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수업 -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
고미숙 외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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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되었다.
한해 한해 나이 먹는 게 무섭다.
나이듦도 수업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책.
당장 변할 순 없지만
좀 멋지게 나이 들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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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F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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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  106분 

개봉일 :  10. 14 

영화를 보면 좋을 사람 :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이, 유지태와 수애의 소름 돋는 연기를 즐기고 싶은 이라면 OK! 

 

스릴러 영화, 공포 영화 이런 건 웬만해선 보지 않는다. 그것도 절대 혼자서는. 겁이 많아서 절대 혼자서 못 보는데 수애와 유지태 두 배우의 출연작이라 큰맘 먹고 표를 끊었다. 감상은, 역쉬! 수애, 유지태라는 거. 두 배우의 연기을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는다. 스릴러 영화의 핵심인 긴장감도 적당히 녹아 있다. 약간의 억지스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거야 뭐, 영화니깐 가능한 장치라고 생각하자. 

5년 동안 라디오에서 진행하던 영화 음악 프로그램을 떠나는 고선영 (수애). 시니컬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앵커 시절부터 거침없는 언변으로 인기를 누렸다. 말을 못하는 아이의 수술차 미국으로 떠나게 되어 마이크를 내려놓게 된다. 마지막 방송날, 연쇄살인범이자 열혈 청취자인 한동수가 집에 침입해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자신의 요구에 따라 방송할 것을 협박한다. 몇 년 전에 틀었던 노래, 그 노래를 보낼 때 했던 멘트 등 선영으로서는 기억하기 힘든 것들을 요구한다. 방송국을 박차고 나와 중계차로 이동하며 방송을 진행하는 선영과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니 자신을 찾아오라는 동수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한동수는 사이코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라며 선영을 몰아 붙이는 그는, 선영이 방송에서 했던 멘트를 하나하나 상기시켜주며 자신은 그녀의 말에 따라 행동했다고 한다. 사회 악을 처단하는 정의로운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살인을 저질렀기에 선영이 "영화에서라도 이런 미치광이 살인마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선영의 집에 침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유지태의 연기는 섬뜩하다. 미치광이 한동수에 몰입된 그의 연기는 평소의 넉살 좋은 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미치광이의 웃음과 말투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수애는 영화 <가족> 이후 간만에 스크린에서 얼굴을 봤다. 뉴스를 보도하는 앵커, 감미로운 영화 음악 방송을 진행하는 DJ, 아이를 살리기 위해 미친 듯 뛰어가는 엄마, 영화 속에서 이 모든 걸 수애표 연기로 녹여냈다. 매력적인 그녀의 중저음 목소리 또한 이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 참에 수애의 다른 영화들도 찾아서 살펴봐야겠다. 

스릴러 영화답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효과음, 숨막히는 추격신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 사건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라디오 방송 시간 동안 벌어진 일에 불과한데, 그 두 시간 동안 모든 일이 벌어지고 해결됐다는 건 좀 무리가 있다.  

방송 마지막날이라고 방송국을 찾은 선영의 열혈팬의 존재 또한. 이 사람은 선영의 멘트, 방송에서 나왔던 모든 노래 목록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다. 무려 5년 동안의 방송 내용을 모두 다. 선영은 이 사람에게 도움도 받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왜 자기를 따라 다니냐고 소리 지르나, 결국 이 사람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영화 자체가 진행이 안 되고, 결론도 날 수 없을 정도다. 차라리 라디오 PD가 이 모든 역할을 하게 했다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뜬금 없이 청취자가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모양새가 영~ 아니다.  

