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맘님의 서재에 댓글을 달다가, 문득 때와 장소에 따라 적합한 책에 대해 정리해 볼 생각이 떠올랐다.

때와 장소에 관계 없이 필이 팍 꽃힌 책을 읽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옷을 입을 때도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입으라 하는데, 책에도 분명 이런 것이 있을거라 생각된다.

* 화장실

우리집 화장실 변기 옆에는 잡지꽂이가 있다. 

바깥 화장실에는 나나 남편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보다 더 재미있고 유익하게 모은 책들을 펼쳐서 꽂아 놓는데, 몇일에 한번씩은 펼쳐진 쪽을 바꾸어 놓는다. - 예를 들면, 아빠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책이나, 노빈손 시리즈,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책들.

안방 화장실에는 남편 눈에 띄라고 '10대 자녀와 대화하는 법' 등 자녀와의 대화와 관련된 책들 중에서 주요 페이지를 펼쳐서 꽂아 놓는다. 남편의 취미 관련 서적도 그 뒷편에 꽂혀 있다.

* 자동차 안 (진우맘님 서재의 코멘트와 같음)

저도 운전중 신호대기할 때나, 갑자기 기다려야 할 때 보는 책을 찻속에 두고 다니는데, 줄거리가 길거나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질 정도의 책은 적절하지 않다. (다음 줄거리가 궁금해서 파란 불이 들어와도 책에서 눈을 못 떼거나 중간에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읽을 수 있음.)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문장이 너무 길어서 중간에 끊겼을 때 읽은 부분이 도로묵이 될 책도 좋지 않다.

'한국의 미 특강', '오역을 하지 않기 위한 영어 번역사전' 메모의 기술' 등 실용서나 짧은 지식을 전달하는 책들이 적당한 것 같다. 평소에는 신호에 자주 걸리거나 여러 번 신호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길이 막히면 신경질 날 때가 있는데, 책을 두고 다니면 '야~ 길막힌다!' 하고 마음이 느긋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

* 병원(직장)

진료실 책상에는 메모지에 금년 들어서 독서에 균형을 잡자고 결심을 하면서 부족하다 생각한 분야의 리스트가 있다.

1) 의학 서적 
2) 영문 뉴스 기사, 영문 책,
3) 그때그때 대두되는 주요 이슈와 관련된 책  
4)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에 관한 상세 정보 찾기
5) 필요한 정보나 기사는 한글/영어로 번역하기

진료실에는 곧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골라놓은 책 17권이 창가의 독서대에 쌓여 있다. 이 17권 외에 작년 12월에 정기구독 신청을 해놓고 한권도 제대로 보지 못한 '행복이 가득한 집' 5권이 차곡차곡 쌓여 나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건 집의 침대맡에다 가져다 두어야겠다.)

작업실 한쪽 책상에는 기계톱과 나란히 제약회사나 학회에서 받은 자료집, 그리고 여러 NGO들의 회지들이 쌓여 있다. 이것들은 내가 틈이 날 때 읽고 버리던지 보관되던지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심한 경우 거의 1년 가까이 대기중인 것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 가방

가방에는 내가 '현재 읽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지고 다닌다. 스터디 자료로 프린트한 글들도 있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들도 있다. 물론 만화책도 간혹 있다. 이들 중에서 주위 환경이나 내 기분에 따라 고를 수 있게 항상 서너권은 가지고 다닌다. 

* 응접실

보통은 가지고 다니는 가방의 책들을 꺼내 읽는다. 아주 가끔은 식탁에 아이들 모아서 공부 시키고 나도 같이 책을 읽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기 전에는 대개 집중 시간이 길지 못하다.

아이들이 잔 후에는 조금 조용한 '나만의' 시간이 드디어 생긴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주위가 조용하면 금방 졸음이 오는 현상이 벌어진다. 엊저녁도 남편에게 머리가 굳어지는 것 같다고 투덜투덜 댔다. 눈은 분명히 글을 읽고 있는데, 머리에서 연산이 안되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보다 다섯살이나 젊으면서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핀잔인지 위로인지를 해주었다.

