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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ㅣ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평점 :
좀 더 빠른 속도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질 못했다. 조금씩 끊어서 읽게 된다고 해야 할까? 멈춤 없이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내용을 알면서도 그게 잘 되질 않았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영화로 옮긴 걸 접했을 때 너무 놀라웠기 때문에 언젠가는 원작도 읽을 생각이었지만 그러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읽긴 했으니 다행이라는 마음이 더 크고.
종교가 없음에도, 기독교(든 천주교든)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더 있지만) 그래도 읽도록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종교가 있건 없건 읽기를 권하게 되고. 믿음과 신에 관해서, 그렇지 않더라도 신념이나 혹은 비슷한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심하게 박해받았던 17세기 일본. 그런 와중에 많은 사람의 신뢰를 얻으며 선교활동을 펴던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 페레이라의 배교 사실이 알려진다. 확인을 위해 잠복한 제자 로드리고는 수많은 고난과 갈등을 겪고...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을 외면한 채 침묵하고만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내면 묘사를 통해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란 신학적 문제를 조용하지만 가슴 뜨겁게 그려낸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재미가 곁들여져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다.”
영화를 통해서 이미 접했던 내용이라 특별히 새롭거나 달라진 건 찾지 못했다. 있었어도 그게 그리 큰 부분이라 생각하진 않고. 영화가 너무 깊은 인상을 줘서 책을 읽는 건지 영화의 각 장면들을 글로 설명해주고 있는지 헷갈려지긴 했지만 책과 글을 통해서 조금씩 내용을 다시 접하고-떠올리고 천천히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주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술술 읽을 순 없었다.
“이 작품의 기조(基調)는 그렇게 잔인한 박해에서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신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반문하는 데 있다. 어째서 이러한 시련을 견뎌야 하는지 물어도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대답하시지 않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예지(叡智)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서이지만, 엔도 씨의 작품은 그 점에 얽힌 또 다른 문화사적인 해답을 제시한 문제작이다.”
신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비존재지만 그걸 갖고 따지고, 무시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비존재라 보는 것) 자체가 이미 불경하고 불손하겠지만 믿는 사람과 다툴 생각은 없다.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고 나란 사람은 내 생각이 있기 마련이니까. 존재하지 않는, 침묵하고 대답해주지 않는 그걸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것에 관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심정을 그래야만 하는 처지를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그런 대답에 대한 갈망 속에서 어떤 식으로도 그걸 해소할 수 없음에 대해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어떤 뜻을 찾는 과정을 아주 인상적으로, 괴로움과 가엾음 그리고 고통 속에서 들리지 않는 대답을 (어떤 식으로도 울리지 않을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포기하는지를 지켜보게 된다.
읽으면서 들게 되는 생각이 그저 착각과 오만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꽤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참고 :
1. “저자는 자신은 가톨릭 신자이며 소설을 통해 침묵 속에서 하느님은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고 계시는가를 말하고 싶었다며 제목을 '침묵'으로 정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한다.”
2. 번역에 관해서 꽤 다른 입장이 있는 걸로 안다. (개신교, 가톨릭) 출판사에 따라 각 종교관에 기울어진 번역(불충실한 번역)이라고 하는데(https://riks.korea.ac.kr/DATA/root/FILEz/b_d8bef14041/96_15.pdf), 더 알맞은 번역-말씀이 있길 바란다.
#침묵 #엔도슈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