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40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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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기

그리고 연인들

 

최승자 지음

 

갈수록 빠져들고 만다. 처음 최승자 시인의 글을 접했을 때는 복잡했다. 이 세상 너머 어딘가로 가고 있는 지성인의 모습이 낯낯이 드러나서, 그 민낯이 거북했다. 내 안의 어둠이 피어올라 뾰족한 가시들이 얼키고 설켰다.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시가 마음을 누르더니(너는 묻는다 라는 시를 특히 좋아한다), 소리내어 대뇌이게 하더니, 이내 다른 시집도 찾아보고 마음에 넣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밤

 

팽팽한 초록빛 눈알을 번들거리며

내 앞에서 공포는 무럭무럭 자라오른다.

바오밥나무처럼 쳐내도 쳐내도

무한정 뻗어 나가면서

불면의 밤, 불면이 방을

쑥대밭처럼 뒤헝클어 놓는다.

내 입 속으로 내장 속으로

가지 치고 뿌리 치며 뻗어 들어온다.

 

새벽 여섯시, 물먹은 싱싱한 빛을 발하며

공포는 이미 하얗게 세어 버린 내 방 안을

그 무성한 이파리와 줄기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뒤덮어 버리고

내 배꼽을 뚫고 아랫목

구들장 속까지 뿌리 내렸다.

 

그릇 똥값

 

노량진 어느 거리 그릇 세일 가게

쇼윈도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그릇 똥값

 

순간 충격적으로, 황금색으로

활짝 피어나는 그림 하나.

신성한 밥그릇 안에 소중하게 담겨 있는

김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똥 무더기 하나,

아니 쇼윈도 안 모든 그릇들 안에 담겨

폴폴 향기로운 김을 피워올리는 똥덩이들.

그 황금색의 화한 충격.

 

입과 항문이 한 코드로 연결되듯

밥과 똥이 한 에너지의 다른 형태들이니,

밥그릇에 똥을 퍼담은들,

밥그릇에 똥을 눈들 어떠랴,

 

산다는 것은 결국 싼다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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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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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그리고 뼈들이 노래한다

숀탠 지음



... 이해할 수 없다. 무루 작가님의 책을 읽고 숀탠을 알게 됐다. 내 생각이 맞았다. 모르고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다가와서 찾아서 보면 실망하고 만다.

내 스타일이 아닌 것을 떠나서 시사점도 안겨주지 못하는 그저 글들의 나열이었다.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내가 부족해서 일거라 생각하고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면서 두고두고 봐도 볼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기에 급급하다 떠나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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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휴식
구가야 아키라 지음, 홍성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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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휴식

구가야 아키라 지음/ 홍성민 옮김

 

마인드풀니스. 심리학에서는 마음챙김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 일종의 명상심리치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십 년 전의 나로 회귀하고, 복기하게 됐다. 내가 처음 마인드풀니스를 접할 때 느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있었다. 마치 내 이야기를 쓴 것 같았다. 입문하는 이들에게 더 없이 좋을 책이었다. 책의 끝에는 특별부록으로 최고의 휴식을 위한 5Day 매뉴얼이 있다. 책 이곳저곳을 다시 살필 시간을 줄여주고, 간편하다.

 

십 년 전, 랩실에 들어 간지 얼마 안됐을 때다. 허리는 바르게, 배는 편하게 자세를 취하고 앉아 있는 내가 있다. [허리를 바르게 펴고 상체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는다 손은 허벅지 위에 둔다. 다리는 꼬지 않고 발바닥을 지면에 붙인다. 눈을 감거나 떠도 상관없다] 이게 기본자세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뭐지?

내가 왜 여기에 앉아서 이걸 하고 있는 거지?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 책의 주인공은 하던 일이 잘 안되던 차에 마인드풀니스를 연구하는 그로브 교수와 만나게 되고 어떻게 삶이 달라지는 지를 말한다. 마인드풀니스로 달라지는 사람을 만나지만 정작 주인공은 계속 의문을 품는다. 나도 그랬다.

