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의 주체 - 언어와 향유 사이에서
브루스 핑크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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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주체’는 브루스 핑크가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영어권 라캉 연구자들 중 가장 탁월한 시각을 가진 라캉 연구자로서의 자리를 잡게 되는 계기가 된 책이며, 그의 저서 대부분이 라캉-정신분석 및 임상과 관련된 내용들인데 그런 임상과 관련되지 않은 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몇 안 되는 저서로도 많이 알려졌다.

 

출판이 된지가 좀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영어권에서 출판된 라캉과 관련된 연구서들 중 가장 의미 있는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번역되기를 꽤 기다렸고 번역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구입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어렵게 읽게 될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번역자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브루스 핑크의 저작들 중 가장 난해하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이런 난해함 또는 산만함은 어쩔 수 없게 느껴지게 되는 느낌일 것 같기도 한데, 그 이유는 브루스 핑크 본인이 언급했듯이 하나의 책으로 출판할 생각으로 집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식을 통해서 발표한 글들을 라캉의 논의-이론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주체라는 주제에 맞춰서 내용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캉의 주체’는 제목 그대로 라캉의 정신분석 논의를 통해서 주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바라보고 있는데, ‘주체’라는 한정된 주제를 놓고서도 라캉의 논의는 매우 복잡하고 자신의 생각을 일관성 있게 이끌기 보다는 산발적으로 혹은 다각도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브루스 핑크는 최대한 간략-요약을 해서 내용을 정리하고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라캉이 생각하는 주체는 ‘분열된 주체’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정의일 것이고, 브루스 핑크 또한 분열된 주체로서 주체를 이해하고 있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라캉이 다양한 방식(에크리 및 수많은 세미나)으로 논의했던 주체에 대한 논의를 최대한 정리가 가능한 방식으로 논의들을 정리해내고 있다.

 

정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라캉의 논의가 갖고 있는 이해불가능(다양함과 난해함 그리고 복잡함) 덕분에 라캉의 논의를 통해서 바라보는 주체에 대한 이해 또한 쉽게 정리가 가능하지 않기도 한 것 같다. 우선 라캉 본인부터 일관된 접근을 하고 있지 않고 있고, 브루스 핑크의 정리 또한 체계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고 여러 방식으로 발표한 글들을 정리하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읽다보면 무슨 논의를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느껴지기가 쉬울 것 같다.

 

브루스 핑크는 우선 라캉의 논의에서 갖고 있는 그리고 주체에게 있어서 ‘언어’가 갖고 있는 중요성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고, 그 무의식에서의 ‘언어’의 특징과 어떠한 방식으로 구조화에 되는지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라캉의 논의들을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하게 느껴지는 욕망, 무의식, 언어, 상상계, 상징계, 실재, 타자, 대상 a 등으로 인해서 주체는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구성되어 있으며, 아버지-어머니-나라는 관계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무의식은 구성 및 구조화 되고 '나‘라는 존재가 존재하게 되(어가)는지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렇게 주체에 대한 논의와 함께 주체를 논의하게 되면 당연히 따라오게 되는 타자에 대해서도 그리고 담화-말하기-대화와 욕망에 대해서도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마지막에서는 정신분석 자체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브루스 핑크는 라캉을 접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라캉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라캉을 어떻게 하면 보다 이해가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있고, 그 고민에 대한 결과물처럼 라캉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접근이 가능하도록 애쓰고 있다. 정작 라캉 본인은 자신의 논의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벽을 쌓고만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논의에 충실하려고 하면서 좀 더 많은 이들이 라캉을 접할 수 있도록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브루스 핑크의 모습이 딱하게 보일 정도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캉의 논의의 대부분이 이해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그의 노력에 비해서는 여전히 아쉽게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나마 그라도 없었으면 라캉은 더욱 이해가 불가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라캉의 ‘주체는 분열된 주체다’라는 기본 입장을 중심으로 어떻게 주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접근이 가능한지에 대한 브루스 핑크 본인의 이해에 따른 결론과 정의들을 토대로 라캉이 생각했다고 생각되는 주체에 대한 정의를 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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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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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는 제목은 자주 들어보았지만 딱히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마도 그저 무관심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함께 감옥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어떠한 깨달음을 얻은 글들 중 가장 탁월한 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야생초 편지’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는 전혀 다른 내용과 분위기-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감옥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기억을 더듬고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감옥에서 야생초를 키워가게 되면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기는 동일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서 키워지기 보다는 스스로 자라나는 야생초들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는 또다른 깨달음과 감동을 얻게 될 것 같다.

