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한 잔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기 보다는 최근작들을 접하기만 했을 뿐이었는데(살인자들의 섬, 운명의 날), 어쩐지 명성에 비해서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작품들이라 왜 그런 명성을 얻었는지 의문되었고 그 섣부른 의심 속에서도 아마도 그의 진정한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를 접해야만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에 대한 평가를 되도록 미루기만 했었다.

 

그리고...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전쟁 전 한잔을 접하니 그런 판단을 했던 것이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마터면 이렇게 뛰어난 작가를 오해하기만 해서 놓칠 뻔했다.

 

전쟁 전 한잔(아마도)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이 여전히 매력적인 장르이고 그 매력을 부족함 없이 담아내고 있는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그다지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척 호건의 타운을 꼭 읽어보고 싶기는 한데...) 확신을 갖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존의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이 전해줄 수 있는 멋진 매력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지금 현재의 시대 속에서 갖게 되는 여러 문제의식들을 더하며 단순히 대중소설이고 자극적인 내용의 소설이 아닌 일종의 사회소설의 영역으로까지 올라설 수 있다는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애호가가 갖고 있는 야심 / 희망을 이뤄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과거로 향하고 전통소설의 영역으로 접근하고 싶은 것 같은, 작가 개인의 야심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최근작들에 비해서 야심보다는 이야기 자체의 힘을 통해서 좀 더 묵직함을 만들어내고 있는(그래서 이런 작품들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하나의 범죄 사건을 통해서 지금 현재의 사회를 바라보고 있고, 그 바라봄 속에서 우리들의 추악함과 도덕적-내면적 갈등, 당대의 사회문제들과 가정폭력과 아버지(상징적 / 실제적)에 대한 문제의식이 뒤엉켜 있지만 그것들이 난해함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무척 재미나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켄지와 제나로라는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과 복잡하고 비비꼬이기만 한 이야기 구성이 아닌 짜임새 있고 군더더기 없는 구성과 냉소와 허무 그리고 위트로 범벅된 대사와 독백들을 통해서 전통적인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영향 아래에서 지금 시대만이 담아낼 수 있는 무엇들을 잘 담아내는 것에 성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울하고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희망을 놓치지 않는 작가-켄지 / 제나로의 시선과 함께 추악하고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더러움으로 가득한 시궁창 속에서 고개를 돌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어떻게든 바라보려고 애쓰는 그들(작가-등장인물)의 노력은 세상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좀 더 쉽게 타협하려고만 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덜 그러기를 요구하는 것 같이 느껴지게 되기도 하다.

 

또한 기존의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주인공들에 비해서는 허술함이 크고, 나약함이 느껴질 때도 있는 켄지의 모습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내용들과 그의 냉소와 허무로 가득한 독백들 그리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내지 못하고 그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까지 설득력 있는 전달을 통해서 단순한 하드보일드-범죄소설에 비해서 등장인물의 내면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삶을 살아가며 온갖 경험들을 다해본... 닳고 닳은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차갑고 차분한 하지만 때때로 분노가 치미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는데, 작가의 성장과정이 어떠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세상에 대한 작가-켄지의 시선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느껴지기만 하다.

 

항상 홀로 활동을 하던 이전의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주인공들에 비해서는 켄지가 갖고 있는 능력은 보잘 것 없고 장점도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지만 반대로 켄지의 주변에 있는 여러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좀 더 다채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째서 데니스 루헤인을 최고로 꼽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그의 최근작들 보다는 오히려 이전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를 접해야지만 좀 더 명확하게 그의 탁월함을 깨닫게 될 것 같다.

 

지독한 현실과

그 씁쓸함을 맛보여주면서도 잠시 함께 고민을 하자고 권하기도 하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미로 가득한 이야기로 채워진...

이 빼어남으로 가득한 소설을 어떤 식으로든 많은 이들이 즐겼으면 좋겠다.

 

 

 

 

 

참고 : 하지만 어쩐지 켄지 / 제나로 작품은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영역에 있으면서 만화-코믹스-그래픽 노블의 영역에 조금은 걸쳐져 있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인간적이기 보다는 특정한 성격을 좀 더 강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들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부바와 같은...,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조금은 고민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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