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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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라고 불리는 하라 료의 소설()이 무척 마음에 들어 첫 번째 이야기를 읽자마자 서둘러 두 번째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흥미진진한 진행은 여전하다.

 

“10여 년의 세월을 반영해 현재의 감각으로 전문을 섬세하게 가다듬은 것은 물론, 전작과 일체감을 높이는 표지 디자인을 완성해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도 제고했다. 무엇보다 특전으로 특별 수록된 국내 미공개 단편 <감시당하는 여인>은 이번 개정판의 백미라 할만하다.”

 

유괴 사건에 관한 이야기고, 처참한 결말을 맞이한 다음 어떤 식으로 그걸 받아들이고 풀어내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이미 패배와 좌절을 겪은 다음에 그 쓰디씀을 곱씹듯 사건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족 실종 문제로 상담하고 싶다며 탐정의 방문을 요청하는 한 통의 전화. 하지만 자택을 찾아간 사와자키는 사건을 의뢰받기는커녕 유괴사건의 한복판으로 휘말려들고 만다. 얼결에 몸값 전달책 신세가 되지만, 도리어 접선 장소에서 습격을 받아 돈가방을 도난당하고 만다. 돌연 협상을 중단한 채 잠적해버린 유괴범, 아무도 신뢰하지 못하는 피해자 가족,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경찰, 어쩐지 묘한 부탁을 해오는 야쿠자사와자키를 기다리는 것은 끔찍한 덫일까, 작은 행운일까.”

 

건조함은 여전하고, 주인공 사와자키의 차분하고 냉소적인 말투도 달라지지 않았다. 멋진 작가라 할 수 있겠다. 범죄 소설에 관해서는 그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함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지만 거기에 충격을 받기 보다는 과연 끝은 어떨까? 를 계속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다만, 결말의 놀라움 보다는 과정의 짜임새와 촘촘함이 더 인상적이라 할 수 있겠고. 재미나게 읽었다. 당연히 세 번째 이야기로 당장 손이 가게 되고.

 

범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라 료를 아직 못 읽었다면 꽤 애석할 것 같다.

 

 

#내가죽인소녀 #하라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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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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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 시리즈(통상 사와자키 시리즈라 불리는) 마지막 이야기 지금부터의 내일이 무척 마음에 들어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어볼 생각으로 펼친 첫 번째 이야기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시리즈의 시작이지만 마지막과 아주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진 않고 있다. 비슷한 정서와 분위기면서 이야기는 좀 더 박진감을 만들고 있다. 다만, 그 박진감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의미일 뿐이라는 말을 더해야겠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시시하고 심심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오른손을 감춘 사내, 사라진 르포라이터, 도쿄 도지사 저격 사건헝클어진 사건들이 하나로 이어질 때, 차갑고 비정한 밤의 도시는 긴 어둠에서 깨어난다!”

 

첫 이야기 또한 무덤덤한 시작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가 찾아오고, 오해와 엇갈림이 점점 사건으로 향하게 만든다. 만나는 사람들은 웃음기 없는 사람들이며, 주인공 사와자키가 내뱉는 냉담함 가득한 말들은 읽는 맛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저것 감추고 있던 것들이 꺼내지고 점점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도쿄 도심, 화려한 고층빌딩숲 외곽의 허름한 사무소.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가 홀로 의뢰인을 맞는다. 처음에는 두 명이서 시작한 사무소였지만, 전직 경찰이자 동업자인 와타나베는 대량의 마약을 폭력단으로부터 빼돌리고 현재는 도피중이다. 간간히 종이비행기로 접은 전단지에 몇 줄의 메모로 근황을 전해올 뿐. 오른손을 주머니에 감춘 낯선 사내는 어떤 르포라이터가 이 사무소를 찾은 적이 있냐고 물은 뒤 20만 엔의 현금을 남긴 채 사무소를 뒤로한다. 알 수 없는 의뢰인과 영문 모를 의뢰 내용에 당황하는 사와자키. 그런데 이내 유력 미술평론가의 변호사가 그 르포라이터의 행방을 알기 위해 역시 그를 찾아오고, 르포라이터의 실종은 당시 세상을 발칵 뒤엎어놓은 도쿄 도지사 저격사건과 맞닿아 있음이 밝혀지는데……. 얽히고설킨 복잡한 플롯, 수수께끼를 안은 매력적인 등장인물, 철저하게 계산된 대사, 현실감 있는 전개가 어우러진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고품격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레이먼드 챈들러 / 필립 말로 풍의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더할 것 없이 만족스러워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걸 왜 읽느냐고 말할 것 같다. 무척 재미나게 읽었고 두 번째 이야기를 당장 찾게 된다.

 

 

#그리고밤은되살아난다 #하라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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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저자, 황국영 역자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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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이름 정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영화 관련이라는 한정된 영역에 불과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지나치는 이름에 불과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음악이라 당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악으로만 기억할 뿐이고 그래서인지 그렇게까지 마음을 사로잡진 않았다.

 

세월이 좀 더 흐른 다음 그가 단순히 영화음악가가 아닌 전방위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어쩌다보니 전위음악이나 실험음악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어가면서 그를 지나칠 순 없게 되었다. 무슨 말인지 그의 방대한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할 것이다.

