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자에 어질러 놓은 옷을 며칠 째 치우지 않는 큰 딸에게 나름 무안하지 않도록 하면서 치우게 하려고 장난치듯 행동했다.
장난을 받아치는 유쾌한 반응을 기대한 내게 돌아온 건 거친 말과 행동.
평소에도 감정이 극과 극을 오가는 편이긴 하나 너무 제 감정에만 충실한 딸의 태도에 화가 나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니 얼마전 남편과 감정싸움에 만신창이가 된 마음상처가 다시 터진 듯 급 우울해져 버리고 말았다.
일주일 중 5일은 직장에서, 2일은 집에서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것도 화가 나고,
온 식구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서비스를 받으려고만 하는 것에도 화가 난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 싫어서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을 다섯가지로 정리한 다음 저녁시간에 발표했다.
내가 정리한 내용을 읽어주고, 그 글을 적게 된 동기(큰 딸과 있었던 일)를 이야기했다.
가족들은 그 글을 꼼꼼하게 읽었다...... 읽어주기만 했다. ㅠㅠ
가족 중 가장 배려심이 많은 작은 딸만 엄마를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마음상함이나 우울증 같은 상태는 며칠, 몇 주, 몇 달 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잦은데, 강도에 변화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상함 같은 정서적 상태를 이해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와 결부된 감정들을 찾아내어 본인이 그것을 확실하게 체험하고 표현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 75쪽
내가 가족들에게 화가 날 때는 무슨 일에 내 탓을 하거나 무시하는 반응을 보일 때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내 탓을 하며 비난할 때 반응이 격렬해지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나의 이런 반응은 비난 받는 그 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 앓고 있는 상처는 대개 이전의 상처받은 경험, 자존감을 건드린 경험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지요.
말하자면 이런 기억들을 미해결 과제가 되어,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겁니다.
무의식 안에서 '상처난 부위'로 있다가, 비난이나 퇴짜를 맞든지 버림받거나 무시를 당하면 미처 해결되지 않은
옛날의 상처가 되살아나면서 마음상함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 83쪽
이전의 어느 때, 아주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가 건강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무의식으로 가라앉아 있다가 그와 비슷한 자극을 받으면 다시 살아나 분노나 좌절을 겪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과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사과를 씹어 맛 보고 삼키게 되면 위 속에서 사과가 소화되면서 우리 몸에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필요없는 것은 배출한다.
사과를 씹지 않고 그냥 삼킨다면 사과는 제대로 소화되지 않아 몸의 일부가 되지 못한채 이물질이 되어 자극받을 때마다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체험'이 소화되지 않은 사과처럼 내 몸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다는 건데.
도대체 내 기억 어디쯤에 비난 받고 무시당한 경험이 숨어있기에 이토록 질기게 나를 괴롭힌단 말인가.
그 시작점을 찾지 못하면 난 계속 이런 감정 소용돌이에 빠져서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책을 해야 하나?
이상적인 경우라면,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심하게 마음을 다쳤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가장 의미있는 일이며
실현가능하고 자존감을 강화시켜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겁니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남들을 상처내는 대신에 말입니다. - 127쪽
내가 내 감정을 들여다보며 생각한 것은 나의 이런 마음을 가족들에게 알려야겠다는 것이었다.
매주 혼자서 집안일을 다 해야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자기 방이라고 매일 엉망으로 어질러만 놓는 딸들에게도 자율만큼 책임감을 주어야했다.
그리고 큰딸 때문에 화가 났다고 해서 그 감정을 직접적인 원인제공자가 아닌 다른 가족들에게 투사하는 것도 옳지 못하기 때문에 내 기분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었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상했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못한 채 방치되었는지를 깨닫고
표현할 수 있다면, 이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일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동시에, 남들이 그를 이해하기도 쉬워집니다.
솔직하고 분명하게 자기 표현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게 되지요. - 232쪽
그리하여 저녁식사 시간에 나의 기분과 함께 가족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일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반응은 우호적이었으나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 가족 누구도 눈에 띄는 행동변화는 없다.
뭐 큰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단 내 기분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만도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큰 딸과는 늘 같은 패턴으로 문제가 불거지는 편이라서 이제부턴 돌려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요구할 생각이다.
'따귀 맞은 영혼'은 사놓은지 오래되었고, 몇 번 읽기를 시도하다 실패했던 책인데 큰딸 덕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다 내 탓이 아니며, 내 탓이라 하더라도 내가 얻고자 하는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한다면 늘 빠지는 우울감, 분노, 좌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
곁에 두고 감정의 늪에 빠질 때마다 들여다 볼만한 책이다.
번역이 매끄러워 마치 국내 저자의 글을 읽는 것 같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은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요약해 주었고, 그 자체로도 '따귀 맞은 영혼'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을만한 좋은 글이다.
아래의 글은 따로 적어놓고 늘 마음에 새길란다. 읽을수록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 자신이나 남, 그리고 세상에 대해 우리가 적당한 정도로만 기대한다면, 다시 말해 잠재적으로 실현가능한 만큼만
이상화한다면, 이 기대는 우리에게 만족감과 긍정적인 자존감을 주는 한편, 불필요하게 마음상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할 겁니다. - 259쪽
무언가를 남에게 줄 자세가 내면적으로 갖추어져 있을 때에야 바로 그것을 남들에게 받을 수 있습니다. - 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