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각과 달리 편두통은 무작위로 찾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어떤 패턴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시끌벅적한 사건들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평범한 좌절과 연결된 패턴......"집이 홀랑 타버리고 남편이 나를 떠났다고 해서,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고 해서 두통이 생기지는 않는다. 대신, 나의 삶과 남몰래 게릴라전을 벌일 때 두통이 찾아온다. 집안의 작은 혼란들, 세탁물 분실, 마뜩잖은 도움, 약속 취소가 잇따르는 몇 주 동안, 전화벨이 너무 많이 울리고 되는 일을 하나도 없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날에. 초대하지도 않은 친구가 불쑥 찾아오는 날에."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편두통은 곧 진통제가 된다. 그렇다, 편두통 자체는 지독히 무서운 진통제다. 하지만 서술자는 위안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한 고통을 유도하여 또 다른 고통, 즉 평범한 일상의 고통을 제거한다. -49쪽
만약 어떤 느낌이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다면, 감정표현이 금지되거나 성욕이 억제된다면, 유일한 대안은 긴장을 끌어올려 가두어버리는 것뿐이다. 이 과정은 다치기 쉬운 자아 주위에 신체적 방패를 만들어내어, 즐거움에 둔감해지는 대신 고통에 대한 방어력을 준다. -51쪽
흥미롭게도, 중국의 신경쇠약 환자와 미국의 만성통증 환자는 서로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은 병이 잘 낫지도 않거니와 의료진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문제적 환자로 취급당한다. 침술과 전통 약초는 물론 현대 의약품 모두 신경쇠약에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어쩌면 모든 의료 시스템이 치료하기 힘든 만성질환의 한 부분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26쪽
우연히 연달아 읽게 된 책들이 같거나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감정이 신체적 결과를 낳는가?'
비비언 고닉이 인용한 조앤 디디온의 에세이나 올리비아 랭의 글, 원인모를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를 추적관찰한 아서 클라인먼의 글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심인성, 신경쇠약, 스트레스 같은 증상이나 질환이다.
가까이에서는 엄마가, 일터에서는 생활노인이 그런 특징을 보인다.
엄마는 예민하고 완벽한 성격때문에 늘 위장병을 달고 살았는데, 스트레스의 원인이 해결되고 나자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도 증상이 사라졌다.
내가 모시고 있는 어르신 한 분은 뭔가 못마땅하면 혈압이 오르는데 언짢은 기분만으로 최대혈압을 190까지 올릴 수 있다. 그것도 단번에.
그 어르신을 보면서 며느리가 못마땅하면 머리에 흰 띠 두르고 드러눕는 드라마의 시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의 죄책감을 유발하여 자기 뜻을 관찰시키려는 의도.
이 책들을 읽으면서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팽만할 때 차라리 신체의 고통을 선택함으로서 마음의 불안, 분노, 좌절을 잊어버리고자 하는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신체의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에 집중하느라 감정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갑작스런 편두통이나 치솟는 혈압,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꾀병이 아닌가 의심받고, 질병을 치료하려는 의료진을 좌절시킨다.
해결방법이 있을까?
뻔한 이야기지만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할 것 같다.
그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해소되지 않는 불안이나 분노를 가진 나를 이해하고 책망하지 않는 것.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게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