연쇄살인범이 보낸 살인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TV에 방영되고(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지만), 거의 개인 방송하듯이 라디오를 차지해 내내 방송을 해대는 것도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 이렇게 억지스런 설정에도 불구하고 스릴러 영화의 긴장감을 잘 유지하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애와 유지태의 열연 덕에 영화는 볼 만하다. 영화에서 스토리도 스토리거니와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 영화다. 설렁한 가을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고 싶다면  심야에 <심야의 FM>을 감상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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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 Loveholic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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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 114분 

개봉일 : 10월 21일 

영화를 보면 좋을 사람 : 그냥 시간 때우기용 영화가 보고 싶은 사람 

  

어떻게 하다가 개봉날 이 영화를 봤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배너 광고로 떴기에 눈에 익어서, 사전 정보 없이 덜컥 선택하고 말았다. 아, 거의 두 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 미치겠더라. 격정 멜로를 기대했건만, 이건 뭐 멜로 찔금, 불륜 찔금, 18금 찔금, 찔금찔금 넣다가 제대로 버무리지 못해 어정쩡하게 만들어진 양념이 잘못된 요리 같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지흔(추자현)은 잘 풀리는 게 없는 30대 싱글녀다. 직장에서도 잘려, 음악 한다는 남자친구는 결혼은 안중에도 없다. 반면 친구 경린(한수연)은 의사 남편 명원(정찬)과 남부럽지 않게 잘 산다. 지흔은 술을 먹고 폭행을 휘두르는 바람에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살 곳이 없어져 경린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경린은 남편과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물리치료사 동주(김흥수)와 바람을 피고, 방황하던 명원은 지흔은 묘한 관계가 된다. 결국 경린과 명원은 이혼을 하고, 지흔은 명원과 자주 만나던 야구게임장에서 다시 그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영화의 스토리.  

참 뻔한 이야기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그 새롭지 못한 것을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관건인데, 뻔한 이야기를 참 뻔하게 그려냈다. 경린이 동수를 만날 때부터, 남편이 동수를 집에 데려오면서부터 동수와 경린의 관계는 예측이 되고,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남녀가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정이 든다는, 지흔과 명원의 관계도 이미 예측이 가능한데. 뭐, 예측을 벗어나는 게 없다. 예측한 대로 전개되는 영화. 관객은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시계만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는 이것저것 버무려놓았다. 지흔을 통해 자아를 찾는 30대 싱글녀의 모습이 설핏 드러나나 기억 나는 건 내내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추자현의 모습이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캔맥주가 몇 개인지 담배가 몇 개피인지 세어보진 않았지만...정말 많이 나온다. 소설을 쓴답시고 쓰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표절한 것을 알고 다시 출판사에 취직해서 책을 만든다. 추자현의 연기는 조금 오버스럽다 느껴지고 딱히 캐릭터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연기력에 비해 캐릭터가 너무 밋밋했던 건 아닐까. 

경린은 남들이 보기에 부러운 가정을 가졌으나 일방적인 남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고, 자신에게 들이대는 동수와 바람이 나고 결국 이혼하는 여자. 동수는 만나는 여자도 많고 작업도 잘하는 전형적인 나쁜남자 스타일. 명원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잘 표현하지 못하고, 아내의 바람에 충격받아 아내와 정 반대 성격인 지흔과 하룻밤을 보내나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는...뭐, 마지막엔 지흔과 재회해서 앞으로의 상황을 예상할 수 있게 했지만.  

스토리가 그저 그러면 베드신이라도 화끈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사랑과 전쟁>의 극장판 정도랄까? 안타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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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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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일 :  9월 16일 

영화를 보면 좋을 사람 :  설레는 연애 감정을 느끼고픈, 적당한 농담에 즐거워하며 기분 좋아질 영화를 찾는다면! 

