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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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세상사 하나 다를바 없다는 느끼면서 낄낄댈 있어!



   소세키는 유머러스하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며 인간의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이면들을 들춰내지만 찐덕하게 젠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면을 이해할 수 없다며 욕하고 지랄한다. 그런데도 경쾌하고 유쾌하다. 소세키의 다른 작품『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비하면 이 작품은 투박하고 거칠다. 세련된 화자이던 고양이와 달리 우리의 도련님은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고 치기만 가득한 촌스러운 화자이기 때문인데 이것이『도련님』의 매력이다. 씩씩거리며 세상과 사람을 욕하며 불만을 뿜어내는 어린 사내의 시골적응기엔 이런 화법이 어울린다.

   시골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무뚝뚝하지만 마음 씀씀이가 곱고 순박한 사람들과 주인공이 벌이는 좌충우돌 적응기가 연상된다. 그러나 소세키는 이런 나의 통념을 배반하며 그곳에도 어느 곳에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니 사실 그렇다. 지금까지 살면서 공간에 사람이 지배되는 것보다 사람이 공간을 지배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예를 들어『로빈슨 크로소』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로빈슨 크로소가 무인도에 적응하는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로빈슨 크로소가 살아남기 위해 무인도를 지배하는 이야기다. 밭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고 집을 지으며 무인도를 변화시킨다. 이것이 지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니『도련님』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걸 이제서야 깨달았냐고. -_-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부임한 시골학교는 도통 도련님 마음에 안 든다. 너구리 같은 교장, 빨간 셔츠만 입는다는 교감, 승려병 같은 수학선생, 떠버리 미술선생, 얼굴색이 끝물 호박 같은 영어선생 등 혼자 별명을 붙여가며 학교를 탐색하는 도련님. 워낙 손바닥만한 동네라 도련님이 튀김국수를 먹어도 당고를 먹어도 다음날 학교에 가면 그걸 구실로 아이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교장에겐 요릿집을 자제해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충고까지 듣는다.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마음 붙일 곳이 없는 도련님은 가족보다 자신을 더 위하고 사랑했던 기요가 늘 생각나고 그립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이해관계 속에서 늘 일종의 음모가 진행되는 시골생활을 도련님은 견디는 것이 쉽지 않다. 늘 툴툴거리며 욕을 하지만 대놓고 그러진 못한다. 이곳에는 도련님을 보호해 줄 기요 같은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성인이지만 아직 ‘어른’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엔 부족한 우리의 도련님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것을 작가는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익히 읽어왔듯 소세키의 유머는 ‘비틀어짐’에 그 핵심이 있다. 화자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들을 난잡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속이 뒤틀려 혼자서 그들을 비틀고 조롱한다. 그런데 화자를 둘러싼 인간군상이 나를 둘러싼 인간군상과 다르지 않아 공감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이쯤 되면 읽으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될 것 같지만『도련님』은 그렇지 않다. 분명 한구석이 찜찜한데 그런거 다 무시하고 낄낄낄거리게 된다. 부담 없이 소리내어 웃게 만드는 것, 이것이 소세키의 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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