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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클락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11월
평점 :
“애인을 살해한 출판사 사장 재노스는 목격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회사에서 간행하는 '크라임웨이'의 편집 주간 조지 스트라우드에게 목격자를 찾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스트라우드는 곤혹스럽다. 그 목격자는 역광 탓으로 재노스가 눈치채지 못했지만 다름 아닌 스트라우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구상에서 자신의 모든 인생이 갈기갈기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무언의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이 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뛰어들었다가 지고 만 커다란 도박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란 분명 거짓말이거나 신화일 뿐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책에 있는 홍보 문구와는 다르게 영화 ‘노 웨이 아웃’을 통해서 알게 된 게 아닌, 1948년에 발표된, 찰스 로튼이 출연한 ‘빅 클락’을 통해서 알게 된 소설이고 원작이다. 영화가 무척 마음에 들어 ‘노 웨이 아웃’도 봤고, 조금은 유별난 방식으로 만들어진 ‘비밀의 연인 Police Python 357’도 봤지만 제일 잘 만든 건 아무래도 1948년 영화로 고를 것 같다.
원작에 비해서는? 어떤 점에서는 영화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먼저 접하고 책을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영화가 좀 더 급박하고 극적인 결론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평가를 하게 된다. 그것도 그렇지만 악덕하고 냉혈한의 모습을 “애인을 살해한 출판사 사장 재노스”를 더 짜릿하게 (빼어나게)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들었다.
소설은 무자비함이 덜하다고 해야 할까? 혹은 우유부단함이 너무 드러나고 있을 뿐이라 어쩐지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가장 절박하게 사건에 매달려야 하는 사람일수록 현장과는 거리가 멀고, 현장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사건의 진짜 의미나 책임은 거의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는 식의 (원작 소설의) 구성을 생각한다면 그게 더 알맞은 모습이긴 할 것 같다. 그래도 영화가 더 선악의 구분이 커서 좋았다.
“장 별로 다른 인물을 화자로 내세우며 시점을 뒤섞어 이야기를 끌고”간다는 점이 특색일 것이다. 이어달리기 식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고 빨리 읽을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내용이 꾸며져 있다. 이젠 옛날이라는 말을 넘어서 역사책을 통해서나 접하게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조금은 낡은 느낌도 들지만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이라는 기본 설정이 워낙 흥미를 끌고 매력적이라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을 것이다. 읽게 된다면 새로운 방식의 뭔가가 떠올려질지도 모르고.
“이미 두 번 영화화 되었고, 두 편 모두 인기를 끌었으며, 영화 자체로도 빼어난 성과를 거두었다면 이제 만족하고 손을 거두는 게 도리일 터. 그러나 발표로부터 6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피어링의 비전을 돌아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언제든 또 한 편의 영화가 새로이 기획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으리란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이라는 소재가 지닌 원형적인 매혹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피어링이 구축한 ‘빅 클락’의 모습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유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국가공권력의 역할을 대체하여 담론을 생산하고 기능을 수행하는 거대 기업체. 각자 자기 일에는 유능하지만 전체 그림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구성원. 그들을 엮는 네트워크 위에서 벌어지는 책임 전가 또는 증발. 방향을 잃은 채 떠밀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발을 빼기는커녕 계속 흐름에 끼어 한몫할 수밖에 없는 삶. 약속된 일탈과 반복되는 귀환. 이 모두가 『빅 클락』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빅클락 #케네스피어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