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 전집
이솝 지음, 로버트 올리비아 템플 외 엮음, 신현철 외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당장 이솝 우화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동물들이 등장해서 개별적인 개성이 강조된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뭔가 교훈과 생각할 무언가를 전달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옮긴이는 물론 그런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좀 더 확대해서-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기도 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 접하게 된다면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재미와 함께 교훈을 그리고 어떤 냉소를 느끼게 되는 것이 가장 적당한 느낌일 것 같다.

 

어떤 것이 이솝이 만들어냈고 어떤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한 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 전집은 가벼운 기분 속에서 뭔가 여러 이야기들을 접하고 싶은 생각에 읽게 되었고, 나쁘지 않은 방식으로 짧은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를 경험한 것 같다.

 

어떤 이야기는 이미 자주 접했던 이야기이고

어쩐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도 이솝의 이야기였던가? 하는 놀라움도 있었고

어떤 이야기는 처음 접했지만 무척 재미나게 읽혀지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어떤 이야기에서는 이건 이솝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떤 것이 이솝의 이야기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구도 모를 것이다.

 

감탄하게 되는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짧은 이야기에서 다양한 개성과 관심 그리고 교훈을 전달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통해서 때로는 비정함과 냉정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는 등 어떤 방식이라고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는 여러 개성들을 찾을 수 있기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번 읽어보라는 말만 하게 되는 것 같다.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니 그저 한번 천천히 읽어보면서 짧은 이야기 속에서 어떤 감탄을 느낄 것 같다.

 

그 감탄 속에서 느끼는 여러 관심과 교훈은 각자가 알아서 느껴야 할 몫일 것이다.

 

 

참고 : 어쩌면 이솝은 지금 이 시대에 맞춰서 생각한다면 웃음과 냉소를 교묘하게 섞어낸 비평가나 희극인-코미디언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한 건축 Essays On Design 6
쿠마 켄고 지음, 임태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쿠마 켄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약한 건축은 관심을 갖게 되기보다는 지나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어쩐지 제목 때문에 지나치지 못하고 눈에 들어와 손에 쥐게 되었고 생각 이상으로 인상적인 내용들로 가득해서 단숨에 읽어버리게 된 것 같다.

 

약한 건축이라는 제목은 곧장 반박과 물음을 갖게 한다. 과연 건축이 약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하지만 (당연히) 실질적이거나 혹은 물질적으로 약한 건축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견고하고 완고한 고집스러운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거대해지기만 하는 규모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저자의 약함 의미에 대해서 여러 방식으로 생각해보면서 그걸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단단하고 일관된 논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기분으로 건축에 관한 여러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려고 하는, 그렇다고 아무런 주제 없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말하는 것도 아닌 느슨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건축에 대해서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는 약한...’은 쿠마 켄고가 단순히 뛰어난 능력의 건축가 이상으로 생각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건축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과 주관을 어떤 식으로 말하려고 하고 있으며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건축에 관해서 그 시대에 머물고 있기만 한 것이 아닌 시대의 한계와 시대의 의미 또한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설득력 있게 자신이 생각하는 건축을 읽는 사람이 이해하고 동의하도록 하고 있다.

 

저자는 건축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 아주 오래된 과거부터 건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닌 20세기 근대 건축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후의 건축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고 있고, 국가와 사회정책과 그 정책이 갖고 있는 목적 그리고 그에 대한 건축가들의 대응을 설명하고 있고, 경제정책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케인스가 주장한 경제정책의 장단점을 말하면서 현재까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축에 대한 입장과 생각들에 대해서, 어떤 고정관념으로 되어버린 건축에 대한 입장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있다.