 

[속는 셈 치고 일단 한 번 실천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 마인드풀니스의 최대 단점이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화감을 줄이고 설득 필요 없이 좋다는 인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마음과 뇌의 피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어지는 형태로 나타나며, 배려가 없는 직장은 가장 먼저 화장실이 더러워진다고 설명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배려하는 것이다. 진정한 휴식은 나를 배려하는 힘이며 다시 불타오를 수 있도록 불길을 내는 것이다. 화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팍팍함에서 온다.]

 

[문제를 해결할 만한 기력도 체력도 바닥나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신기하게도 내 발걸음이 저절로 이곳을 향했다. 무기력하고 패기가 없다면 지금 뇌가 지쳐 있지 않은지 점검해보자. 당신 스스로 제대로 쉬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최고의 휴식을 얻을 수 있다.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는 과거와 미래애서 비롯된다. 지난 일에 연연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불안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평가나 판단을 더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경험에 능동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생겨난다. 혐오, 질투,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고, 타인에 대한 애정, 자비를 내면에 키워 뇌에 쉽게 피로가 쌓이지 않는 상태를 만들자.]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야 하고,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나쁘다는 인식이 더 나빠요. 그 사람이 싫다고? 싫은데 어쩌겠어요. 싫어할 수 있어요. 욕하고 싶지요? 혼자 있을 때 중얼중얼 욕해보세요. 그래야 그런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요. 무턱대로 혐오, 질투는 나쁘니 하지 말고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감정을 키워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우선 그런 감정을 실컷 내뱉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육체적인 피로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 짜증, 의욕 상실, 집중력 저하, 무기력, 건망증, 졸음 등등. 예컨대 보통 때는 부딪치지 않는 책상 모서리 같은 데 부딪치는 것도 피로가 쌓였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네.]

 

[불안으로 날뛰는 머릿속 원숭이들, 즉 잡념을 얌전하게 길들일 수 있다면 피로감은 한층 줄어든다. 잡년에 대해서 방관자로 있어라. 잡념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잡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그 열차의 승객이 아니다.]: 기차가 들어오잖아. 그냥 봐. 지나갈거야. 안타면 돼. [나를 힘들게 만드는 역경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역경은 실제보다 더 부풀려지곤 한다는 걸 기억하라. 지금 여기에 집중하여 회복력을 발휘하는 것이 당신의 피로를 줄여줄 것이다.]

 

[만약 산에 오른다면 어디를 볼까? 늘 목표만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를 완수하는 것에 얽매인 상태를 과제 지향적이라고 한다. 산을 오를 때 주위의 풍경도 봐야 하고, 내발 아래 펼쳐진 풀과 꽃도 봐야 즐겁잖아. 그런데 정상만 보고 간다면 어떨까? 그저 산을 오르겠다는 과정만 집중하면 다른 건 보기 힘들겠지. 여유도 없을 테고. 일단을 빨리 정상에 올라가야 하니까. 조급한 마음. 그걸 해소하지 못하면 분노가 생기지. 그러니까 과제 지향적 성향이 과하면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고 분노가 자란다는 거야.]

 

 

Lazy day활용: 한옥스테이(촌캉스)일정을 보낸다.

-마당 풀정리

-동네 산책하며 쓰레기 줍기

-모르는 식물, 동물, 곤충 관찰하기

-자연 냄새 맡기

-인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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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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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pril Bookclub

2022년 1월 12일 수요일


코스모스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지 1년 반이 넘었다. 이정도는 당연히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분량이 있으니까 전달 선정도서를 줄 때 같이 줬다. 그런데 책을 받아든 모임원의 압도적인 표정. 나도 손에 잘 잡히지도 않고, 잡아도 진척이 없었다. 논문 작업 한답시고 아무것도 못 하는 것도 겹쳤다. 그런 상태에서 매일 읽어도 모자랄 책을 선정했으니, 한달은 커녕 일년이 걸려도 못 읽을 책이 되어버렸다.

