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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2024년 2월 Bookclub
내 삶에서 일어날 거라 예상하지 못한, 희박한 것에 대해, 공감을 불러오기는 어렵다. 내 인생에서도 내 부모의 삶에서도 전쟁은 없었다. 전쟁은 없었지만 가족 간의 전쟁이라면 있었겠다. 그러나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적인 불가항력과도 같은 전쟁포로의 삶은 내 인생에 적용하기란 어렵다. 하여 저자는 아우슈비츠에서 의미를 찾는 것의 중요함을 알았지만, 나는 내 삶에서조차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의미치료 부분을 의미있게 봤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니,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처럼 의미란 사람이 사람으로 살게 하는 마약같은 것이다.
나는 의미없이 살았지만, 효과있게 살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의 결과가 노력보다 더한 값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것은 때론 의미없이 살았던 내 삶이 밝아지게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텔레비전을 이리저리 틀어대다가, 목적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폰을 켜고 놓아주지 않는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아! 오늘 좀 열심히 살았다 싶으면 이내 그것보다 몇 배의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데 열중했다. 나는 일부러 공백의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기를 자청했다.
하루 24시간을 똥 누는 시간까지 계산할 정도로 알차게 쓰고, 번 돈 모두를 모으다시피하고 필요한 인간관계를 파악하고 사귀는 사람을 보면 멀리하게 된다. 말로는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싫다. 계산하고 이득이 될 것 같으면 행하는 모든 것들에 환멸을 느낀다. 이러한 면은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도 변함이 없다. 당시 나는 우열반의 우 반에 속해 있었다. 모두는 열과 성을 다해 공부하는데 집중했다. 반에서 1등 하면 전교에서 1등, 반에서 5등하면 전교에서 5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밀집해 있었다. 그런데 성적이 우수한 만큼 인격은 열등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적이 되어야 했다. 그러한 상황에 놓여있던 나는 스스로 멈추기를 자쳐했다. 그들과 똑같은 내가 된다는 것이 나를 버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탐욕에 동반 기차를 탈 때 느끼는 모멸감이 나를 견디지 못하게 했다. 의미라는 것은 참 쉬우면서도 어렵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죽도록 피곤한 몸으로 막사 바닥에 앉아 수프 그릇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동료 한 사람이 달려왔다. 그러더니 점호장으로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는 것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바로 그 순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가 파놓은 흙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삶의 의미는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행동할 때에만 공격성이 누그러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공동의 목표가 생기자마자 자신들이 달성해야 할 목표의 도전을 받았고, 서로 협동하게 됐다.
인간으로서 죄를 짓고 죄인이 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죄를 털고 일어나 자기 자신을 초월해서 성장하고,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됨으로써 그 죄를 극복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