 

과거와는 분명하게 다른 입장과 전망을 갖고 있었던 흔히들 말하는 모더니스트로 불리는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과거와는 분명하게 다른 새로운 건축을 그들이 제시했으며 그들이 자신들의 건축을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압도했는지를 알려주고 있고, 건축에 대한 입장과 생각보다는 형이상학적 논의라고 말할 수 있고 철학적인 논의라고 생각할 수 있을 일종의 세계관에 관한 논의라고 말하게 되는 형식과 자유, 추상, 현상학, 컴퓨터로 인해 20세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조건과 환경을 만들게 된 기술발달과 전환,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계 등 건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 잘 생각해보지 않거나 주변으로 밀려날 수 있을 논의들을 간략하게라도 다뤄낸 다음 일본의 건축에 대해서 말하게 될 때 무척 중요하게 다뤄지게 되는 안도 타다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그의 건축을 직접적으로 다뤄내는 것이 아닌 그를 둘러싼 공공의 건축과 개인의 건축이라는 큰 흐름의 변화 등 여러 환경 및 조건의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 건축가들이 어떤 곤란함과 난감함을 느끼고 있는지를, 어떤 식으로 각자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건축의 큰 흐름과 변화를 되새겨보면서 어떤 문제점이 있었고 잘못이 있었는지를 진단하고 있고, 지금 현재의 흐름에서 잘못된 점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는 등 기본적으로는 비평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하고 있으며, 사회적 경제적 환경과 조건 속에서 각각의 건축가들이 어떤 식으로 그 시대의 한계를 알아채고 나름대로의 대안과 돌파를 제시했는지를 또한 살펴보며 대표적인 건축과 건축가들을 저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다.

 

이후의 논의는 사그라지고 주목받지 못했던 혹은 실패한 흐름과 시도라고 평가되기도 하는 여러 건축적 흐름과 그에 반해 성공하고 이겨낸 혁명적인 흐름과 시도들에 대해서, 건축 자체만이 아닌 건축을 좀 더 인상적이고 도드라지게 만드는 효과들에 대해서 등등 다양한 짧은 글들에서 저자의 여러 관심과 생각들을 확인하게 되기도 하고, 건축을 생각할 때 쉽게 놓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20세기 건축의 큰 흐름을 다뤄내고 있으면서도 여러 세부적인 논의들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박식함과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폭넓은 관점은 무척 인상적이고 감탄하게 된다.

 

별다른 생각 없이 집게 된 책이었지만 건축에 대한 책 중에서 무척 돋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지한 스승 -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해방하는 아버지는 무던한 교육자가 아니라 고집 센 스승이어야 한다. 해방하는 명령은 협정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명령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주체에게만 절대적으로 명령한다.

 

 

참고 : 아래 글은 정돈되지 못한 글이지만 상세한 각주와 옮긴이의 말이 너무 자세히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그걸 읽어본 사람이라면 굳이 아래 글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크 랑시에르

 

그동안은 그리 알려지지 않던 자크 랑시에르가 갑작스럽게 국내에서 많이 언급되고 논의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흔하디흔한 유행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를 찾게 된 충분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소상히 알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그럴 능력이나 생각도 없기 때문에 그저 그의 저작들이 제대로 번역되어서 소개될 수 있으면 그걸로 그만인 것 같다.

 

랑시에르의 여러 저작들 중에서 무지한 스승이 유달리 눈에 띈 것은 아니다. 특별히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궁금하게 만들었고 관심이 가게 되어서 찾아 읽게 되었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읽게 된 무지한...’이지만 읽다보니 어쩐지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 자주 떠올려지며 읽게 되었다. 그건 오로지 나만이 생각할 수 있겠지만 두 책 모두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얼핏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말에 조금은 납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랑시에르가 사사키 아타루를 알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사사키 아타루가 랑시에르를 알고 있어 자신의 논의와 유사한 부분을 언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건 하나의 가정이고 추측일 뿐이지만.

 

과연 사실일까? 라는 궁금함이 당장 들게 되는, 혹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라는 생각만 들게 되는 무지한...’에서의 조제프 자코토의 지적 모험은 한편으로는 믿겨지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능했어도 그건 순전히 자코토만이 가능했고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지적 모험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 시대만이 가능했을 지적 모험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패배적인 생각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자코토의 지적 모험을 알게 된다면 지금 현실에서 그런 식이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에 동의를 하지 않기가 어려울 것 같다.