거의 백만년 만에 영화관을 찾을 것 같다. 눈에 띈 영화가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다. 기분 울적하고 마땅히 볼 만한 게 없을 때는 로맨틱코미디가 딱이다. 그래서 선택했고, 잘 봤고, 후회 없다. 울적한 기분은 사라지고, 몇 시간 동안은 즐거웠으니. 10월 말까지인 지금까지도 영화는 잘 되고 있는 듯. 내가 재밌으면 다들 재밌는 거다. 난 단순하니까. ㅎㅎ 

시라노. 배고픈 연극쟁이들이 만든 연애대행사다. 짝사랑에 괴로워하는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준다. 의뢰인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상대방과의 대사, 상대방의 뇌리에 강한 인상 남기기, 적절한 밀고 당기기, 갑자기 연락 끊기, 우연한 만남 등 모든 것은 철저히 각본에 의해 이루어진다. 영화의 초반부터 한 의뢰인의 의뢰로 한 커플을 탄생시키는 시라노 구성원들의 움직임과 작업 스타일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등장한 펀드 매니저 상용(최다니엘). 상용은 교회에서 만난 희중(이민정)과의 사랑을 이루어달라고 의뢰하는데, 희중은 시라노의 대표 병훈(엄태웅)과 오래전 헤어진 여인. 병훈은 떨떠름하게 의뢰를 맡지만 작전을 사사건건 방해하며 위기로 몰려 간다. 하지만 병훈의 잘못된 작전이 제대로 먹혀 들어 상용은 희중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병훈은 희중과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희중은 상용과 병훈을 만나며 새로운 사랑과 옛사랑 사이에서 잠시 갈등을 겪고, 병훈은 희중에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병훈은 프랑스 유학 시절,  희중을 믿지 못해 이별을 고했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희중은 병훈에게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이런저런 곡절 끝에 병훈은 희중을 보내주는 것이 가장 큰 사랑임을 깨닫고 상용과 희중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한다. 시라노는 해체되고 다시 극단의 연출자로 돌아간 병훈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 이것이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다.  

영화는 초반에 한 의뢰인의 의뢰를 진행하면서 스피디하게 진행되어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만들지만 중반 즈음에서는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다. 특히 병훈을 좋아하는 민영(박신혜)이 카페에 나타나서 병훈의 애인 행세를 하며 희중과 대립하는 장면에선 꽤 지루해져서 저 지루한 장면이 언제 끝나나 싶기도 했다. 그 이전까지는 희중과 병훈의 연애시절 회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편집이나 묘한 감정선 등이 잘 그려졌다 싶었는데 그 카페 신은 왜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시라노는 <시라노 드 벨쥬락>이라는 프랑스 희곡에서 따왔다. 연극으로도 공연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극중 병훈이 극 마지막에 연출한 연극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으로 대신 연애편지를 써주는 시라노에 대한 이야기로, 병훈의 캐릭터와 잘 겹쳐진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지만 정말 희중을 사랑하는 상용의 진심을 알게 된 후 그를 도와 희중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주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계속되는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지리라 기대했건만 예상과는 다른 결론. 나라면 다시 만난 사랑을, 헤어진 후에도 계속 가슴에 남는 사랑을 다시 놓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영화에서도 <시라노 드 벨쥬락>의 결론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는다. 결론이 무엇이냐는 상용의 질문에 직접 영화를 보라고만 할 뿐. 그래서 나 역시 아직 결론을 모른다. 굳이 찾아보지도 않았다. 마음 한켠에 궁금증을 남겨두고 나중에 내가 직접 확인하려고.

각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살려냈다. 엄태웅, 드라마 <마왕>과 <선덕여왕>에서 조금은 오버액션하면서 진지했던 역할이 영화에서도 잘 살아난다. 적당히 제멋대로이고, 다혈직적인 병훈의 역할에 잘 어울렸다. 이민정, <꽃보다 남자>에서 처음 본 배우인데 이 여인네가 이렇게 예뻤던가 싶을 정도로 너무 예쁘게 나온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녀의 얼굴이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할 지경. 하지원의 뒤를 잊는 로맨틱코미디의 얼굴이 될 듯하다. 최다니엘, 어벙하면서도 사랑에 서툴고 다혈질인 상용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다음에는 스릴러나 범죄 영화 쪽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재된 다른 모습을 잘 살려낸다면 배우로서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을 듯하다.   