 

코스모스란 무엇일까? 정의는 내려졌는데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그러다가 일본의 원자폭탄이라든가 하는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을 저자가 이야기할 때에서야 읽힌다. 유시민은 이 책이 그리 좋았다고 했는데, 신영복은 좋은 책을 여러번 읽는 것이 다독이라 했는데, 왜 나는 이 책을 여러번은커녕 한번도 읽기 어려운 거지. 우주란 미지의 세계인 것처럼 내 생각에도 항상 미지로 남아 있고 싶은가보다.

 

내년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하고 소회를 마쳤는데, 그 말을 하고 두렵다. 내년이면 벌써 올해이지 않은가. . 끔찍하다. 심지어 이미 읽은 분들의 리뷰도 보기 싫을 정도다. 그래도 얕은 지식을 내뱉어 보면 다음과 같다.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줄까?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노예 제도의 야만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별 세계의 비밀을 캔다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 이 말은 우리가 학문을 해야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사유할 줄 알아야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 당장 밥 먹고 사는 게 급한 현실에서 책을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과 같다. 전쟁이 터져서 사람이 죽네 마네 하는데 예술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과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개나 돼지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추구하는 이상이 있다는 것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유슈비츠 포로 수용소에서, 위안부에서 그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삶에 끈을 놓아버리지 않은 것도 어쩌면 한 맥락이지 않을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아가는 것, 그리고 삶의 저편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견디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호전성, 그릇된 관습,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이방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같이 오랫동안 유전돼 온 못된 요소들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 유전 쪽에서 보면 유전이 아닌 것이 없다. 심리학에서는 진화심리학이라고 한다. 비만도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사람이 먹어서 지방으로 축적하고자 하는 것은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그래서 배가 부른데도 먹고 있다는 것은 나를 거슬러 거슬러 또 거슬러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보면 조상들이 지속적으로 가난에 굶주려서 살기 위해서 있을 때 먹어두자는 식으로 계속 먹어대다가 축적된 배불러도 음식이 있으면 일단 먹어야 된다는 유전적인 세포가 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격렬한 분노는 아주 먼 옛날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져서 아직도 우리 머리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파충류의 뇌, 소위 뇌의 R-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 살인 행위를 한다는 건 파충류의 뇌 시기의 충동성을 발현하는 것인가.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뇌의 부위와도 같겠군.

 

[피부 접촉의 단절에서 겪게 되는 애정 결핍은 사람에게 깊은 고통을 안겨준다. 유아기에 피부 접촉을 통한 애정 표현이 발달된 문화일수록 폭력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회들은 주로 육체적 쾌락을 박탈당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유아 체벌이 성행하는 사회에서는 노예 제도, 잦은 살인, 고문, 심지어 원수의 수족을 절단하는 행위 등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여성 학대가 극심하고,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초자연적 존재가 개인의 일상을 간섭한다고 철저히 믿는다. 인류의 미래에 공헌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의 아이를 자주 껴안아 주라.] : 심리학 학부생이면 이미 닿도록 접하는 것이 할로 부부의 원숭이 대리모 실험이다. 아기 원숭이가 우유병이 매달린 철사 구조물을 선택할 것인가. 천으로 감싸 옷을 입힌 구조물을 선택할 것인가를 실험했는데, 원숭이는 우유를 먹고 천으로 감싸 옷을 입힌 구조물에 가서 안긴다. 이것을 보울비는 접촉, 따뜻함에 대한 욕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접촉을 통한 애정 표현이 결여된 상황에서는 파충류의 행동 양식이 권장될 것이다.