 

또한 자코토만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뜻은 그 지적 모험이 (쉽게는)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랑시에르의 말대로 뿌리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게 된다.

 

지적 모험? 점잖게 말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파격적으로 말한다면 지적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우연 때문에 시작되었기는 하지만 무지한...’에서는 일련의 관계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우고,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파생하고 하나의 연장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 관계들, 권력과 정치에 대해서까지 확장시켜서 생각해보게 만들고 일상에서의 앎과 생각에 대해서, 온갖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고 확장-확대시켜보게 되어버린다.

 

우연이었고 조금은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전복적인 순간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코토의 방식이 그리고 랑시에르의 접근이 한편으로는 별 것 아니고 무척 알기 쉬운,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과연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지를, 어떤 방식으로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그것이 갖고 있는 이상한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혹은 정확히 모르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앎은 항상 어렵기만 하다.

자코토와 랑시에르가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그건 쉽지 않게만 느껴진다.

 

가르치고 전달하는 것 설명하고 명령하는 것에 대해서

배우고 이해하고 익히고 복종하는 것에 대해서

 

자코토는 랑시에르는 그 당연함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되고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하지만 그 접근은 전혀 색다른 것도 아니고 생각지도 못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파격적으로 느껴지고 생소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배우고 이해해내는 것을 자코토와 랑시에르는 말하려고 한다. 당연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만들고 있다.

 

그렇게 자코토와 랑시에르는 해방에 관해서 말하려고 하고 있고 평등과 의지를 알려주려고 한다. 전혀 접해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식으로 알려주고 있다. 우연이 필연이게 되어버리게 만든다.

 

눈부시며 가장 어려운 도약이지만 그것은 반대로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방식의 도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코토와 랑시에르의 주장은 온갖 방식으로 비판받고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차이

우월

열등

 

이런 구분과 순서, 위계에 관해서 자코토와 랑시에르는 저항하고 진정한 해방을 말하려고 한다.

 

배우라

되풀이하라

모방하라

번역하라

문장을 뜯어보라

다시 붙여보라

 

해방을 위한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진리를 자코토와 랑시에르는 알려주려고 한다. 그것이 과연 진정으로 진리이고 해방을 위한 실마리일까?

 

분명한 것은 여전히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위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위대한 표현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을 말하고 평등을 입증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 “진리는 고독하게 자기를 의식하는 인간에게만 말을 건넨다는 주장을 쉽게 물리치거나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곱씹고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좀 더 반복하며 생각해보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잊기만 할 것이고 무슨 말인지 되풀이하며 읽어내진 않고 다른 책들을 뒤적거리기만 하겠지만 자코토와 랑시에르가 말한 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전달하고 싶어지게 된다.

 

혹시 누군가가 이 사라지지 않을 진리를 다시금 말할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지를 보라 - 1920년대 경성의 밑바닥 탐방
아카마 기후 지음, 서호철 옮김 / 아모르문디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가 부르면 인간은 게을러진다.

배가 고프면 인간성은 황폐해진다.

이것이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된다.

배고픈 자에게 지금 무슨 말을 들려준들,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배불리 먹고 싶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으니까...

어쨌든 그날그날의 생활에 쪼들리지 않는 사람은 남의 일도 생각해 줄

여유쯤은 있을 테니까,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자기들의 세계 이외의 것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배부른 자들이 배고픈 자의 괴로움과 애달픔을

좀 알아주었으면 하고, 이 책을 쓴다.

