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Review /『새의 선물』, 희경

-삶을 사랑하는 작가의 여유

 

 

처음 책이 출판되었을 은희경 외에도 공지영, 전경린 많은 여성작가가 한국 문단에 등장했다. 당시 젊은 작가군에 속했던 이들은 기존 세대와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면서 전경린은 자아에 갇혀 웅얼거리는 짜증 정도로 평가되고 공지영 활동이 뜸하다. 은희경 정도만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는 같다(평가는 둘째 치더라도). 은희경에게 1 문학동네 신인상 안겨준『새의 선물』은 은희경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말해 주는 작품 같아서 첫머리가 길어졌다.

 

30 중반의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주된 화자는 12살의 . ‘ 모범생에 공부도 잘하고 어른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착한 어린이다. 하지만 엄마는 미쳐 자살했고 아버지는 사라져 버려서 외할머니, 이모와 함께 살아간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세파(世波) 겪은 탓인지 속에는 구렁이가 들어있는 애늙은이다. 그리고 애늙은이가 구경하고(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구경이다) 있는 진짜 어른들의 세계는 모순투성이에 우습기까지 하다.

 

화자는 이지만 주인공들은 나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다. 스물을 넘어 싱싱한 젊음이 넘치는 이모,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과 욕하는 낙으로 살아가는 장군이 엄마, ‘ 첫사랑을 느끼는 삼촌의 친구 지속적으로 관찰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아주 앙큼한 속내로 그려낸다. 그런데 앙큼한 속내가 아주 재미있다. 장군이 엄마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장군이에게 심리 트릭까지 써가며 장군이를 변소에 빠뜨리는 장면에선 소리내어 웃을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모에게 찾아온 사랑에 대해 멋대로 분석해가며 이모의 심리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계집애, 정말 귀엽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 12 소녀, 진희의 입을 빌려 갖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작가에게선 삶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진희가 말하는 에피소드들에서 삶에 대한 애정이 가장 드러난 부분은 엉뚱하게도 양장점 미스리의 도망이다. 한가로운 오후, 햇살이 좋은 보통 날에 미스리는 양장점의 돈을 가지고 남자와 함께 튀어버렸다. 할머니는 곗돈을 걱정하고 양장점 주인은 가겟일을 걱정하며 장군엄마는 입방아거리가 생겨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와중에도 사람들은 미스리와 함께 도망간 남자를 걱정한다. 외모가 반듯하지도 돈이 많지도 않은 청년이 미스리에게 버림받을 거라면서 말이다. 청년은 미스리만 믿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따라 나섰지만 그는 결국 미스리에게 구실일 뿐이라며 청년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함. 그들의 따뜻함이야말로 작가가 우리의 생애를 사랑하는 시선을 담고 있다. 이런 시선에선 애틋함마저 보인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도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져 푸근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400페이지 정도되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슥슥 읽혀질 정도다. 발칙한 계집아이의 눈과 귀를 빌려 세상을 탐구하는 은희경 시선이 따뜻하고 재밌지만 우습지 않은 이유는 삶을 사랑하는 작가의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인 듯하다. 카인의후예,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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