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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ㅣ 동화 보물창고 39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2월
평점 :
사회자(아빠): 오늘은 <빨간머리앤>에 대한 독서토론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이 작품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할머니께서 해주시겠어요?
할머니: 이 책은 캐나다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이에요. 내가 캐나다로 이민갔었던 고등학교 동창한테 지난 2년간 ‘좋은생각’을 정기구독 시켜줬는데, 글쎄 그 동창이 그에 대한 답례로 캐나다에서 영어로 쓰여진 <빨간머리앤>을 3권이나 보내왔을 정도로 이 작품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엄마: 캐나다를 대표하는 줄은 몰랐지만, 어릴 때부터 TV에서 만화영화로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도 EBS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송하는 것 같더라구요. 하여간 여자애들이라면 모르고 지나가기 어려울 거에요.
사회자: 우리 소홍이는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소홍: 요즘 인터넷에 올라오는 여러 글들에 비해서는 만연체인 것 같았어요. 문장이 길고 장면 하나하나에 대한 수식어구가 많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읽을 때는 좀 지루한 느낌도 들었지만, 고아에 대한 얘기, 그것도 잘못 입양되어버린 고아라는 설정에서부터 흥미를 갖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읽어나가 보니깐 얘기가 너무 재미있고 깜찍스러운 것 같았어요.
엄마: 이 작품이 쓰여졌을 때에는 지금처럼 영상매체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면 하나하나의 시각적 묘사에 작가들이 그렇게 공을 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그 장면들을 화려하게 떠올리며 즐거워했던 것 같구요. 그런데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너무 재미있게 흘러가니까 문장이 좀 길어서 불편한 것은 큰 장애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할머니: 이 작품은 그야말로 고전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어디 가서 교양이라도 좀 있는 척을 하려면 이 정도 책은 읽을 수가 있어야 하고, 소홍이나 소은이 소려가 언어영역에서 점수를 잘 받고 싶다면 이 정도 책은 줄줄 읽을 수 있어야 해요.
소은: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인 앤은 고아라는 처지가 불쌍한 것을 빼놓고서는 사실 그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어른들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잘 따르고, 종교적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얘기들만 있는 것 같아요. 마치 5-6세 아이들이 부모의 시선이 닿는 안마당 안에서만 꼼지락거리고 팔딱거리는 얘기 같다는 거죠.
할머니: 소은이가 잘 지적을 해 줬어요. 사실 이 책은 그냥 그런 동네 여자들의 수다거리에 딱 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읽는 재미는 있지만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독자의 인생에 어떤 의미나 변화를 줄만한 그 무엇은 좀 공허한 것 같죠. 그래도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사건들과 소재들은 지금도 여러 드라마에서 흘낏흘낏 보이는 것 같지 않나요?
소은: 어쨌든 그래서 저는 재미있게는 읽었지만, 이 정도의 책이 캐나다 문학을 대표한다고 한다면, 사실 그건 캐나다 문학계의 입장에서는 좀 창피한 거라고 봐요.
참석자 일동: 하하하
사회자: 하하.. 소은이가 생긴 것만 아빠를 닮은 것이 아니라, 독설을 펴대는 데서도 아빠를 많이 닮았군요. 그럼 이번에는 지금까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던 소려가 한 번 얘기해볼 까요?
소려: 저는요, 사실 이 책을 읽고 좀 놀란 데가 있어요. 책의 내용을 보면 종교적인 생활이 등장인물들의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좌우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야말로 종교적인 목장이나 우리 안에서 양순하게 길들여져서 살아가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이렇게도 살아갈 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그런데 그렇게 양순하게 길들여져서 종교적인 방식으로 한 생을 살아가기를 스스로 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죠.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서,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는 거구요.
