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문화와 문자문화 - 출간 30주년 기념판
월터 J. 옹 지음, 임명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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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해서는 어떤 식으로도 소개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억은 항상 틀리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책을 구경하다 눈에 들어왔고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었지만 어쩐지 내용이 어려울 것 같아 미루다가 이제야 읽게 됐다. 항상 그렇듯 뒤늦게 읽어 후회하면서.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서 이제야 알게 된 것에 아쉬울 정도였다. 더 일찍 읽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제목부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바로 그런 걸 다루고 있는 구술... 문자...’는 가볍게 넘길 수 있고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있을까? 라는 의문도 할 수 있는 언어를 목소리로 구술하는 것(orality)과 문자로 쓰거나 인쇄하는 것(literacy)이 인간의 의식 및 사고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서 무척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음성언어에 바탕을 둔 구술문화와 쓰기 및 인쇄에 토대를 둔 문자문화가 인류의 표현양식과 매체의 변천과 더불어 어떻게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명징한 논리와 풍부한 예증을 통해 검증해내고 있는 이 책은 특정 학문 영역을 넘어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고 이 빼어난 책이 비교적 덜 알려진 것에 안타까움도 느끼게 된다. 아니, 이런 게 있었는지도 몰랐던 내 무지에 한탄하게 된다.

 

그저 말하기와 쓰기의 차이만이 아닌 우리들 생각이 그리고 인식구조가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있으며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반박도 있다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이 워낙 인상적이라 다툼의 여지는 있어도 어떤 식으로든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고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생소한 분야에 대한 이해가 어렵지 않게 해주고 있고 저자의 시각이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아 말하기와 쓰기로 다양한 분야를 그리고 방대하게 확장시켜 생각해보도록 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을 나눌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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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기억 - 개정판 한길그레이트북스 119
페르낭 브로델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길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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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페르낭 브로델의 저작을 하나도 읽은 적 없다는 생각에 (그나마)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펼쳐낸 지중해의 기억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무척 읽기 힘들었다. 내용이 지루해서 그런 건 아니고 너무 과거에서부터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어 그런 것이고 역사에 관심만 있지 정작 제대로 알고 있는 것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다.

 

프랑스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역사가인 브로델의 유고작이다. 그의 전공분야인 16,17세기 역사를 넘어 선사시대부터 로마의 정복까지 지중해의 질곡진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으며 단순히 지중해를 중심으로 시간 순으로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국가들의 흥망성쇠 식의 내용이 아닌 지중해를 중심으로 고대사의 질곡을 그려내고 있어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지중해의 역사를 풀어내고 있다.

 

워낙 아는 것 많은 분이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바라보는 경우 많아 읽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라는 놀라움을 느끼게 되고 아는 게 별로 없었던 지중해를 그리고 그 주변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고 있어 여러 가지로 흥미로웠다.

 

지중해 문명에 대해서나 여러 국가들이 어떻게 등장했고 몰락했는지를 다루는 게 아닌 기후나 지역적 특성, 이런 저런 가정들과 서서히 등장한 문명의 기초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지중해에 대한 연구로 생각되기 보다는 지중해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로서 이해된다. 아마 저자도 그렇게 읽혀지길 원했을 것 같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까지 살펴보고 있어 흥미롭지만 읽어내기 어려웠고, 이집트 문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만 가득해 한숨만 나오게 만든다. 그래도 1/3 정도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내용이 있어 그 부분은 그럭저럭 속도를 내서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식의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인지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게 읽어낸 것 같다. 브로델의 다른 저작도 읽고는 싶지만 과연 읽어낼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선다.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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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왕가위.존 파워스 지음, 성문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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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의 영화를 유달리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이 출판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굳이 구입할 필요까지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그렇게 충성스러운 팬은 아닌 것 같다. 책을 고르던 중 어쩌다 눈에 들어왔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긴 했지만 읽고 싶다는 생각 들지 않아 책장에 모셔두고만 있었다.

 

읽을 책을 고르던 중 유난히 계속 눈에 들어와 결국에는 읽게 된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은 왕가위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고 (왕가위에 대한 평가가 애매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왕가위에 대한 평가도 조금 바뀔지도 모른다.

 

적당한 내용의 설명과 인터뷰 그리고 미공개 사진들로 꾸며진 그렇고 그런 화보집 정도로 생각해 구입을 그리고 읽기를 망설였지만 생각 이상으로 잘 정리된 내용으로 누구나 읽는다면 훌륭하다 말하리라 생각한다. 비싼 돈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다.

 

저자는 왕가위의 영화 세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고 비판하는 이들의 입장과 거기에 대한 반박(과 옹호)을 하며 왕가위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어떤 것들을 담아내려 했는지 상세히 설명해준 다음 왕가위가 발표한 영화를 주제에 따라 묶고 하나씩 직접 물어가며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간간히 왕가위와 함께 작업한 주변 사람들(크리스토퍼 도일과 미술감독 장숙평 등)의 생각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 이 왕가위 종합 안내서는 왕가위 개인에 대해 그리고 그의 영화에 대해서 생각 이상으로 세세히 그리고 성실하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게 읽게 만든다.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말할 것 같았던 왕가위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솔직하고 자세히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영화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고 모르고 있던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들이 많아 무척 재미난 내용들이었다.

 

단지 소장용으로만 하기는 아깝다고 말할 정도로 충실한 왕가위 종합 안내서였다. “왕가위의 30년 영화 인생을 집약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은 전혀 헛말이 아니었다.

