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책을 읽고 나서 매일 시를 한 편씩 낭독해보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생각은 생각으로 그쳐 몇 권 안 되는 시집들은 책장안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며 낡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좋아하는 시에 자기 감상을 보탠 이런 책에 관심이 많다.

'올드걸의 시집'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시에 관심도 없고 잘 읽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경험에 얹혀 시를 이해해보려는 얄팍한 꼼수는 집어쳐야 한다고.

시를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온전히 읽은 자의 것이고, 뭔가를 느끼고 싶다면 스스로 읽어야 한다.

그걸 더 확실히 깨닫도록 끝까지 읽어야겠다.

 

박경원의 '지금, 이 시대'를 읽고서 '아무것도 아닌 것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을 알아갈수록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겸허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이들어 신을 받아들였는지, 부모의 신앙에 따라 습관처럼 신앙생활하다가 새삼 깨달았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 그때까지 그렇게 큰 의미의 덩어리로 존재하던 내가,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 -86쪽

 

나이 들어 스스로 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신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교회가 강요하는 바로 그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해라' 때문에 신과도 멀어져 버렸다.

하찮아져야 신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인가.

신은 정말 그걸 원할까?

글쓴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하며 읽어가다 이렇게 쓴 대목에 이르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찮고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너무 고귀하고 무한해서 나 자신조차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86쪽

 

음?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신을 바닥까지 내려놓은 게 아니라 하느님과 동급으로 생각한거야?

아니, 처음에 언급한 글을 다시 보니 하느님보다는 조금 더 아래인가?

하느님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선언했으니까.

내가 신에게 엎어졌던 이유는 신이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줬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의 너, 부족하고 초라하다고 느끼는, 늘 투덜대고 징징대는 너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글쓴이와 같은 생각이다.

하찮고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너무 고귀하고 무한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아아-

그러니 나는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한다.

게으르게 시 읽어주는 사람의 생각과 감상에 얹혀가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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