조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박철민, 내가 좋아하는 배우. 그의 코믹한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도 제대로 먹혀 들어간다. 권해효, 정말 우정출연 정도의 분량으로 출연하지만 그다운 넉살과 코믹함으로 악덕 사채업자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김지영, 와인 바 사장으로 나와 핵심을 찌르는 대사 몇 마디 하며 주인공들의 맘을 좌지우지한다. 묘하게 코믹하고 진지한 모습이 김지영과 잘 어울린다. 송새벽, 그를 처음 보는데 이미 많이 알려진 얼굴이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해서 큰웃음을 안겨준 얼굴. 더듬더듬 책을 읽는 듯한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배꼽 잡고 쓰러졌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과 캐릭터들이 버무려낸 유쾌한 로맨틱코미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웃자.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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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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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접속한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면 바로 나타나는 뉴스기사의 헤드라인. 잡다한 방송 프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사가 많지만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넘쳐나는 것이 아동 성폭행, 10대 성폭행과 관련된 기사다. 성폭행.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건이 이제는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리지 않은 날이 얼마 안 되는, 일상적인 범죄가 되었다. 마치 옆집 사람이 우리집 돈을 훔쳤다는 절도 사건처럼. 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반응하는 속도도 감각도 무뎌져 이젠 헤드라인이 떠도 에고, 또 사건이 터졌네, 한숨 쉬고 끝이다. 참 딸 가진 부모들은 어찌 살아야 하나 싶다.

<도가니>는 10대 성폭행, 그것도 장애아에 대한 성폭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분노가 치민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나오는 무진시의 자애학원이라는 장애인학교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매년 정부에서 40억이나 되는 복지예산을 지원받지만 아이들에게 나가는 음식은 형편없어서 아이들은 저녁을 굶고 따로 간식을 사먹어야 하는 지경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학원발전기금이라는 일종의뇌물을 주어야 취업을 할 수 있고, 학교의 실세들은 교사들에게 막말도 서슴치 않는다. 도무지 인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이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고, 단기간에 두 명의 학생이 자살했지만 그 죽음도 학교와 경찰에 의해 장애아의 부주의로 인한 죽음으로 덮히고 만다.  

기간제 교사로 막 학교에 발을 디딘 강인호가 부딪친 현실은  외면하기에 너무나 참혹했다. 그는 차마 상처받은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인권센터 간사인 대학 선배 서유진과 함께 법정 싸움을 벌인다. 결국 힘있는 권력자들을 업은 교장과 행정실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생활지도교사만 6개월 징역을 선고받는다. 같은 죄를 지었어도 교장과 행정실장 형제는 유능한 판사 출신 변호사를, 생활지도교사는 국선변호사를 앞세워 형량을 다르게 받는 것도 참 코미디 중의 코미디라 할 수 있다. 물론 생활지도교사도 형량을 다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는 것이 가장 최상의 코미디라 할 테지만. 무진시라는, 한때 민주화의 메카였던, 연일 안개가 자욱한 이 도시의 모습은 정의의 이름이 통용되지 않는,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에 다름아니다.   

강인호는 평범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것저것 해봤지만 되는 일도 없었고, 돈은 벌어야겠기에 아내 동창의 소개로 무진시까지 내려가게 되었고, 학원발전기금을 낼 때는 잠시 수치심에 휩싸이긴 했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는마는, 그냥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하지만 반 아이들을 위해 수화를 배우고,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수화를 익히겠다고 약속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다. 그래서 딸아이 새미를 생각하며 같은 반 아이들을 마음으로 보듬어 안고, 연두와 유리의 상처를 진심으로 아파하고 걱정하며 학교에 맞서 싸우게 된다. 이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인권센터 간사로 일하고 있는 대학 선배 서유진은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하며 무진시의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 맞서 싸운다. 경찰서의 장경사는 학교와 밀착관계를 맺고 적당히 사건을 은폐해주고 돈을 받아 챙기는 부패 경찰로 현실을 잘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나중에는 서유진에게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게 사냐고 충고하며 동정하기도 한다. 강인호와 서유진이 싸우고 있는 현실은 장경사의 입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 사람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점수, 점수, 점수, 경쟁, 경쟁, 경쟁 속에서 남을 떨어뜨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일점 때문에 친구는 낭인이 되고 자신은 판검사가 되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정신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아들 몇명 때문에 처삼촌과 대학 동창 사돈과 사위의 은사와 장인의 후배와 얼굴을 붉혀가며 그 정의라는 거, 진실이라는 거 되찾아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진정 학원 이사장과 장애아의 인권이 같을 줄 알아요?" 

