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상태 가설이라는 테제에 맞서는 나의 반테제는 자력으로 지탱될 수 있는 몸은 없다는 것이다-69쪽

 

어른이 되기 전에는 스스로가 의존적이라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만 어른이 되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면 도움은 필요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그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신체나 정신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누구나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내가 필요로 하는 많은 것들은 내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들이다.

 

사실 혼자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행하기 위해, 음식을 먹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지지기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다. 인간의 이 모든 기본적 기능은 저마다 모종의 지지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60쪽

 

오로지 도움만 받아야하는 사람도, 도움만 주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상호의존 관계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용납해야 한다. 지킬 가치가 있는 생명과 그렇지 않은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보호 대상이 되느냐 방치 대상이 되느냐를 인구군에 따라 차별하는 식의 일반화된 불평등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생명들의 불평등한 애도가치를 정함으로써 생명들의 불평등한 가치를 정하는 식의 권력을 발견하게 된다. -31쪽

 

자기 보존의 '자기'를 정의하는 속성중 하나가 바로 그 연결관계, 그 불가피하고 난감한 사회적 유대관계다. 자기보호가 폭력을 행사할 이유가 되어야 한다면, 다시 말해 자기보호가 비폭력 원칙의 예외로 인정되어야 한다면, 그렇게 자기를 보호하는 '자기'는 어떤 존재일까? 그렇게 자기 자신의 권력에 속한 존재들만을 보호하는 '자기'는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강화해주는 것들에게만 속해 있는 만큼, 이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193쪽

 

21세기 세상에서 전쟁을 목도하고 있는 이 때 '비폭력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타적인 것이 이기적인 것이다. 3년째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우리는 파괴할 수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왜 우리가 파괴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 우리의 파괴수행 능력을 억제시키는 대항력을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비폭력이라는 윤리적 의무에 묶여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192쪽

 

이 대목에서 프로이트는 유기체가 필연적으로 평화주의자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럴 수 있는 유기체는 ‘문화적 성장‘을 통해 전쟁에 대한 증오와 전쟁이 감당 불가능하다는 감각을 키운 유기체뿐이다. 요컨대 전쟁의 감각이 더 이상 짜릿한 쾌감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유기체는 교육받은 유기체 뿐이다...... 한편으로, (죽음충동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 우리의 유기체적 생명중 적어도 일부는 우리가 파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 우리를 평화주의자로 만드는 것은 유기체적 생명이다. - P228

여성살해 희생자의 죽음 하나하나가 개인의 죽음이고 끔찍한 죽음인 것은 물론이지만, 그 모든 죽음이 여성의 애도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구조의 일부인 것 또한 사실이다. 모든 폭력 행위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가 있으며, 각 폭력행위는 그 사회구조의 재연(표면화,재생산)이다. 죽임당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죽임당하고 있다. 단 한 명도 더 잃을 수 없다. Ni Uma Menos.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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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과 함께 한 책이다.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버겁고, 의미를 못 찾겠고, 일단 이렇게 사는 삶이 너무 행복하지 않아서 우울했다. 그래서 새해 첫날에 집어들었다.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에 관한 모든 것'

책의 두께와 제목을 본 남편이 항상 머리 복잡한 사람이 왜 그렇게 머리 아픈 책을 읽냐 하기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나 할까 했더니 비웃으면서 가벼운 소설 같은 걸 읽어라, 조언을 했다. 원래 말을 잘 안 듣지만 내용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언을 받아들여 나름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변신이야기」를 집어들었다. 신화니까 가볍게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신들의 횡포, 너무도 쉬운 살인, 스토킹, 강간 등등이 이어지는 글을 읽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쌓여 집어 던지고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우울할 때가 많다.

