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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기억 ㅣ 보르헤스 전집 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평점 :
두 번을 읽는 동안 그의 전집 중 가장 무관심하게 읽은 책은 그의 글들의 다섯 번째 모음인 ‘셰익스피어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통틀어 세 번째 읽게 된 그의 전집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집을 고르라면 아마도 그의 첫 번째 작품집인 ‘불한당들의 세계사’와 더불어 이 작품집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들이었다.
어째서 그동안 아무런 관심이 들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의 글들이 갖고 있는 매력과 그가 보여주었던 통찰력들을 잘 담아내고 있고, 그의 글이 갖고 있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성향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보다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느낌이 우선 들게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글을 통해서 자신을 언급하고 등장시키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들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시간과 공간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합쳐지고 겹쳐져 있으며, 음모 속에서 아이러니를 담아놓거나 항상 그렇듯이 언어와 책들을 인용하고 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공허함을 만들어낼 때도 있고, 하나의 깨달음을 그리고 놀라운 순간을 담아내려고 하고 있다.
신화와 전설 그리고 수많은 고전들을 현재로 불러와 다시금 구성시키고 있고, 선과 악은 모호해지고 그렇게 함으로써 평범한 것은 기괴해지고 무덤덤하고 건조함 속에서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다.
어떤 장르라고 말할 수 없고, 그저 짧은 이야기로 이뤄진 수많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다양한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다.
눈이 멀어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서 더 많은 환상과 사실들 그리고 그 둘의 겹침으로 만들어내는 기묘함을 그는 우리에게 선사한다.
감탄하고 압도될 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남겨지게 된다.
그의 글은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그의 글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