 

동생에게 쓴 편지들을 모은 내용이기 때문에 살갑게 읽혀지기도 하고, 어쩐지 누군가에게 쓰인 편지를 엿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게 되는데, 담겨진 내용에서는 개인적인 관심을 편하게-장난스럽게 얘기해주고 있으면서도 그 개인적인 관심이 단순한 개인적인 관심으로만 다뤄지기에는 무척이나 의미 깊은 생각들이기 때문에 쉽게 읽어가면서 그동안 갖고 있었던 오해나 필요 없는 욕심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편지들의 내용은 감옥에서의 생활과 야생초에 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간간히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와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내용들도 담겨져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혀지다가도 잠시 빠르게 읽혀지는 속도가 멈춰지고 저자가 말하는 삶에 대한 태도와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공경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만들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 감옥에서 출소한 후 유럽에서의 유학을 통해서 얻게 된 자신의 생태-자연주의 입장에 대한 강연 내용을 수록하여, 감옥 생활-야생초 재배를 통해서 갖게 된 자신의 입장을 어떻게 좀 더 이론적 / 실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어서 단순히 감옥에서의 생활을 달래주기 위한 야생초 재배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어떻게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이고,

어떤 삶의 태도를 갖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담겨져 있는 내용이었다.

무척이나 의미 있는 내용들이면서도 편안하게 그런 생각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접하게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진지하게 무언가를 말하기 보다는 옆에서 웃음을 던지며 깨달음을 안겨주고 있다.

쉽게 보이지만 무척이나 어려운 능력이다.

 

 

 

 

 

참고 : 야생초 편지 덕분인지 그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쳤던 풀들과 꽃들을 조금은 달리 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키우거나 어쩌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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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 정신분석 테크닉
브루스 핑크 지음, 김종주 옮김 / 하나의학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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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라깡 연구자들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연구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브루스 핑크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난해하게만 느껴지는(그냥 난해한) 라깡을 최대한 이해가 가능하도록(이해한 것처럼 느껴지도록) 상세하고 성실하게 라깡의 논의들을 전달하고 있고, 이론적으로만 느껴지게 되는 라깡의 논의가 갖고 있는 임상적 측면에 집중을 하며 라깡을 알리고 있는 연구자다.

 

다른 대부분의 라깡과 관련된 연구자들이 이론적인 측면에 몰두하거나 라깡의 정신분석에 관한 논의를 정신분석 이외의 영역에 적용하려고 하는 것에 열심인 것과는 달리 실제 임상 사례와 치료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 / 임상적으로 자신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탁월한 저작을 남긴 프로이트에 비해서 수수께끼처럼 다뤄지기만 하는(물론, 그렇게 다뤄지게 만드는 것에는 라깡 자신도 잘못이 있다) 라깡의 논의가 갖고 있는 이론적 / 임상적 측면 중 임상적인 면에 많은 집중을 보이며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오해를 조금은 줄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최근 ‘에크리’를 영어로 번역하는 등 영어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라깡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동을 보이고 있는 브루스 핑크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도 꽤 높아진 것 같은데, 기존에 출판되었던 ‘라캉과 정신의학’과 함께 그의 주요 저서들인 ‘라캉의 주체’와 ‘에크리 읽기’가 최근 번역되었고, 그의 저서들 중 다른 저서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도 번역이 되어 그동안 접근하기 어렵기만 했던 라깡에 대해서 그리고 더불어 브루스 핑크에 대해서도 (보다) 접근이 가능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복잡하고 다양-애매한 라깡의 논의와 그의 정신분석에 관한 입장에 충실하며 실제 환자들을 접하게 되면서 겪은 / 얻은 경험을 토대로 내용을 채우고 있는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은 다른 라깡과 관련된 저작에 비해서 실제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피분석자들과의 분석 과정의 경험을 통한 말 그대로 정신분석 과정에서의 경험에 근거한 정신분석 ‘테크닉’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깡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관심에 따라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되기도, 불만을 갖게 되기도 할 것 같은데, 실제 임상 사례들과 정신분석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이론적인 측면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라면 실제 피분석자들과의 면담 및 정신분석 과정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진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에 대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불만을 갖게 되기도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신분석의 논의를 통해서 다양한 영역에 적용해 보는 것도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신적 / 신체적 어려움을 치료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는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이 보다 크기 때문에 생각처럼 읽어내기 까다로운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이 어렵기도 했지만 만족스럽기도 했다.

