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시작과 함께 한 책이다.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버겁고, 의미를 못 찾겠고, 일단 이렇게 사는 삶이 너무 행복하지 않아서 우울했다. 그래서 새해 첫날에 집어들었다.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에 관한 모든 것'

책의 두께와 제목을 본 남편이 항상 머리 복잡한 사람이 왜 그렇게 머리 아픈 책을 읽냐 하기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나 할까 했더니 비웃으면서 가벼운 소설 같은 걸 읽어라, 조언을 했다. 원래 말을 잘 안 듣지만 내용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언을 받아들여 나름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변신이야기」를 집어들었다. 신화니까 가볍게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신들의 횡포, 너무도 쉬운 살인, 스토킹, 강간 등등이 이어지는 글을 읽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쌓여 집어 던지고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우울할 때가 많다.

일이 생각같이 풀리지 않을 때나,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몰려올 때, 삶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절망감이 밀려들 때 우울하다. 그런 기분이 오래가거나 삶을 이어가기 어렵게 되지 않는 한 우울함을 병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우울증이란 나약함의 표시라고, 노력하면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감기'같은 거라고 가볍게 취급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흔히 한밤중이나 자명종이 울리기 전의 이른 아침에) 불가해한 절망의 순간들을 체험한다. 그런 감정이 10분 정도 지속된다면 그건 일시적인 묘한 기분이다. 그러나 열시간 지속되면 성가신 발열이며, 10년 지속되면 커다란 타격을 주는 병이다. -37쪽

 

우울증은 병이다. 필요하면 약을 먹고, 심리치료도 받으면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하는.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사실대로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다. 저자가 우울증 환자이기 때문에 증상이 너무 실감나고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만사가 견딜 수 없이 힘겨워져서 전화 수화기를 드는게 200킬로그램 무게의 역기를 드는 것 같았다. 양말을 한 짝이 아니라 두 짝 신어야 하고 게다가 신발도 두 짝 신어야 한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도로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131쪽

 

얼마나 적나라한지. 침대에서 발을 빼서 바닥에 내리는 것조차 엄청난 힘과 용기를 들여야 한다는 이 병은 원인을 안다해서 쉽게 치료할 수 없다. 자신의 우울증 패턴을 파악해서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우울해진다.

남편의 타박이 있었지만 이 책은 우울증에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다. 업무상 노인 우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성별이나 연령에 따른 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설명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질병이다 보니 치료법이나 약물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좀 어렵기도 하다. 그런 부분은 대충 넘겨가며 읽었다.

 

저자는 우울이 꼭 고통인 것만은 아니라고 하며 강조하여 조언한다.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말고 꼭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라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누구에게라도 꼭 말 하라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어서 그가 혼자가 아님을, 같이 이겨낼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우울증을 겪은 뒤 안정을 되찾은 사람들은 일상의 즐거움에 대한 감수성이 강한 경향이 있다. 그들은 삶의 긍정적인 면들이 지닌 진가를 절실히 느끼고 그것들에 대해 쉽게 희열에 젖는다. 원래 너그러운 인물이었다면 우울증을 겪은 후에는 더욱 관대해진다. -639쪽

 

스스로 알든 모르든, 우울증의 요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대개는 평생동안 누적된 것들이다. 이 세상에 절망할 일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이들은 벼랑 끝까지 가고 어떤 이들은 벼랑 끝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서 이따금 슬픔만을 느낀다. - P75

우울증은 친구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우울증 환자는 친구들에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상식을 벗어난 요구들을 하게 되며 그런 요구들을 들어줄 의향이나 융통성, 우울증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 P106

우울증으로 부터 비교적 자유로은 인생을 누리려면 신중하고 지각 있는 태도로 약물치료에 임하면서 안정감과 통찰력을 주는 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 P138

우리 사회에는 노인의 자살을 젊은이의 자살보다 덜 동정하는 유감스러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를 정도의 절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처절한 것이다. - P384

더욱이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죽음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청년들은 다른 체험을 위해 삶에서 도피하는 자살을 하지만 노인들은 죽음을 최후의 상태로 본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보다 자살에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적다. 노인들은 치명적인 자살방법을 택하며 사전에 자신의 의도를 알리는 일도 드물다. - P384

점점 자신의 감정들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대인에게 혈액검사나 뇌촬영을 통해 우울증 여부와 어떤 종류의 우울증인지를 밝혀낼 수 있다는 생각은 위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정서로 통제력 안으로 들어왔다 벗어났다 하는 것이며,우울증이라는 병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어떤 것이 도를 지나친 것이지 외부의 것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 - P587

이런식으로 선택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편리하다기보다는 현기증이 나는 일이다.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사고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사회는 집단적 불안감을 낳게 되며 내가 보기에는 바로 그런 이유로 산업화사회에 우울증이 많아진 것이다. - P602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듯 그것에서 언제,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우울증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 P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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