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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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검색을 하던 중 이 책을 알게 됐다.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내용이 매력적이었는지 영화로 옮겨지고 있다는 소식이 더해졌고. 미스터리와 범죄 그리고 아동 유괴 등이 섞여져 있으면서 흡인력 있는 내용이라는 말에 관심이 커졌다.

 

 

“19911211일 저녁, 학원에 갔다가 귀가하던 소년 다치바나 아쓰유키가 유괴되었다. 사건 발생 지역과 인접한 경시청, 인근 현경에도 종합지휘본부를 설치하는 등 경찰력이 다치바나 아쓰유키 유괴 사건에 총력을 다하던 순간, 또 하나의 소식이 들려왔다. 1212일 오후, 건강식품회사 가이요 식품의 기지마 시게루의 손자 나이토 료가 유괴되었다는 소식. 사상 초유의 동시 유괴 사건이었다. 첫 번째 유괴로 경찰력을 집중시켜 경찰의 대응 체제가 취약해진 틈을 타 같은 현경의 담당 지역에서 두 번째 유괴를 일으켜 몸값을 받아낸다는 대담한 계획. 경찰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인질의 안전과 범인 체포를 위해 총력을 다 하지만, 몸값 전달 역할인 기지마 시게루가 경찰의 통제를 벗어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며 결국 범인 체포에 실패한다. 그리고 3년 뒤, 나이토 료는 7살이 되어 조부모의 집에 나타난다. 그간 실종 상태였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잘 교육받은 모습으로. 하지만 돌아온 소년은 지난 3년에 대해 굳게 입을 닫는다.”

 

 

초반은 무척 인상적인 진행과 엄청난 긴박감을 안겨주고 있다. 동시 유괴라는 발상에 주목하게 된다. 그 혼란으로 가득한 과정을 차분하게 설명-정리해주는 글재주가 눈부시다. 어떻게 굴러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긴장감이 두근거리게 해주고.

 

물론, 그런 식으로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끌고 가진 않는다. 어느 정도 사건이 정리된 다음 꽤 긴 세월이 지난 뒤 이야기는 묘하게 꼬여가게 된다. 혹은 그동안 적당하게 구겨져 있던 진실을 뒤쫓게 된다. 끈질기게 사건을 부여잡고 있던 관련자들이 어르신이 되고, 노인이 된 다음에도 어떤 식으로 집념을 지켜내며 사건을 조금씩 뒤쫓는지, 끊어져 있던 실마리를 어떤 식으로 이어가는지를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금씩 다뤄지는 고교생 시절에 대한 회상은 굳이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풋풋함으로 가득한 사랑 내용은 걷어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너무 간지럽다고 해야 할까?

 

 

소설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당시 경찰 담당이었던 한 신문기자가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의 죽음을 계기로 마지막 취재를 결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자신이 소설가를 꿈꾸던 신문기자 출신인 작가 시오타 다케시는 경찰 관계자를 만나 사용 장비와 수사 방법을 조사하고, 유괴 사건 장소인 ‘1991년의 요코하마시의 지도를 구해서 사건이 일어난 동선과 장소를 일일이 되짚으며, 30년이 지난 현재와 하나하나씩 대조하는 등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취재를 다했고, 그 결과 소설은 압도적인 리얼리티를 뿜어내며 서장에서부터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동시 유괴 사건이라는 경악할 만한 수수께끼를 서두에 들이밀고, 신문기자와 갤러리 대표가 공백의 3을 추적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장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범행 수법이나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납치된 아이가 끝내 밝히지 않는 공백의 3에 있다. 그래서 결말에 이르러 느껴지는 감정은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실을 밝혀냈다는 쾌감이 아닌, ‘좋은 소설을 읽었다는 만족감이다.”

 

 

유괴를 당한 다음 꽤 시간이 흐른 뒤 갑작스럽게 돌려보내진 소년이라는 조금은 황당하고 거의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공백이라는 3년이라는 시간은 관련된 모두를 뒤흔들어 놓는다.

 

왜 잡았고, 왜 풀어줬을까? 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걸 아주 짜임새 있게 살펴보고 있다.

 

집요함, 끈질김, 끈기 등이 생각난다. 하나의 사건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옭아매는지도 생각해보게 되고. 그게 선의든 뭐든 다른 사람의 삶에 엄청난 충격과 흔적을 남겼으니 여러모로 그런 상황과 위치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떤 게 알맞을까? 라는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얼핏 데니스 루헤인의 가라, 아이야, 가라문라이트 마일이 생각난다. 유사한 부분이 없진 않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관련성이 어거지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아동 유괴와 결손 가정 그리고 부모로서는 부적합하고 부족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가 사라진다는 설정 등 일정하게는 비슷하다는 말을 꺼내도 아주 틀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본만 엇비슷할 뿐 풀어가는 방식이나 내려지는 결론이나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일본과 미국, 동양과 서양이라는 식의 다름으로 인해서 내려진 결론일지도 모르고,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이야기 풀이 방식으로 인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어떤 게 정답이라 말할 순 없다. 각자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것이고. 등장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두 작가 모두 동일한 선택을 했을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재미나게 읽었으니 이걸 모르던 사람은 저쪽 걸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 반대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기른 정과 나은 정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끝에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는 처지가 안타깝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마음 편하게 정할 순 없지만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든 이어내려고 한 간절함에 눈길이 머문다.

 

영화로는 어떤 식으로 다룰까? 큰 기대가 가진 않는다. 만들기가 좀 까다롭지 않을까?

 

 

#존재의모든것을 #시오타 타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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