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여기 아로새겨진 교훈은 여자의 인생에서 남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이 교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것과 여자들을  버리고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탈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둘 중 무엇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여자들. 더군다나 어머니는.어머니의 유난스런 자기도취로부터  벗어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건만, 세월이 쌓이면서 나의 다혈질적이고 심각한 성격이  실은 애정에 굶주린 어머니의 호들갑과 다를 바없음을 알았다. 더 나아가, 우리 모녀에게 자기 극화는 행동의 대체물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내 안에도 안톤 체호프적 인 우유부단함이 춤추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처럼 되었으므로 어머니를 떠날 수  없었음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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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든 소설가든 회고록 작가든 자신에게 어떤 지혜가 있다는 확신을 독자에게  심어주어야 하며, 이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정직하게 쓴다. 자전적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여기에 더해 서술자의 신뢰성까지  독자에게 납득시켜야 한다.-19쪽
이 조지 오웰은 경험과 관점, 그리고 지면 가득 풍기는 개성이 성공리에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의 존재감이 워낙 강하다 보니 우리는 서술자를 아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듯 우리가  서술자를 알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서술자의 능력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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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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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입한 시립도서관에서 11월부터 회원에게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무제한 다운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예산 소진시까지라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이게 왠 떡이냐.
소설을 잘 읽지 않으므로 아는 작가가 많지 않은데 전자도서관 상단에 떠 있길레 다운받았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나무의 일생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무의 수령은 대체로 길기 때문에 나무는 몇 백년에 걸쳐 주변의 변화를 묵묵히 보아 넘긴다. 마을이 생겼다 없어지거나 사람들이 늙어서 죽는 것을 보고, 전쟁도 겪고.
내가 사는 동네도 원 마을이 없어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인데 군데군데 공원에 당산나무들이 있다. 그 나무들을 볼 때마다 그 책 생각이 났고 저 나무들도 마을이 생기고 사라지고 애들이 태어나고 노인들이 죽는 것을 다 봤겠구나 생각했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도 그런 생각을 했었나 보다. 나 같은 사람은 생각만 하는데 소설가는 그걸 소설로 풀어내는구나.
4대에 걸쳐 내가 선택한 적이 없는 운명을 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냥 감수하거나, 증오하거나, 이유를 찾는다.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것 같지만 각자의 상황은 다르다.
인간의 삶이 그렇다. 각자 감당할 몫이 있고, 사는 방식도 다르다. 작가는 환멸과 절망이 가득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는 것 같다. 수퍼맨처럼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도 네 옆의, 네가 구할 수 있는 한 사람, 단 한 사람은 있다고. 그게 중요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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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 심지어 일년만에 없어진 나라도 있다. 우체국도 없는데 우표를 발행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땅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열강들의 땅 따먹기에 희생되는 작은 나라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우울해진다.

또 하나는 우표 수집입니다. 오래된 우표라고 다 모으지는 않습니다. 제 목표는 1840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우표‘페니 블랙‘이 발행된 이래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국가와 정권에서 발행된 우표를 하나씩 다 모으는 것입니다. 저는 사용하지 않은 새 우표에는 별흥미가 없습니다. 손을 많이 틴 우표, 세월이 묻어나는 우표일수록제겐 귀중합니다. 저는 이따금씩 우표들을 꺼내, 냄새를 맡아보고 어루만져봅니다. 핥아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퍽퍽해진 고무풀, 전분, 아교의 맛이 납니다. 어떤 경우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저보다먼저 누군가가 핥으면서 남긴 듯한 맛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래전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먼저 느꼈던 인상들이 스쳐가고, 저도 함께 그 느낌에 젖어봅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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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과 달리 편두통은 무작위로 찾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어떤 패턴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시끌벅적한 사건들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평범한 좌절과 연결된 패턴......"집이 홀랑 타버리고 남편이 나를 떠났다고 해서,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고 해서 두통이 생기지는 않는다. 대신, 나의 삶과 남몰래 게릴라전을 벌일 때 두통이 찾아온다. 집안의 작은 혼란들, 세탁물 분실, 마뜩잖은 도움, 약속 취소가 잇따르는 몇 주 동안, 전화벨이 너무 많이 울리고 되는 일을 하나도 없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날에. 초대하지도 않은 친구가 불쑥 찾아오는 날에."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편두통은 곧 진통제가 된다. 그렇다, 편두통 자체는 지독히 무서운 진통제다. 하지만 서술자는 위안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한 고통을 유도하여 또 다른 고통, 즉 평범한 일상의 고통을 제거한다. -49쪽








만약 어떤 느낌이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다면, 감정표현이 금지되거나 성욕이 억제된다면, 유일한 대안은 긴장을 끌어올려 가두어버리는 것뿐이다. 이 과정은 다치기 쉬운 자아 주위에 신체적 방패를 만들어내어, 즐거움에 둔감해지는 대신 고통에 대한 방어력을 준다. -51쪽







흥미롭게도, 중국의 신경쇠약 환자와 미국의 만성통증 환자는 서로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은 병이 잘 낫지도 않거니와 의료진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문제적 환자로 취급당한다. 침술과 전통 약초는 물론 현대 의약품 모두 신경쇠약에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어쩌면 모든 의료 시스템이 치료하기 힘든 만성질환의 한 부분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26쪽


우연히 연달아 읽게 된 책들이 같거나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감정이 신체적 결과를 낳는가?'

비비언 고닉이 인용한 조앤 디디온의 에세이나 올리비아 랭의 글, 원인모를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를 추적관찰한 아서 클라인먼의 글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심인성, 신경쇠약, 스트레스 같은 증상이나 질환이다.

가까이에서는 엄마가, 일터에서는 생활노인이 그런 특징을 보인다.

엄마는 예민하고 완벽한 성격때문에 늘 위장병을 달고 살았는데, 스트레스의 원인이 해결되고 나자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도 증상이 사라졌다.

내가 모시고 있는 어르신 한 분은 뭔가 못마땅하면 혈압이 오르는데 언짢은 기분만으로 최대혈압을 190까지 올릴 수 있다. 그것도 단번에.

그 어르신을 보면서 며느리가 못마땅하면 머리에 흰 띠 두르고 드러눕는 드라마의 시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의 죄책감을 유발하여 자기 뜻을 관찰시키려는 의도.


이 책들을 읽으면서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팽만할 때 차라리 신체의 고통을 선택함으로서 마음의 불안, 분노, 좌절을 잊어버리고자 하는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신체의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에 집중하느라 감정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갑작스런 편두통이나 치솟는 혈압,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꾀병이 아닌가 의심받고, 질병을 치료하려는 의료진을 좌절시킨다.


해결방법이 있을까?

뻔한 이야기지만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할 것 같다.

그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해소되지 않는 불안이나 분노를 가진 나를 이해하고 책망하지 않는 것.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게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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