 

 

 

도시는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을 갖는다. 한편에는 우뚝 솟은 건물들, 차량과 인파로 붐비는 거리, 쇼윈도를 장식한 최신 유행의 상품들, 거리를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볼거리가 넘치는 화사한 도시의 얼굴이 있다. 그것은 자연을 극복하고 이룩한 인공낙원, 모던의 상징이다. 그러나 뒷골목이나 산동네, 다리 밑으로 대표되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은 빈곤과 굶주림, 범죄, 유혹과 타락 같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빈부의 차이는 있을 테고 돈으로 사고 파는 쾌락과 만족의 뒷면에는 상품화된 노동과 성의 비참함이 있겠지만, 도시에서는 빛이 선명한 만큼 그늘도 더욱 짙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혹은 후기와 소개를 찾아보고 읽어보다가 알게 된 대지를 보라는 여러 가지로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해 보였기 때문에 무척 관심이 갔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보다는 이른 시기에 읽어보게 되었다.

 

평소였다면 기억만 해두거나 나중에서야 그런 책이 있었는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경성-서울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대지를 보라처럼 독특하고 특별함을 보여주는 책은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를 것이고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이런 내용을 다룰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어떤 과정 속에서 저자는 이름 모를, 지나쳤을 뿐인 삶을 살펴보게 되었을까?

 

저자는 일본인이고

기자 출신이며

극우까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우익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되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우익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보다는 온정적이고 동정적이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도 생각과 관심도 궁금하지만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 자체가 가장 궁금해지고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무관심하게 생각하고 지나쳤을 이야기들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고, 무척 이상하다고 싶을 정도로 관심과 (기자 출신 때문인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던 것일까?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그런 궁금증과는 별개로 대지를...’는 충분히 인상적이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그 당시의 풍경과 밑바닥사람들의 삶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고 글자 그대로 탐방하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멀고 먼 과거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옛 이야기도 아니고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되고 저자가 지켜보고 몰래 찾아가 보게 되는 모습들을 조금만 달리 생각하고 지금 시대에 맞게 생각한다면 그리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많이 생소한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서글프고 고달픈 삶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삶이란 이처럼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다지 달라지지도 않은 것 같다.

 

다만, 저자가 보려고 하고 있고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어떤 학문적 관심이나 직업적인 사명 등이 아닌 (쉽게 말해서) 팔릴만한 이야기를 찾고 있기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저자의 관점 자체가 그런 식인지) 어떤 경우는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차별적인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고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들을 다뤄내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는 어떤 관점에서 아우르려고 했던 것인지 헷갈려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도색 잡지에 실릴만한 싸구려 이야기도 있고 신문 사회면에 다뤄질 실태 보고와 같은 내용들도 있는 이것저것 관심이 가는 것을 제멋대로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번역자의 머리말처럼 때로 그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면서 ... 사회의 인식과 반성을 촉구하기도 하지만, 어떤 대목은 꽤 선정적인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를 생각하면서 글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를 좀 더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저자의 호기심이 원래 그런 식이었거나.

 

분명한 것은 저자와 이 책의 성격이 한 가지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복잡한 만큼, 읽는 재미는 더 쏠쏠하다.”

 

1920년대 경성-서울의 하층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이것 말고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다면 이런 내용이라면 탐사보도나 기획취재로 아주 나쁜 수준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기괴하고 엉뚱한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책만 가지고 연구를 하다 보니 그 논의가 현실과 잘 들어맞지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엉뚱하고 기발한 방식이 오히려 좀 더 그 당시의 현실과 실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실마리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고 현실과 실상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대상이 아닌 인류학적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과거에 속하는 낯선 사회로 치부하는 시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경성이라는 도시의 어둡고 그늘진 면에 주목하고 현장에서 하층민의 삶을 밀착취재해서 그 실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책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감으로 가득하고 현실감이 넘쳐난다.

 

동정과 냉대 그리고 배제에 대한 분노보다는 기구한 신세에 대한 한탄, 가난함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신기하고 낯선 추하고 성적인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관음증이면서도 흥미롭기만 하다.” 그리고 그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낯선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개성 있고 독특한 방식으로 밑바닥의 삶을 훑어보는 저자의 관점과 방식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하게 만들지만 그러면서도 번역자에 대한 얘기 또한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온갖 자료들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들의 부족한 부분을, 저자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통해서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과 정보들을 소상하게 알려주면서 그 사실감과 현장감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번역자는 어떤 의미에서 공동 저자에 가깝다고 말해야만 할 것 같다.

