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의 첫 1부를 읽는데 여러 날이 걸렸다.
읽어가면서 든 생각은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계속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 옮긴이는 기자생활을 20년하고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활동한다고 했다. 그런데 읽기가 너무 힘들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글.
"우리는 가끔 무례한 야만성과 신선한 공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무례한 야만성'이란게 도대체 뭔가. 그것 말고도 문맥을 다듬기위해 의역하거나 덧붙임, 생략 등이 전혀 없이 원문을 그대로 번역했나 싶게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거기다 역주를 문장 안에 괄호로 집어넣어 놓은 바람에 끊어진 문장을 찾아 읽는 것도 힘들었다. 글자 크기라도 줄여 놓았다면 구분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몇 번을 포기할까 하다가 참고 다 읽었던 것은 꼭 읽고 싶어서 산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자기만의 방'을 읽을 때에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포기하려고 했던 경험이 있어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울프의 글이 조금 난해하고 문장이 긴 것은 아닐까. 어떤 글은 한 문장이 여섯 줄이나 되는 것으로 보아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꾹 참고 읽은 보람이 있어 2부 부터는 마치 다른 글을 읽는 것처럼 술술 읽혔다. 어쩌면 한 번역자의 글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 글은 울프의 회고록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 전혀 놀랍지 않을 만큼 고통과 슬픔이 많았다. 둘 다 재혼이었던 울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한 명, 세 명의 자녀가 있었고 둘 사이에서 네 명이 더 태어났다. 열 세 살 되던 때에 어머니가 죽은 후, 엄마를 대신했던 큰 언니(아버지가 다른)까지 2년 후에 아파서 죽은 후 많은 충격과 고통을 겪는다. 아내와 딸을 잃은 아버지를 묘사하는 부분은 매우 신랄했는데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리하여 어머니는 아버지의 의존성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 뒤에 이것이 아주 힘든 책임이 되었다. 만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존재로 우리에게 남겼다면, 우리의 관계는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197쪽
마치 우리 시부모님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을 관리하던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시아버지는 젖 떨어진 어린애처럼 응석받이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아버지의 단점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보이자 솔직히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혼란스러웠었다.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솔직히 견디기 힘든 때도 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구(舊)시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인 시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여자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에 갈 수 없는 것은 '자기만의 방'에서 이야기 했던 부분이지만, 여기에서도 주체적이지 못하고 남자의 부속품, 장식품 역할 밖에 하지 못하게 했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생각에 충실하게 따랐던 큰 오빠(아버지가 다른) 조지에 대한 회상은 참 '화끈하다'.
글을 읽어보면 상당히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인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한가보다.
여하튼 거울을 쳐다보는 데 대한 수치심은 말괄량이 단계가 끝난 뒤에도 나의 인생 내내 이어졌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코에 분조차도 바르지 못한다. 옷과 관련 있는 모든 행위들, 이를테면 치수를 맞춘다든가 새 옷을 입고 어떤 방에 들어가는 일은 지금도 나를 소스라치게 만든다. -78쪽
이런 부분.
나도 평소에 거울을 잘 들여다보지 않고, 특히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화장을 고치지 못한다. 밥 먹은 자리에서 바로 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는 여자들을 보면 부담스럽다. 옷도 잘 사 입지 않는데 옷을 사려면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거울에 비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울프는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거울에 얽힌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일까? 내 얼굴인데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어색하다.
나는 예전 기억, 특히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분터 꾸준히 썼던 일기는 결혼 후에 다 태워버렸다. 솔직히 있었다고 해도 들춰가며 기억하고 싶은 추억도 별로 없긴 하다. 울프는 어떤 충격으로 인한 기억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고통을 지워버린다고 하는데 기억력도 별로인데다 글재주까지 없는 내가 매번 같은 일로 괴롭고 슬픈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겠다.
첫 순간에 한 번 놀라고 나면 그 즉시로 나는 언제나 그 기억들이 특별히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나를 작가로 만든 바로 그 요소라고 짐작한다. 나의 경우에는 충격에 뒤이어 그것을 설명하려는 욕구가 일어나는게 아닌가 싶다...... 나는 그것을 단어로 표현함으로써 현실로 만든다. 내가 그것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그것을 단어로 표현함으로써만 가능하며, 완전하다는 것은 곧 그것이 나를 해칠 힘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86쪽
'존재의 순간들'을 먼저 읽었다면 '자기만의 방'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울프가 마흔 살 넘어서까지 벗어나지 못했던 죽은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로 '등대로'의 집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책도 읽어 보고 싶다.
연이어 계속되는 가족의 죽음은 회고록을 포함하여 많은 글로 표현해도 그의 고통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없었나보다. 주머니에 돌을 집어넣고 강으로 걸어 들어갈 때의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