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까지 대학에 보내고 나니 아침이 여유롭다.

깨우고, 식사 챙기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던 일들이 끝나고 난 후 처음에는 뭔가 해야하는데 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불안했는데, 이젠 식탁에서 여유롭게 신문 읽으며 차 한 잔 하고 출근한다.

대학 입시와 관련된 내용은 귓등을 스칠 뿐이다.

비어 있는 작은 애 방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가 치워놓았던 그대로 깨끗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라던 것 중 하나는 퇴근해서 문을 열었을 때 아침과 같은 모습이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침에 치워놓고 나가도 저녁에 돌아오면 엉망인 집안 모습에 더 지칠 때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램지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느낌 아니까~)

 

이제부터 그녀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혼자 있을 때 그녀는 진정한 자기 자신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가 종종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 생각에 잠기는 것, 심지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조용히 있고 혼자 있는 것 말이다. - 92쪽,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문예출판사)

 

내 주변에 일하는 엄마들의 공통된 바람은 좀 심심해 봤으면 좋겠다는 거다.

직장 일에, 집안 일에 치이다 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

그 자유가 종종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넘치는 집안 일을 관리하고 어려운 이웃까지 챙기느라 자기 건강을 돌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등대로'에는 그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존재의 순간들'을 읽으면서 '등대로'를 읽는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문만 더 생겼다.

그 시대나 문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인가.

 

그 이후에 더 이해 못할 여인을 만났다.

'좁은 문'의 알리사.

다 읽은 후 뭔가 감상을 남기고 싶었지만 알리사를 이해할 수 없어서 남길 것도 없었다.

다만 역자의 작품해설을 읽으며 그 당시 부정적인 비평가들의 의견에 동감한다는 것 정도?

 

알리사는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있고, 개신교를 잘 못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파멸로 몰고 가는 시대착오적 인물이다. 덕행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과도한 신비주의의 추구로 인해 고독과 절망속에서 죽어가는 그녀는 신기루 같은 천상의 행복을 위해 소박한 지상의 행복을 저버린 광신자인 것이다. - 작품해설 중에서(앙드레지드, 좁은 문, 펭귄클래식코리아)

 

어쩜 이렇게 저렇게 살고 싶다 라는 생각보다 이렇게 또는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강해서였는지도......

이유를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을 다른 누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일을 할 때 꼭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다니 어리석지 않은가 말이다. 그보다는 리처드처럼 일 자체를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17쪽(댈러웨이부인, 버지니아 울프, 열린책들)

 

그런데 댈러웨이 부인을 보면 그 이유를 살짝 알 것도 같다.

실은 댈러웨이 부인을 빙자한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겠지만.

 

그런데 그녀가 하는 일의 태반은 일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렇게 혹은 저렇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바보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무도 단 한순간도 속지 않을 것이다. 오,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인도로 올라서면서 생각했다.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면! - 17쪽(댈러웨이부인, 버지니아 울프, 열린책들)

 

버지니아 울프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 그럴거라 생각하는 내 생각일까?

너무 많은 의무에 사로잡혀 살다 보면 그 일이 나를 갉아 먹고 있는 줄도 모른다.

자녀들을 다 키운 중년 여성이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것은 갑자기 늘어난 자유에 적응하는 시간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다음 생에 가능하다면 왜 이번 생에서 다르게 살 수 없다는 건가.

늘 앉던 자리에서 살짝 옮겨 앉아봐도 보이는 게 달라지는데.

적어도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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