일이 생각같이 풀리지 않을 때나,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몰려올 때, 삶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절망감이 밀려들 때 우울하다. 그런 기분이 오래가거나 삶을 이어가기 어렵게 되지 않는 한 우울함을 병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우울증이란 나약함의 표시라고, 노력하면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감기'같은 거라고 가볍게 취급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흔히 한밤중이나 자명종이 울리기 전의 이른 아침에) 불가해한 절망의 순간들을 체험한다. 그런 감정이 10분 정도 지속된다면 그건 일시적인 묘한 기분이다. 그러나 열시간 지속되면 성가신 발열이며, 10년 지속되면 커다란 타격을 주는 병이다. -37쪽

 

우울증은 병이다. 필요하면 약을 먹고, 심리치료도 받으면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하는.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사실대로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다. 저자가 우울증 환자이기 때문에 증상이 너무 실감나고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만사가 견딜 수 없이 힘겨워져서 전화 수화기를 드는게 200킬로그램 무게의 역기를 드는 것 같았다. 양말을 한 짝이 아니라 두 짝 신어야 하고 게다가 신발도 두 짝 신어야 한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도로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131쪽

 

얼마나 적나라한지. 침대에서 발을 빼서 바닥에 내리는 것조차 엄청난 힘과 용기를 들여야 한다는 이 병은 원인을 안다해서 쉽게 치료할 수 없다. 자신의 우울증 패턴을 파악해서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우울해진다.

남편의 타박이 있었지만 이 책은 우울증에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다. 업무상 노인 우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성별이나 연령에 따른 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설명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질병이다 보니 치료법이나 약물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좀 어렵기도 하다. 그런 부분은 대충 넘겨가며 읽었다.

 

저자는 우울이 꼭 고통인 것만은 아니라고 하며 강조하여 조언한다.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말고 꼭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라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누구에게라도 꼭 말 하라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어서 그가 혼자가 아님을, 같이 이겨낼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우울증을 겪은 뒤 안정을 되찾은 사람들은 일상의 즐거움에 대한 감수성이 강한 경향이 있다. 그들은 삶의 긍정적인 면들이 지닌 진가를 절실히 느끼고 그것들에 대해 쉽게 희열에 젖는다. 원래 너그러운 인물이었다면 우울증을 겪은 후에는 더욱 관대해진다. -639쪽

 

스스로 알든 모르든, 우울증의 요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대개는 평생동안 누적된 것들이다. 이 세상에 절망할 일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이들은 벼랑 끝까지 가고 어떤 이들은 벼랑 끝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서 이따금 슬픔만을 느낀다. - P75

우울증은 친구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우울증 환자는 친구들에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상식을 벗어난 요구들을 하게 되며 그런 요구들을 들어줄 의향이나 융통성, 우울증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 P106

우울증으로 부터 비교적 자유로은 인생을 누리려면 신중하고 지각 있는 태도로 약물치료에 임하면서 안정감과 통찰력을 주는 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 P138

우리 사회에는 노인의 자살을 젊은이의 자살보다 덜 동정하는 유감스러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를 정도의 절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처절한 것이다. - P384

더욱이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죽음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청년들은 다른 체험을 위해 삶에서 도피하는 자살을 하지만 노인들은 죽음을 최후의 상태로 본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보다 자살에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적다. 노인들은 치명적인 자살방법을 택하며 사전에 자신의 의도를 알리는 일도 드물다. - P384

점점 자신의 감정들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대인에게 혈액검사나 뇌촬영을 통해 우울증 여부와 어떤 종류의 우울증인지를 밝혀낼 수 있다는 생각은 위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정서로 통제력 안으로 들어왔다 벗어났다 하는 것이며,우울증이라는 병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어떤 것이 도를 지나친 것이지 외부의 것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 - P587

이런식으로 선택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편리하다기보다는 현기증이 나는 일이다.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사고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사회는 집단적 불안감을 낳게 되며 내가 보기에는 바로 그런 이유로 산업화사회에 우울증이 많아진 것이다. - P602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듯 그것에서 언제,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우울증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 P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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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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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먹을 데가 있어야 책을 읽는 지인이 내가 읽는 책을 보며 왜 그 책을 읽느냐, 내용이 뭐냐 묻는다. 대체적으로 그가 원하는 답을 못할 때가 많은데 나는 책을 꼭 필요에 의해, 당장 써먹기 위해 읽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유를 굳이 말한다면 생각을 넓히고 싶어서라 해야하나. 삶이 피폐해질수록 나란 존재의 의미,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는 이유로 읽는 것 같다. 활자중독인것도 같고.
내가 확실히 답하지 못한 독서의 의미를 정희진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듯 하다.