 

 

참고 : 조금만 더 작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너무 크고 무거워서 들고 다니며 읽기는 무척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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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헬 시공그래픽노블
앨런 무어.에디 캄벨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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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s://namu.wiki/w/%ED%94%84%EB%A1%AC%20%ED%97%AC

 

 

 

 

 

이걸 걸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괴작이라고 해야 할까?

 

앨런 무어의 열렬한 팬들은 당연히 걸작이라고 말할 것이고 괴작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진 않겠지만 빅토리아 시대를 19세기 말 런던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샅샅이 들쑤시는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망설여질 뿐이다.

 

산업혁명, 자본주의 태동기, 극심한 빈부격차 등 그 당시 영국과 런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프롬 헬을 읽게 되니 얄팍한 이해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 당시로 밀어 넣고 있는 (광기를 들춰주는) 이 책의 빼어남을 알면서도 미쳐 날뛰고 있는 광기에 겁을 먹게 되기도 하고 당황하게 되기도 한다. 마치 미친 윌리엄 위시 걸 옆에서 끌려 다니는 마부 존 네틀리처럼. 과연 제대로 알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미치광이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근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앨런 무어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미친 사람의 내면을 본 적 없어서 단정은 못하겠지만.

 

살인마 잭 더 리퍼에 대해서 그리고 19세기 런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적어 두터운 분량의 런던 (연쇄 살인) 견학기인 이 책이 버겁기만 했고 너무 꼼꼼해서 도무지 읽혀지지 않는 부록 1 각 챕터에 대한 주석은 건성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처럼 런던에 대해 그리고 잭 더 리퍼에 대해 많은 지식이 적다면 부록 2 기러기잡이들의 춤을 먼저 읽고 시작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잭 더 리퍼

 

그의 악명을 모르고 있진 않았다. 다만 그 이름은 전설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은 식상한 이름이기도 했다. 다행히 앨런 무어는 흔한 방식의 수사물로 만들려하지 않고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런던을 그리고 살인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하나의 드라마를 런던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버렸다.

 

앨런 무어

 

그가 야심을 갖고 이 책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잭 더 리퍼에 관한 온갖 자료 그리고 그 자신의 상상력과 추측을 덧붙여 엄청난 규모의 이야기로 부풀리고 항상 다루는 부분들(변태적 섹스, 잔혹한 살인, 장광설로 가득한 독백과 중얼거림 등) 또한 여전하거나 유독 더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에디 캄벨

 

이걸 잘 그렸다 해야 할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 에디 캄벨의 그림은 그것 보다는 내면의 광기와 질식할 것 같은 런던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고 말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익숙해지지 않는 그림체지만 이런 식이 좀 더 19세기 말 런던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울함으로 가득하고 어떤 웃음기도 없는 창백함과 피범벅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쁜 기분만 가득해지고 같이 미쳐가는 기분이 들어 딱히 추천하진 못하겠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가 점점 광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이 책이 어쩐지 꽤 길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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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킬링 조크 - 디럭스 에디션 시공그래픽노블
앨런 무어 지음, 브라이언 볼랜드 그림,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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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s://namu.wiki/w/%ED%82%AC%EB%A7%81%20%EC%A1%B0%ED%81%AC

 

 

 

 

지금 그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아내 보려고 하고 있는 중이야

물론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난 사실 그놈을 전혀 몰라

그 숱한 세월 동안 난 도무지 알 수 없었지

그놈 역시 내가 누군지 모르기는 마찬가지겠지

두 사람이 서로를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토록 싫어할 수 있는 걸까?

 

 

 

 

광기의 장광설 그리고 자기정당화

 

조커의 기원을 다루고 있고 내면의 광기를 살펴보고 있는 킬링 조크는 수많은 배트맨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작품 중 하나고 조커가 다른 악역들에 비해 좀 더 주목되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앨런 무어의 여러 대표작 중 하나지만 그림을 그린 브라이언 볼랜드에 따르면 앨런 무어는 큰 의미부여 없이 참여한 듯 하고 몇몇 내용의 경우 브라이언 볼랜드가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는 것 같아 둘의 작업이 실제로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그 과정이야 어쨌든 킬링 조크는 짧은 내용 속에서 어째서 조커가 그리 되었는지를 그리고 광기를 어떻게 분출시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반대지만 거울을 보듯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는 배트맨과 조커가 어떤 식으로 다르고 닮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운수 나쁜 하루를 보낸 혹은 불행이 겹친 극단적 상황으로 인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어떤 식으로 미쳐버리게 되는지를 알려줌과 그런 경우가 당신에게 생긴다면? 이라는 질문을 해주고 있는 킬링 조크는 단편이기 때문에 더 강렬함을 안겨준다. 조커의 수다스러운 장광설은 진짜 미치광이가 떠드는 것처럼 느껴지고 반박하기 보다는 동감하는 구석을 찾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범죄들 때문에 그를 동정할 수 없게 하고 일종의 정당화하는 것 같기도 해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그 경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이 순식간에 미쳐버릴 수 있다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모든 사람이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에 더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불운을 겪지 않길 바라게 된다. 누구도 그런 일이 없길 바라고 그런 일을 의도하는 경우도 없었으면 한다. 세상은 이 생각이 틀렸다고 대답하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한다.

 

광기가 스며들 때 거기에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 묻고 있다. 그저 크게 웃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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