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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 에디투스 / 2025년 5월
평점 :
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사놓고 읽지도 않고 있다가, 이유가 있어서 부리나케 읽는 경우가 있다. 이유가 있어도 읽지 않았던 날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건가. 시간과 공을 들여 밑줄과 글을 써가며 읽지 않았다. 그만큼 남는 것도 적었다. 정리가 되지 않은 기분이다. 책이 많은 양을 담으려고 동분서주하다보니 어수선한 것에 내 마음이 더해져 배가 되었다.
제자리에 있다는 건 뭘까? 외향적이어서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제자리에 있는 걸까? 머릿속으로 공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향유한다면 과연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제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자리에 있다는 건 좋을 것일까? 나쁜 것일까? 마치 외향적이지 않은 사람은 부족한 사람인 냥 말하는 것 같다. 외향성과 내향성이 좋고, 나쁘고를 논하게 되는. 범주일까? 제자리는 나쁜 걸까? 우리는 끊임 없이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할까?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밟으면서 사는 사람들을 경시해야 할까?
내가 아는 K는 매우 루틴한 인간이다. 루틴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한다. 일어나서 가족들의 음식을 차리고 짐으로 간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 운동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차를 파킹하고 출근은 한다. 출근을 해서 옷을 갈아입고 아침 운동을 20여분 한다. 그리고 마치 루틴이 없는 인간처럼 시간을 허비한다. 그리고 퇴근 후에 사람들을 만나 술을 한잔하고 귀가한다. 그런데 K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람들과의 모임도 좋아한다. 모임이나 여행이 없을 때는 루틴 생활을 하지만, 여행이나 모임 중에는 이 루틴을 과감히 벗어던진다. K는 제자리에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은 걸까?
제자리에 있기 위해 우리는 집을 원한다. ‘저 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 아파트는 한 채도 없네’ 라고 스물 여섯의 나는 버스 타고가며 중얼거렸다. 왜 우리는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가? 그것이 왜 들어선 카페의 한 구석 자리일 수는 없고, 정해진 네모난 감옥 이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자리를 만들고, 그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인데. 그것은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정리된 곳, 질서정연하게 고독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명료해진다. 어수선할수록 내 마음 같아 짜증이 인다. 나는 그런 인간과 오랜 시간을 살았다. 남편이라면 내가 선택한 것이니 어찌할 수도 없다. 자식이라면 내가 배 아파서 원해 낳은 건데 뭐라 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이리도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게 견딜 수 없다. 그런데 하는 행위마저 무질서하다. 바로 여기에서 그녀와 나의 간극이 한없이 벌어진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의 무질서를 몸소 보여주는 그녀의 행위가 이 책의 본질을 더 파고들었다.
그래서 제자리에 있다는 건 어떤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