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ㅣ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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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2026년 10월 The April Bookclub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 책을 선택했다. 심혈을 기울이고,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북클럽 책으로 선정을 하는데, 이제는 잠시 쉴 때가 되었나보다. 왜 이 책을 골랐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읽어서,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주 오래전 좀머씨 이야기를 읽었다. 읽었었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가의 향수라는 책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좀머씨 이야기에 와!까지는 아니었기에,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기억에 담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이 작가의 글이었을까?

 

아파트에 현수막이 붙은 데 이어, 방송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이다. 수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지나 다녀도 도망가지도 않고, 어떤 비둘기는 뚱뚱해서 못 날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지경이다. 수많은 똥이 아파트의 벽과 바닥을 훼손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먹이를 왜 주지 말아야 하는지 경각심을 가지지 못한 하나의 인간이었다.

 

주인공 ‘조나단’이 비둘기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조나단은 주체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곧 아버지도 집을 나간다. 어린 여동생과 얼떨결에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었다고 대사 아닌 글이 나온다. 갑자기 아저씨의 농가가 등장한다. 농사를 짓는 것도, 군대에 가는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4개월 만에 아내가 아이를 낳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간다. 그때 조나단은 처음으로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자금을 정리해서 그동안 조나단을 수동적으로 지시하던 대상에게서 벗어나 장소를 옮긴다. 그곳에서 은행경비로 취직을 하고, 자신이 선택한 집에서 오랫동안 세를 살다가 이제 조금 있으면 남들에게는 남루한 목욕탕도 없는 곳이지만, 자신에게는 호텔같은 아늑함을 주는 집의 잔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비둘기 한 마리가 뿌리 채 뽑아버린다. 현관 앞에 있던 비둘기에 삶이 끝날 것 같은 공포를 느껴, 다시는 이 집에서 살 수 없을 거라고 결단을 하고, 짐을 싸서 나간다. 그리고 비둘기를 시작으로 머피의 법칙처럼 되는 일 하나 없는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자려고 간 호텔은 더할나위 없이 최악이었다. 조나단은 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불현 듯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을 나오면서 관리하는 로카르 부인에게 비둘기로 인해 똥이 많다고 말했었는데, 돌아간 집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말끔하게 치워놓았고, 비둘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도 닫아 있었다.

 

작고 길쭉하고, 100쪽도 안되는 데 14800원이나 한다. 글 어디 하나 이상하지 않은 게 없는데, 기가 막히게 자연스럽다. 책 표지 또한 좋다. 내가 만든 책도 이렇게 표지에 정성을 들이고 싶다.

 

[불안한 세상 속의 안전한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그런 안식처, 도피처가 한순간에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이것은 비단 비둘기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어제까지 사랑한다고 말하며 서로의 감정을 나눈 연인과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겉잡을 수 없이 일기도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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