 

물론,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브루스 핑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분석자를 경험하면서 분석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그들의 발언들에 대해서 예민함을 갖아야 할 것이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고, 피분석자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고 대화 속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찾아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질문들과 대화 과정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감춰지고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드러나게 되는 순간들이 어떤 것-무엇인지를 최선을 다해서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라깡이 주장하는 정신분석의 방법론적 특성 중 하나인 ‘구두점 찍기’와 ‘운에 맞춰 끝내기’에 대한 수많은 오해들을 해명하고, 실제 라깡이 그리고 라깡주의자인 브루스 핑크 자신이 어떻게 피분삭자들과 면담을 하며 구두점을 찍고 운에 맞춰 끝내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언급하며 설득력 있게 설명을 하고 있다.

 

피분석자와의 대화 내용을 토대로 어떻게 나눴던-발언한 대화-발언을 해석해야 하고, 분석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피분석자들이 꿈과 백일몽 그리고 환상을 통해 그들이 겪는 고통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지를 논의하며 브루스 핑크 자신의-라깡의 정신분석 방법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그가 이번 저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전이’와 ‘역전이’를 통해서 피분석자와 분석을 하게 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운 과정-순간이라 할 수 있는 전이와 역전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를 통해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는 정신적 / 신체적 갈등-고통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정신분석의 다른 논의들 보다 비교적 많이 알려진 전이 / 역전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해서 읽다보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브루스 핑크는 피분석자와의 분석 과정 중에서 분석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전이 / 역전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최대한 정교하게 라깡의 논의를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후 최근 들어 많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논쟁적인 ‘전화분석’에 대한 브루스 핑크의 입장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고, 정신병의 치료까지 다루면서 피분석자에 대한 정신분석의 시작부터 끝까지 라깡의 입장을 중심으로 그 진행-종결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브루스 핑크의 저작을 읽어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는 꽤 신중하게 / 진지하게 라깡-정신분석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고 마치 놀이처럼 써먹혀지는 정신분석 이론적 접근과는 조금은 달리 정신분석을 다루고 있고, 접근하고 있다.

 

실제 정신적 /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라깡 이외의 입장들에 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이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고, 점점 처음과는 달리 변질되어가는 정신분석 치료에 대해서 큰 우려를 표시하며 정신분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주장하기도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론적인 측면 보다는 실제 피분석자들과의 분석 과정에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에 따라서는 읽기를 포기하게 되기도 하겠지만 정신분석의 실제 사례와 임상적인 면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읽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말하는데,

읽기는 했어도 이해는 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저자와 역자는 주장하고 있어도. 그들로서는 쉬울지는 몰라도 일반인으로서는 뭐가 쉬운지 알려달라고 되묻고 싶어질 정도였다.

 

 

 

 

