는데 유족들을 따라 조세이 탄광이 있던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일본에 의해 나라 잃은 설움을 겪은 이 땅의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가 비참하게 살다 한을 품고 생을 마감한 사람들과,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검은 바다>는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생존자의 증언을 밑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똑같은 아들인데 장손인 형만 위하는 부무에게 찬밥신세인 강재는 불만이 있다. 학교에 입학한 형은 일본 아이들 틈에서 꽤 똑똑하다고 소문이 났는데 일본 아이들은 그런 형을 시기하고 괴롭힌다. 어느 날 형은 자신을 깔보는 일본 아이를 패준 덕에 교무실로 끌려가 일본 선생에게 피가 터지게 맞는다.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아버지때문에 형은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고, 일본 선생에게 맞은 형은  그 뒤로부터 깜짝깜짝 놀라는 등 허우대만 멀쩡한 바보가 되어 갔다. 어머니와 형이 읍내에 약을 지으러 갔다가 일본인에게 형이 강제로 끌려간다. 일본인들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구 끌고 갔는데 형도 그렇게 된 것이다. 부모님은 끌탕이시고, 읍내게 갔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강재에게 형을 대신해 가달라고 한다. 강재는 갔다만 오면 면서기를 시켜준다는 거짓선전에 속아 형 대신 끌려가고 큰 공장에 가서 기술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조세이 탄광으로 끌려가게 된다. 

흔히 탄광하면 산속에 있을 것 같지만 강재가 끌려간 곳은 다름 아닌 바닷가. 굴 속에 있는 바닷물을 뿜어 올리고 그 속에서 석탄을 채취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전쟁에 필요한 석탄을 채취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했고, 겨우 목숨을 이을 정도의 끼니를 주며 노예처럼 부려 먹는 것이다. 흡사 흑인 노예들이 저 아프리카 대륙에서 끌려오듯이 이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고, 채찍질을 하는 것도 똑같았다. 죽는 것보다 못한 이런 삶에 도망을 치는 사람들도 있고, 잡히면 모두들 보는 곳에서 때려서 죽게 만든다. 그러다 바닷물에 의해 막장이 무너지고 막장안에 갇힌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죽는 것을 보면서 강재는 틈을 타서 도망을 친다. 제철소에서 만난 일본인 야마타의 도움으로 먼저 막장에서 도망친 고향친구 천석을 찾아다니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타 죽고, 살아남은 사람도 끔찍한 모습인 광경을 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살아남았지만 제정신도 아니고 한쪽 손이 탄 천석을 만나 고생끝에 조선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끔찍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었던 역사를 우리에게 기억하게 하는 이 책은 우리에게 나라란 무엇인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일깨우게 한다. 그리고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고통받고 있음을 잊지말라고 하는 것도 같다. 일본과의 경제외교때문에 과거는 과거라느니 실리의 문제라느니 하는 말에 대해서도 정말 그게 옳은 처사인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강제징용자들, 정신대할머니들, 그리고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한민족이라는 것을 떠나 인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일본은 지금도 과거에 대한 반성없이 역사왜곡을 일삼고 자위대법을 부활하였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작은 반도에서 그것도 둘로 나뉘어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사실 나는 왜 북을 증오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친일파에 대한 역사 청산의 과정도 생략되어 있고, 오히려 친일파의 후손들이 버젓이 국가의 중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해야할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내가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생각해봐야 겠다. 

문영숙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이런 참혹했던 과거를 알려주어서...그리고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날 내가 이렇게 숨쉬고 자유로이 살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잊지말아야 할 역사가 있음을...그 속에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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