 

단순히 서정적이고 내면을 파고드는 음악이 아닌 전위적인 음악도 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채워가던 그에게 조금은 흠모하는 기분이 들게 되었고, 그의 음악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되었다. 때맞춰서 그와 관련된 여러 다큐멘터리나 관련 자료들을 접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점점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좀 더 그를 알았으면 싶었다. 아직 발표한 음악들도 제대로 듣지도 못했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수도 있지만 부음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었다.

 

책방에서 책들을 둘러보던 중 그의 이름이 박혀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부터 인상적이고 죽음의 예감으로 가득해서 어쩐지 지나칠 수 없었다. 역시나 말년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추억과 항암치료와 음악에 대한 여러 생각들 등 음악가인지 철학가인지 혹은 운동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사유의 조각들을 꺼내놓고 있다.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당장 찾아서 읽어보고 싶긴 하지만 조금은 천천히 찾고 싶기도 하다. 약간은 미루고 싶다.

 

스스로도 열심히는 살았지만 제대로 살았는지를 자신 있게 말하고 있진 않다. 몇몇 괴팍한 부분들과 논란거리들이 있어 그 생각이 틀렸음을 말하기는 머뭇거리게 될 것 같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흥미로운 모습들이, 그의 생각에 동의할 때도 있고 조금은 대들고 싶을 때가 있게 된다. 꽤 좋은 사람이었을 것 같지만, 젊을 때는 반대로 보통은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음악을 최근 더 많이 찾기도 하고, 여러 플레이리스트나 관련 음악들을 꾸준하게 듣고 있기 때문에 방대한 그의 작업들을 몰아서 찾기 보다는 하나씩 천천히 알아가며 음악으로든 책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조금 더 길게 자주 혹은 간간히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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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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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그만의 개성과 독자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나, 어떤 식으로든 레이먼드 챈들러를 언급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본인도 그걸 부정할 생각도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즐길지도?

 

범죄소설 애호가들에게 있어서는 하라 료는 어떤 사람일까? 챈들러의 아류라고 생각하고 무시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가볍게 뭉개고 넘어가고 싶진 않다. 그만의 특징들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물론, 챈들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긴 하지만. 중년의 필립 말로랄까? 그게 아니면 일본이라는 풍경과 환경 속에서의 필립 말로랄까? 필립 말로가 일본인이라면? 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해서 어떤 사건들을 접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작가 스스로의 성격과 성향을 잔뜩 버무렸다고 할 수 있겠고.

 

예측불허의 정교한 플롯, 불필요한 수사는 철저히 배제된 정통 하드보일드 스타일, 쓸쓸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정경 등 시리즈 특유의 강점은 그동안 응축된 세월을 증명하듯 더욱 단단해지고 농밀해졌다. 여기에 오십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고고한 사와자키의 시크한 매력은 보너스.”

 

시답잖은 사건 의뢰를 받고 묵묵히 조사를 하다가 뜻하지 않은 사건들에 연이어 빠져들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들로 가득하다. 이런 게 싫은 사람이라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밋밋한 진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챈들러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것도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당장 들게 될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확실하게 좋고 싫음이 나눠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다른 이야기도 읽어봐야겠다.

 

세월과 함께 쇠락해가는 신주쿠 뒷골목의 와타나베 탐정사무소’. 어느새 오십대에 접어든 탐정 사와자키는 사무실 문을 노크할 의뢰인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느 날 중년의 은행 지점장이 탐정사무소를 찾아와 한 여자의 뒷조사를 의뢰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뢰받은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여자가 이미 사망했음을 알게 되지만, 의뢰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사와자키는 의뢰인이 근무하는 은행을 찾아갔다가 갑작스럽게 복면강도와 마주치는데…….”

 

짙은 냉소와 자욱한 체념 혹은 푸념으로 가득한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진 못하겠지만 이거 꽤 물건이라는 말을 해보고 싶다.

 

 

 

참고 : 저자의 사망으로 인해서 이게 유작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마지막 소설을 가장 먼저 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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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 개정판 나남신서 900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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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시 읽게 되니 괜히 그런 마음을 먹었다는 기분만 가득했지만.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읽을 때도, 읽고 난 다음에도 그런 마음이 컸다. 다시 읽어봐도 뭔 내용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8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이고 워낙 유명하니 별다른 설명을 더할 건 없을 것 같다. 읽었어도 무슨 소리인지 아리송하기만 해서 무슨 말도 호기 있게 하진 못할 것 같다. 미셸 푸코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책에 손이 갈 수밖에 없겠지만, 펼쳐보길 권하게 되진 않는다. 긴 시간을 헤맬 것이니.

 

이성 혹은 근대성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형성된 것인지, 고전주의 시대에서 근대로 향하며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추적하고 되짚고 있다는 정도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난해함이 있어 읽다보면 어떤 논의를 하고 있었는지 수시로 흐름을 잃게 되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고 책인지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머뭇거리기만 할 것 같다.

 

다시 읽어보고 싶냐면... 그래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긴 하다. 그래도 뭔 말인지 잘 모른다는 소리나 할 것 같지만.

 

이런 책을 술술 읽어내고 쉽사리 말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이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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