모든 책은 각각의 위치에서 쓰인 것이지, 조감도는 없다. 따라서 책의 내용은 진리도 진실도 사실도 아니다. 아니, 사실이나 진실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독자(reader)는 사용자(user)가 되었다. 원래 지식은 쓰고 없어지는 소비재지, 간직해야 할 보물이 아니다. - P23

사용자는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할 뿐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지식을 몸에 구조화하는 데 사용하면 된다.
- P24

내가 생각하는 독후감의 의미는 단어 그 자체에 있다. 독후감, 말 그대로 읽은 후의 느낌과 생각과 감상이다. 책을 읽기 전후 변화한 나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없다면 독후감도 없다. 독서는 몸이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통과할수도 있고 몸이 덜 사용될 수도 있다. 터널이나 숲속, 지옥과 천국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딘가를 거친 후에 나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독후감은 그 변화 전후에 대한 자기 서사이다. 변화의 요인, 변화의 의미, 변화의 결과……. 그러니 독후의 감이다. 당연히, 내용요약으로 지면을 메울 필요가 없다. 독후에 자기 변화가 없다면?
왜 없었을까를 생각하고 그에 대해 쓰는 것도 좋은 독후감이 된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아무 느낌이 없을까도 좋은 질문이다. 자기 탐구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더 좋은 독후감이 될 확률이 높다. 자신의경험, 인식, 지식, 가치관, 감수성에 따라 여정의 깊이는 달라진다.
독후감의 수준은 여기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독후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책 자체라기보다도 독자의 처지와 조건이다. 어떤 이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책이 어떤 이에겐 지축을 흔드는 충격을 준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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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책 소개글을 읽고서 구입한 책이었을 것이다. 책장에서 읽히기를 기다리며 색이 바래가는 책들을 읽어보리라 작정하고 꺼내든 책인데 너무 늦은듯 싶다. 2011년 발행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라면 세월의 무게쯤은 감당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듯. 가끔씩 독재시절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예도 있다. ‘~만 빼면 본 받을 부분이 있다,~만 빼면 잘 했다‘라는 말은 역사를, 참혹한 사실을 너무 납작하게 만든다.

‘허‘를 채우고 싶어 하는 인간의 충동을 욕심(心, desire) 이라 부르고,
‘허‘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겸허( modesty) 라고 부르면, 거의 모든 사람은 욕심이 겸허에 비해 강하기 때문에 계속 승진을 원한다. - P183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큰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다 소진되었을 때, 즉
‘허‘가 없어졌을 때 승진을 멈추게 된다. 엔지니어가 자기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더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로 가거나,
대학 교수가 자기 학문을 더 높일 생각은 않고 높은 관직을 탐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 P184

목적함수는 외부로부터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 의미 있는 목적함수는 부단한 자기수양과 미래 성찰을 통해 축적된 교양과 가치관의 결정이다. 목적함수가 정립되었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매체는 우회축적의 방법으로 형성 및 축적해야한다. 이것이 삶의 정도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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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튜드 혁명 - 인지장애, 치매 대상자를 위한 선진화 된 케어 방법
이브 지네스트 외 지음, 이인숙 외 옮김, 혼다 미와코 감수 / 대광의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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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받는다는 것이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휴머니튜드는 도움을 준다해서 강자가 아니고, 도움 받는다고 약자가 아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지탱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힘쓰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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