 

저자의 감각과 노력은 돋보인다.”라고 번역자는 말했지만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번역자 또한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과는 다른 사회구조와 성별분업, 권력관계가 몸에 새겨져있는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고 두루 둘러보면서도 저자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런 비참한 하층세계의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도 무자비한 자본주의와 함께 배후에서 이런 비참함을 빚어내는 결정적 모순이 식민지 지배라는 것을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거꾸로 이런 생각도 해야 할 것 같다. 저자처럼 자극과 선정적인 방식은 아닐지라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의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꾸준히 지켜보고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걸 알려주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노력이 있기나 한 것일까? 혹은 그런 노력에 우리들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런 여러 물음 또한 떠올려지게 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련한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생각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나 또한 무언가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조류독감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6610&cid=51007&categoryId=51007

스페인 독감 : https://ko.wikipedia.org/wiki/%EC%8A%A4%ED%8E%98%EC%9D%B8_%EB%8F%85%EA%B0%90

스페인 독감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35661&cid=40942&categoryId=32799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통해서 국내에 많이 알려졌는데, 그는 우리들에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혹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있었던) 주제와 문제의식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것이 얼마나 시급하고 위급한 사안인지를,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하고 안이하게 받아들였는지를 강조하며 그게 어떤 식으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를 경고하려고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마이크 데이비스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 괜한 혼란과 위기의식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불안을 조장하고 부풀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거나 부분적으로나 제한적으로 접해왔던 주제를 전반적-전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좀 더 심도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그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닌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규모의 심각한 수준의 사안이며 지금 시대의 사회구조-체제가 어떤 식으로 문제를 더 커져버리게 만들었으며 좀 더 폭발성을 만들었는지를,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은폐시키거나 축소시키려고 함으로써 해결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그 주제를 단순하게 분석하는 것이 아닌 폭넓은 방식으로 논의들을 가져오고 있고 구체적이면서 구조적인 접근과 분석을 통해서 일시적이고 단순한 골칫덩이가 아닌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함께 진지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국제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하는 종합적인 접근과 분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게 읽게 만들고 있고 누구나 설득할 수 있는 문제점과 제안을 내놓고 있다.

 

제목처럼 저자는 최근 들어 빈발하고 있는 조류독감과 관련된 문제를 파고들어 우리들이 얼마나 일상적인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흔히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진) 1918년을 휩쓸고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독감 이후 한동안 두려움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재앙이나 전염병으로 생각되지 않던 독감이 어떤 식으로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대재앙을 예감하는 근거가 되어버렸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지구화라고 손쉽게 말하는 과거와는 정말로 달라진 근본적인 시대적 전환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

도시화와 밀집화의 가속화와 빈곤지역(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지역)의 확대

그에 따른 전염성의 발생할 가능성의 확대와 급격한 전염 가능성의 확대

여러 조건들이 겹쳐지면서 근본적 위기와 대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의 확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던 혹은 중요시하지 않던 질병이 어떤 식으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과 결합해서 확대되고 ()생산되는지를 인상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조류독감은 저자의 다른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특정한 원인이 문제가 아닌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생각처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경제와 환경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재편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들의 진화와 종간 전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도시화와 세계 경제, 그리고 자연 환경이 맺고 있는 광대한 상호 연계망을 개념화속에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관료적 태만과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있을 뿐이며, 국가들의 이기주의 및 기타 여러 문제들로 인해서 해결의 가능성 보다는 침울한 지적으로 결론짓게 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최선을 다해서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과 다양한 학문-논의들을 받아들이고 있고 좀 더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저자의 접근과 시각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재앙을 막기 위한 노력을 섣부른 위기의식으로만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좀 더 귀를 기울이고 함께 고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