소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간다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그렇다면 기독교와 대립적인 이슬람교도 있는 거고.. 그렇다면 이렇게 특정 종교에 치우친 문학작품은 학교 교과서 같은 데에는 실리면 안될 것 같아요. 수능시험 같은 데에도 지문으로 출제되면 안될 것 같고요.
소홍: 저도 소려와 비슷한 생각인데, 저는 종교에 저의 일상생활과 저의 미래와 희망을 저당 잡히고 싶지는 않아요.
할머니: 소홍이나 소려의 의견에 많은 부분 동감하는데,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군요. 서구사회, 그러니까 백인 유럽사회는 기독교문명이라고 봐야 해요. 그들의 문화에 있어서 기독교를 제외하면 사실 남는 것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그들의 문화는 그려러니 하고 볼 수 있어야 해요.
사회자: 매우 날카로운 지적들이고, 또 나중에 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더 깊게 토론해 볼만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종교적 측면의 이런 지적은 이 정도로 짚고 넘어가는게 좋겠군요.
소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저는요 주인공 앤이 입학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얘기를 읽으면서 솔직히 좀 역겨웠어요. 그 작은 마을에서 열심히 해서 길버트와 우등생을 다퉜다는 것 정도는 개연성이 있지만, 더 큰 규모의 학교의 입학시험에서 1등을 했다고 하니, 또 1등생 얘긴가 싶더라구요. 그랬다가 나중에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걸 보면서 좀 안도감 같은 걸 느꼈었죠.
엄마: 요새 아이들의 시험이나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보통이 아니죠. 그래서 소은이가 좀더 예민하게 느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도 사실 좀 너무 뻔하다 라는 생각이 안들은 것은 아니에요.
사회자: 1등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선생들이 출제한 시험문제에 대해서 그 선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장 근접하게 답을 고르거나 써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건 자기자신에게 있어서 아무 의미도 없다고 봐요. 내가 하는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지 선생들이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냥 선생이나 시험이나 성적이라는 것은, 내가 공부를 하기 위한 수단이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내가 공부해 나가는 이 세상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선생이나 시험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고, 그 잡다한 것들은 먼지처럼 조그많게 만들어서 보고, 진짜 가슴 떨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자체를 자기의 맨 눈으로 들여다 보고, 자신의 맨 손으로 만져봐야 할 것 같군요.
소려: ㅋㅋ 아빠가 또 흥분하셨다.
참석자 일동: 하하
사회자: 네, 그럼 특별히 다른 의견이 없으면 할머니의 앤(Anne)의 그 다음 얘기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더 듣고 이 자리를 마치도록 하죠. 할머니는 앤이 어른이 된 다음의 이야기책까지 다 읽으셨거든요.
할머니: 음.. 그러니깐 결국 앤은 길버트와 결혼을 하구요, 여러 아이들을 낳는데, 첫 애는 어려서 죽어요. 그리고 둘째는 문학적 소양이 있는 아들이었는데, 1차세계대전에 참전을 했다가 애석하게도 전사하게 되지요. 그리고 다른 아들 하나도 참전을 하는데 다리를 많이 다쳤지만 살아서 돌아오는 걸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아들이 기르던 개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몇 년 동안 역 앞에서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추레해진 주인을 그 개만 알아보면서 반가워서 컹컹 짖어대는 이야기가 나와요.
앤의 절친한 친구였던 다이애나는 프랭크와 결혼하게 되는데, 앤과 다이애나 사이에 길버트로 인한 갈등은 없답니다. <빨간머리앤>의 전반부에 앤이 꾸며대는 이야기 중에서 절친했던 두 여자 친구가 결국은 남자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죽이고 미쳐버리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앤의 이후 이야기의 암시나 복선이 아니니깐 걱정해 할 필요는 없어요.
소홍소은소려(동시에 일제히): 역시 할머니는 책을 많이 읽으셨구나!!!
사회자: 자, 그럼 오늘의 독서토론회를 여기서 마치고 모두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마구 퍼먹자!!!
참석자 일동: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