마흔이 넘으면 새로운 것을 익히기 어려워 진다던데...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 침대 옆

침대 바로 옆에 전등을 올려놓고, 책을 꽂을 수 있는 작은 잡지꽂이가 있다. 침대에서 책을 읽을 때는 주로 마음이 푸근해지는 내용의 책을 선호한다. 시골 마을이나 자연, 문화유산에 대한 화보집이나 미술 화보집도 좋고, 평전이나 자서전 계통도 좋고, 종교나 철학적 내용의 가벼운 명상집도 괜찮다. 취미인 목공에 관한 책도 몇 권 가져다 두었다.

혹시 잠을 자고싶은데 잠이 안올 경우를 위한 책도 필요하다. 그런 경우 필요한 것이 들뢰즈 등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의 책이나 의학 저널집이다! 5분도 안되어 졸음이 오기 시작하니, 수면제보다도 효과 직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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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4-04-1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대 옆에 책을 두고 읽을 수 있는 가을산 님이 몹시 부럽습니다. 책 읽다가 스르륵 잠 드는 모습이 좋아보였는데 저희 신랑은 스탠드 불빛에도 잠을 못잔다고 질색을 한답니다. 게다가 잠드는 순간까지 티비는 켜 두는 최악의 경우지요. ^^

마립간 2004-04-1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을 갖기 전까지는 한권의 책을 읽은 다음 다른 책을 읽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권의 책을 집으로 직장으로 책을 가져고 다니기가 귀찮아져 여러권을 동시 다발적으로 읽어 있습니자. 잠자는 곳 1권, 거실 1권, 화장실용 1권, 양복 주머니 1권, 직장 책상 1권, 가방속 1권 이렇게 읽으니까 한 권 읽는데 몇달 걸리기도......

가을산 2004-04-14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emuko님/ ㅋㅋ 사람은 적응시키기 나름입니다! 남편도 종종 자기 옆 전등을 켜놓고 자기 때문에 불평이 없지만, 간혹 전등을 침대 옆의 바닥에 내려놓고 읽기도 합니다. 아니면... 제가 응접실 소파로 나가든지요.
nemuko님은 TV켜기와 전등 켜기를 상호 인정하는 조약을 맺으시면 젤 좋겠네요.
마립간님/ 장소별로 책을 준비하는게 저와 같네요.

waho 2004-04-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때와 장소에 따라 틈틈이 책을 읽는다니 정말 멋지네요. 전 책을 이 책 저 책 읽질 못하지만( 한 번 잡으면 재미 없어도 끝을 봐야 하거든요) 울 남편은 화장실 갈 때 자기 전 직장에서 가가 다른 책을 읽더군요. 화잘실에선 가벼운 책, 직장에선 짧은 단편, 자기전엔 뭐 여러 종류...책은 습관이 중요한 듯..

가을산 2004-04-1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다기보다는 그냥 옆에 둔다는것에 의의를 둡니다. --;;
실재 독서량은 많지 않아요. 단지 읽을 거리가 옆에 없을때 불편할 뿐이죠.

마태우스 2004-04-15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둘러싸여 사시는군요! 들뢰즈 책은 정말 좋은 수면제죠. 왜 그렇게 심오한 것인지...

ceylontea 2004-04-1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자요.. 읽던 안읽던 책은 꼭 갖고 다녀야 직성이 풀린다는...
특히 책이 얼만 안남으면.. 다음에 읽을 책까지 갖고 다니게 되죠...
가방 살때..항상 고민하는 것은.. 책이 적어도 한권은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예쁜 핸드백 하나 없게 되더군요.

치유 2004-05-1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쁘게 사실것 같은 예감..
그런데 너무 책속에 묻히시면...얼굴 노랗게 뜨는데...ㅋㅋㅋ
저희집도 여기 저기 책을 분산 시켜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다 보고 어쩌다 한번 볼것 같은 책만 서재에 틀어 박혀 있답니다..그것들은 불쌍한책..아님 행복한책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