 

[우주에는 각종 원자들이 별들의 중심에서 합성되고, 매 초마다 태양과 같은 별들이 수천여 개씩 태어나며 여기저기 막 태어난 행성들에서는 중심별에서 방출된 빛과 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물과 대기에 새로운 생명의 불꽃을 댕기고, 수천억 개에 이르는 은하들 하나하나에서는 생명의 진화를 가능케하는 원료 물질들이 별의 폭발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퀘이사가 있고 쿼크가 있으며 눈송이와 개똥벌레가 함께 살아 숨쉬는 코스모스인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용기는 자신의 편견이 밖으로 드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또 찾아낸 결과가 자신의 희망과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코스모스의 조직과 구조를 끝까지 탐구하여 그 깊은 신비를 밝혀내려는 이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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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 -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일상인문학 5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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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지음/문항심 옮김

 

아는 말인데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모르는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글로 읽히지 않는다는 게, 분량이 적은데도 쉬이 나아가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 사색을 하게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씁쓸함이 남은 책이었다. 왜 짧고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 이해되지 않고 눈으로만 읽힐까. 그럼에도 집중해서 읽고 밑줄 긋고 그렇지. 그렇지 하기도 한다. 그런데 뒤돌아서서 내가 방금 뭘 봤나 싶은. 생각나는 게 없다. 그래서 정리도 안된다.

 

왜 그런지 알았다. 아무리 읽어도, 부분이 좋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자기 결정, 자기 인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어떤 부분에는 꽂혀서 읽었지만, 그것이 정작 자기 결정이나 인식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냥 그 문장으로서 생각해볼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과연 자기 결정이나 자기 인식은 무엇인가.

 

자기 인식: 인정하기: 자신에 대한 이해

 

만일 우리 자신 속으로 계속 깊게 파 들어가서 사고와 감정의 정체가 누워 있는 바닥에 닿는다고 해요. 이러한 생각은 자기 인식이라는 것이 표면과 심층을 분리하여 우리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에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허수아비로 만들거나 조종함으로써 존엄성을 빼앗는다면 존엄성의 상실은 자기 결정의 상실과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기만은 이익이 동기가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착각이지요. 자아상의 인물처럼 생각하고 바라고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에요. 그러면서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그려놓습니다. 특히 도덕적으로 의미 있는 사고와 소망과 감정이 관여할 때 더욱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앞에서도 거짓말을 하며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폭로하지 못하도록 이를 악물고 지켜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덕: 잔인함과의 싸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만일 외부 권위와 그것이 주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우리는 자기 결정의 상실을 경험할 것입니다. 도덕적 친밀성이 부재하면 타인을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단이자 도구로만 보는 것이지요. 살아가는 동안 타인의 시선을 받음과 동시에 그들과 다양한 교류를 나눈다는 사실은 그들의 이익이 나의 이익과 상반될 경우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하는 행동의 동기에 대한 이해가 적을수록 잔인함으로 치우칠 위험은 높아집니다. 반대로 나에 대한 타인들의 투사를 알아차리고 그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하고 교류 가능한 감정들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대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좀 더 살아있고 세심하며 재미가 있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념적 분화입니다. 내게 파고드는 이 불편한 감정은 두려움인가, 아니면 짜증과 분노인가? 사람들 앞에서 나서려 할 때 느끼는 이 감정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억눌려 있다가 급기야 폭발할지 모르는 다른 감정에 대한 두려움인가? 그리고 그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짜증이나 분노라고 했을 때 정확히 누구 또는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몇 년 전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니며 삶을 힘들게 하는 이 충동, 이것은 화려함을 향한 갈망인가 아니면 단순히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욕구인가, 혹은 인정받고 싶은 더 깊은 차원의 갈망인가? 자신의 거짓과 사기가 실패하거나 까발려지는 것을 미리 막아내고자 하는 과열되고 부단한 열망은 아닐까? 우리의 삶과 감정이 더 이상 서로 맞지 않을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위기를 극복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새로이 보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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