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Review /『Moderato Cantabile』by Marguerite Duras

 -이국적인 제목 위에서 펼쳐지는 낯선 대화,

피아노를 배웠거나 음악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용어, ‘모데라토 칸타빌레’. 보통 빠르기로 노래 하듯이 라는 뜻이다. 소리 내어 발음하면 더욱더 낯설고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용어. 반복적으로 발음하면 그런 느낌이 더 심화된다. 이렇게 낯설고 이국적인 용어가 제목이다. 음악을 주제로 한 소설인가?

이 소설은 대화체 소설이다. 하지만 일전에 경험한 아멜리 노통의 작품처럼 지루하고 난 척하는 대화가 아니다. 모데라토 칸티빌레를 밑에 깔고 그 위에서 전혀 장르가 다른 두 음악에 맞춰 동시에 노래하듯 춤을 추는 남녀의 모습이 연상되는 대화다. 이를테면 피아졸라의 탱고와 브람스의 왈츠가 동시에 연주되고 남녀가 서로 파트너 없이 파트너가 있는 양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그런 상황. 타자가 보기엔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지만 정작 춤을 추고 있는 당사자들은 너무도 엄숙하여 감히 웃을 수도 없는 이상야릇한 분위기. 딱 그런 분위기의 대화다.

정숙하고 입방아에 오른 적도 없이 조용히 살아온 상류층 주부 안은 아들의 피아노 레슨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그때부터 안의 잠재된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카페에서 하층 노동자 쇼뱅과 대화를 시작한다. 포도주를 마시며 그들이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안은 살인사건의 여자가 되고 쇼뱅은 남자가 되어.

실재하지도 않는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안과 쇼뱅의 대화에는 묘한 긴장감이 관통하고 있다. 초반 발생했던 살인사건을 제외하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둘의 대화에선 범상찮은 기운이 감돈다. 동문서답이 오가고 남자는 작품 중반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만 둘은 살인사건의 당사자들이 되어 절대적 사랑을 찾아 대화로 끊임없이 헤맨다. 그리고 손을 포개고 가벼운 입맞춤이 전부이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섹슈얼리티도 정말 대단하다. 묘한 긴장감 속에서 발산되는 숨막히는 섹슈얼리티, 이것만으로도『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이것들이 발현되는 형태가 ‘대화’라는 것은 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동문서답과 망상의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가다 결국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로 되었어요” 그들은 결코 실행할 수 없는 것을 그저 ‘언어’만으로 실현한다. 그대로 되었어요, 라는 마지막 대사 한 마디로 안의 일탈은 끝이 났고 쇼뱅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들의 일탈을 지켜보던 카페 주인은 라디오 볼륨을 높임으로서 암묵적으로 일탈의 마지막을 선언한다.

허무한 일탈의 종말과 함께 브람스의 왈츠와 피아졸라의 탱고는 바흐의 미뉴엣으로 합쳐지고 남녀에겐 서로의 진짜 파트너가 생긴다. 그리고 삐걱거리며 춤을 춘다. 남녀는 서로의 파트너에게 속삭인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파트너들은 답한다. “그대로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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