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Review /『Sur la mort d'un chien』by Jean Grenier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나를 발견하다,




그르니에의 글은 대쪽같은 단정함이 있지만 버드나무 가지 같은 유연함도 가지고 있다. 모호하고 어려운 말로 독자에게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조근조근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그르니에의 문체가 친절한 것은 아니라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유치원생을 대하듯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가끔 이렇게 다 설명해서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작가들도 있다) 조근조근 대화하다 툭- 생각을 던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진 그 생각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숨겨진 사유가 흘러나와 마음 한켠에 오랫동안 자리잡는다. 이런 것이 그르니에 글의 매력이다.


『어느 개의 죽음』은 그르니에가 기르던 개, 타이오의 죽음부터 시작된다. 주인에게 무언의 의무를 종용하던 그 개가 죽었다. 실로 귀찮기도 하던 의무였지만 개가 사라지고 나자 그 의무가 그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의무를 부여할 타이오는 없다. 타이오의 죽음으로 자신의 이성과 감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애완견이었던 주제에 자신에게 균열을 선사하다니! 그래서 그르니에는 그 균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글을 쓴다.


한 달 정도 동안 쓴 짧은 90편의 단상들에는 깊고도 심오한 사유들이 녹아있다. 글을 읽다가 문득, 그르니에의 사유를 관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것은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하며 글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엄하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로하는 글을 쓰면서도 독자는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글쓰기, 대단하다. 독자는 몰입하진 못하지만 공감은 한다. 이것은 그르니에의 글이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보편적인데 몰입은 못하고 공감은 한다? 쓰고 나니 뭔가 이상하다. 그러나 나에겐 이랬다.

40. 나는 삶을 끔찍이 사랑한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행복을 갈망하지만 그것을 강요할 힘은 지니고 있지 않다. 정작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은 당신이 삶을 향유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당신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결국, 숨어버리거나 당신의 행복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그들에게 믿게 하는 길밖에는 없다.


52. 지금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모두 공허할 따름이다. 이를테면 나는 말라비틀어진 상태에 놓여 있다. 내게 머무르던 감정의 거대한 물결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나를 엄습했던 그 물결 속에 언제까지나 잠겨 있으리라 믿었는데……, 그 물결은 언제고 곧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 메마름을 즐기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것은 행복이 아니라 결핍이기 때문이다.


74. 환자와 가까운 사람들이 환자들에게, 아이들이 노인들에게, 모두는 아니지만 몇몇 간호원들이 환자들에게 베푸는 세심한 배려는 아름답게 여겨진다. 물론 베갯잇을 바꾸어주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밖엔 달리 해줄 일이 없는 상황이라면? 환자를 서서히 죽이는 일을 자연에게(신에게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맡겨놓은 채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하여 그 자연에 대적하지만 그 온 힘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것>이 나를 감동시킨다. 그것은 인간에게 허용되는 한계이다.


75. 자연과 인간의 투쟁을 떠올린다. 그 투쟁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테면 양자의 관계는, 기독교에서의 신의 계보에 따르면, 성부와 성자의 관계와 같다. 성자는 성부에게 기도드리고 간청할 뿐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수난사 중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고난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행한 미약한 반항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느끼는 사랑이다.


90. 간단히 말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또는 사랑할 마음을 지닌 대상을 사랑하자. 보잘것없는 설득력을 이용하려 들지 말고, 우리가 보다 나은 존재라고 믿지도 말자.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놀라운 은총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커튼을 걷고 누군가 우리에게 손을 뻗는다. 서둘러 그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자. 만일 그 손을 거두어들인다면 당신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오직 사랑이란 행위를 통해서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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