참고 : 최근 출판된 책들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디자인의 표지라고 생각한다. 겉모양만 본다면 구입을 정말로 망설여지게 되는데, 제대로 번역된 책인지도 의문스러울 정도니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적당히 겉모양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혹시... 안 팔리게 하려고 작정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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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외투 - 아버지에 관한 라캉의 세가지 견해 한길컬처북스 6
필리프 쥘리앵 지음, 홍준기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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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로 인하여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는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는 짧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사회적 / 정신적으로 어떤 변화 속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석-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라캉-정신분석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정신분석에 의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대-역사적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아버지-부권이 변화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아버지’라는 존재와 권위-몰락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대표되는 정신분석의 입장에서만 머물며 반복하듯이 논의되는 방식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기 때문에 가족에서의 그리고 사회적인 아버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면 가볍게 읽어보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분량이 짧기 때문에(130페이지) 상세하거나 다양한 논의를 진행시키기 보다는 간략하게 여러 관점들을 이동하고 있을 뿐이라 보다 정교하게 논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나치게 표면적으로만 다루는 것 같다는 불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가족 내에서의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정신분석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이고, 어떻게 그 존재가 변화되었으며 그 변화들로 인해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짧으면서도 여러 생각들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 할지에 대해서 기초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짧은 분량으로 충분히 제몫을 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아버지’라는 존재 / 이름-글자에 대한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것은 다루고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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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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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예민하고,

지나치게 고독한 사람에 관한 우화이자 블랙 코미디인 ‘그로칼랭’은 무표정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으로 암울하고 서글프게 살아가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슬픈 이야기이다.

 

아마도 슬픈 이야기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고독함 속에 머물고 있는지, 누군가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뒤섞이지 못하고 홀로 지낸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딱함일 것 같다.

 

저자인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알지 못하고 그의 혹은 그들의 다른 유명 작품들에 대해서도 아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알 생각도 별로 없기 때문에) 그(들)의 소설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는 나중에야 밝혀진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팬이나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는 당혹스럽거나 충격적인 사실일지는 몰라도 나와 같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독자로서는 그저 흥미로운 여담에 불과한 것 같다.

 

우연히 소개를 받아(아마도 소개해 준 사람은 기억조차 나지 않겠지만) 읽게 된 ‘그로칼랭’은 프랑스 파리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 쿠쟁이 키우는 비단뱀의 이름이고, 비단뱀을 키우며 홀로 살아가는 쿠쟁은 도시인의 자화상이면서 예민함으로 똘똘 뭉쳐진 고독한 사람이다.

 

항상 불안감에 빠져 있고, 과대망상과 신경쇠약의 사이에서 머물러 있는 쿠쟁은 단지 예민하고 조금은 확대해석하는 성향의 인물일지는 몰라도(그리고 도통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엉망인 일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가 떠올리는 온갖 생각들은 그 당시의 도시인들이 갖고 있는 머리 속 생각들에 대한 하나의 단면일 것이고, 지금은 쿠쟁이 떠올리게 되는 생각과는 조금은 다른 것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겠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조금은 다른) 생각들을 해가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쿠쟁은 하나의 인물임과 동시에 근대 사회-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쿠쟁은 지속적으로 낙태에 대해서 생각하고, 흑인 여성인 드레퓌스를 자신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나치-히틀러와 냉전, 정치-사회적인 문제들과 복지사회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며 이 작품이 하나의 우화처럼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현실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는 의도적이지 않는 듯 하면서도 의도적이라는 것을 숨기려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살아가는 쿠쟁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생각들 하나 하나가 웃게 만들기 보다는 씁쓸함을 그리고 비슷한 생각-감정을 가져보았다는 공감을 만들어낸다.

 

아무도 그의 곁에 없다는 것을 그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고,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열광하거나 몰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되어버린 근대 사회-도시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것도 뚜렷하게 만들기 보다는 모호하게 혹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어지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도록 한다.

 

부정적이지 긍정적인지 판단이 모호한 결론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뒤틀린 ‘생태학적’ 결말보다 만족스러운 기분은 들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 다른 판단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아마도 좀 더 작품으로서의 읽는 이로서의 결말과 작가가 의도하는 쓰는 자로서의 결말과의 차이일 것 같다.

 

‘그로칼랭’을 읽은 다음의 기분은 아마도 주인공 쿠쟁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아니면 지나칠 정도로 이해되고 공감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처럼 홀로 지낸다는 것을 경험해 보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전혀 경험-감정적으로도 동조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참고 : 주인공 쿠쟁에 대해서는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안정된 직장에서 통계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인종에 대해서 어딘지 모르게 의심스러운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1968년 혁명에 대해서 무척 곤란해 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에 대한 병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근대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중간계급-보수적 성향을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분명,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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