혹시라도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꿀 생각이냐는 장경사의 말에 서유진은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라고 말한다. 나만 바뀌면 세상 살기가 더 편할 수 있다. 적당히 넘어가고, 타협하고, 무시하면 세상 살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불합리해서 견딜 수가 없는 세상 앞에서 내가 바뀌는 것이 견딜 수 없기에 서유진은 이를 악 물고 아픈 애들을 두고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말이다. 

법원 판결 후 함께 싸운 이들은 천막에서 농성을 하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어느 날 방문한 강인호의 아내와 아이. 아내는 친척오빠에게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며 함께 서울로 가자고 한다. 그때 농성 중인 천막이 철거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서유진의 전화를 받고 늦더라도 꼭 가겠다고 약속하고 아내에게 편지를 남긴다. 딸 새미를 위해 짓밟히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다고, 당당하고 멋있는 아빠와 남편으로 돌아가겠다고. 허나 결국 밤새 울리는 전화를 무시하고, 편지를 찢어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무진시를 떠난다. 만약 강인호가 가족들을 두고 농성장으로 달려갔다면 소설의 결말이 조금은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함께 가자며 먼 길을 달려온 가족을 두고 제자들을 택할 만큼 강인호는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는, 세상이 자신을 바꾸지 못하도록 싸우는 서유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만 하나, 하고 누군가가 물었다. 꼭 그래야만 한다, 고 그는 대답했다. 그래도, 정말, 꼭?이라고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정말, 꼭, 그래야만 한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보통사람 강인호의 고민이 잘 표현된 구절이다. 내가 강인호라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정말 꼭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보통사람 강인호과 나의 한계이다. 분노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제 생활에 안착하고 마는 보통사람. 그래서 강인호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무진을 떠나고 육개월이 지나 강인호는 서유진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아이들이 학교를 나와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얻게 된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게 된 이야기며, 아이들이 밝아졌다는 이야기, 혹시라도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는, 네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을 기억한다는.    

<도가니>의 중심은 장애아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대립과 연합의 양상이 더 크게 드러난다. 자애학원에서 학생에게 가해지는 폭행, 그것도 장애아 학생에게 비장애인 교사가 휘두르는 폭행은 일방적이고 무차별하다. 그리고 성폭행 사건을 고소한 인권센터와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 경찰, 인권센터는 나름대로 언론을 이용해 사건을 널리 알리고 그에 자극받은 경찰은 발빠르게 수사에 임하지만 가해자들에게 사건을 빠져나갈 통로도 제시해준다. 힘이 있는 자들의 죄는 법에도 호소하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해자인 교장을 둘러싼 무진시의 최고 권력들, 교회, 동창회 등 지역 유지들이 똘똘 뭉쳐 그의 무죄를 뒷받침해준다. 더러움을 둘러싼 최고 권력자들의 연대는 참 견고하다. 그들은 유리와 민수의 보호자에게서 합의서를 받아내 고소를 취하한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보여주는 게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광란의 도가니'다. 미친 세상에서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상식과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고, 나 또한 그 길에 동참한다면 광란의 도가니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도가니>를 읽고 분노하며 얻은 나름의 결론이다. 미친 세상에서 똑바른 정신으로 살자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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