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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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문학 강의노트가 열렸다. 사십 년 전쯤 문학에 처음 눈뜬 저자는 오늘까지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읽고 쓰고 강의하고 있다. “좋은 소설은 이미 알고 있는 앎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되묻게 한다는 사실”이라면 저자는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매번 무엇을 보고 쓰고 있을까.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2012부터 2020년까지 일간지와 주간지 등에 저자가 써왔던 약 100여편의 서평과 발문, 헤제를 담고 있는 리뷰 모음집이다.

 

이현우만의 문학 서평이란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도 충실한 줄거리 전개에 있다. 작품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시 살려 놓아 아직 그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내용을 가늠케 해준다. 또한 소설가가 펴낸 작품의 언급이나 그 소설이 나왔을 때의 배경을 서두에 배치하여 생소한 소설을 접하는 독자도 충분히 서평을 읽어가게끔 한다.

 

줄거리 속에 저자는 당대에 각 작품이 갖는 의의도 끼워놓아 그 소설만의 역사성도 전달한다. “<고리오 영감>이 표준적인 소설이라는 말은 라스티냐크의 투쟁이 근대 소설의 기본형이라는 뜻이다”, “1830년대는 근대 사회소설이 본격적으로 발아하던 때였다”,“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은 유럽이라는 타자의 인정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저자는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비교 설명하기도 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초반본에 빠져 있는 여주인을 사랑한 하인의 에피소드, 각 출판사마다 차이가 나는 번역부분을 각 번역자마다 예를 들어 설명하는 등 문학 작품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서평의 마무리는 통찰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바틀비를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저항의 주체로 보는 철학자들의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기계적 충실성이 역설적으로 강력한 위협이 되는 사례를 바틀비에게서 발견한다”, “모파상의 단편은 물질적 부가 계급적 차이를 낳고 그에 따라 시간도 달리 배분된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진실과 직면하게 한다.” 위트 섞인 마무리도 있다. “좋은 소설은 모든 문제를 더 복잡하게 생각하도록 이끈다.”(파묻힌 거인), “<소송>을 읽으며 아무래도 좋지 않은 소송에 말려드는 느낌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각 소설이 익숙한 독자라면 저자만의 언어가 담긴 마무리에 눈이 오래 머물지 않을까.

 

“나로서는 이번 여름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설 가운데 하나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읽은 김수영 시집이어서 애착이 간다”, “여러 차례 지인들에게 선물하였고, 학부 1학년 문학 개설 시간에 나눠줬던 글”이라며 저자의 목소리가 직접 드러나는 책 소개는 독자의 지갑을 바로 열게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책에는 저자가 유럽, 일본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쓴 리뷰와 알렉시예비치의 인터뷰도 담겨있다. 셰익스피어에서 시작한 여정은 유럽, 러시아를 거쳐 가르시아 마르케스, 루슈디, 하루키 그리고 한국 소설에 다다른다. 마치 세계문학의 전체를 아우르는 풍성한 상차림과도 같다.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이들과 문학에 관심있는 독자들이라면 함께 하고픈 식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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