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데는 아무리 시각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신 앞에 평등한 세상을 요구하는 농민들을 교회개혁가 루터가 ‘지옥에서온 악마들로 규정해 대량 학살을 정당화한 사실, 흔들리는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성직자들이 마녀사냥에 앞장서온 사실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 아닌가. 다시 강조하지만, 만일 예수가 자신의 이름으로 그런 야만이 벌어진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성찰해볼 일이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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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설교를 통해 자기도 권리가 있다는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루터를 믿었다.
하지만 루터는 그들을 "지옥에서 온 악마들"로 규정하며 영주들에게
‘미친개를 죽이듯 목을 졸라 죽이고, 찔러 죽이라"고 선동하고 다녔다.
뮌처와 그를 따르던 농민들과 빈민들이, 아니 ‘악마들‘이 대량 학살당했던 바로 그 시점에 루터 신부는 결혼한다. 과연 그는 수녀였던 아내 폰보라와 행복했을까? 아내를 두고 "프랑스나 베네치아를 줘도 바꾸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면 그랬다고 보아야겠다.
루터의 아내는 수도원을 개조해 학생들과 손님들의 숙소로 만들었고,맥주 공장도 운영했다. ‘루터 맥주‘는 당시 선제후의 궁정에 납품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말년의 살찐 루터의 모습은 아마도 맥주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뮌처보다 일곱 살 연상인 루터는 뮌처와 농민들이 참수당한 뒤 21년을 더 아내와 더불어 살았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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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퇴락한다. 인간이 퇴락할 때면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운‘과자신의 운명에 대해 과도하게 관심을 가진다. 삶 자체가 매혹적일 때면 운세에는 완전히 흥미를 잃게 마련이고, 운명이라는관념은 아예 들어서지도 못한다. 삶이 비참해지면 그때는운을 걱정하고 운명에 놀라는 것이다. 예수 시대에 이르러운에 대한 걱정과 운명에 대한 놀라움이 너무나 지나쳤던인간들은 삶은 하나의 기나긴 고통이고, 하늘에 들어갈 때까지, 즉 죽기 전까지는 운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장대한 선언을내건다. 이 선언은 모든 인간들에게 수용되었고, 우리 시대에이르기까지 부처와 예수를 막론하고 중요한 신조로 남아 있다.
이 신조는 우리에게 엄청난 양의 사고형식을 제공해주었을뿐 아니라 우리를 일종의 살아 있는 죽음의 상태로 인도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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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 영광스러운 작품은 끝을 맺는다. 꽤 역겨운 작품임에 틀림없다. 복수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에게 진정 성스러운의무였지만, 복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성인들과 순교자들의영속적인 자기 예찬과 이들의 뿌리 깊은 오만함이었다. "흰두루마기를 입은 이들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이들의독선적인 통치는 그 얼마나 구역질이 날 것인가! 새와 꽃,별과 강, 모든 우주를 없애버리자고, 무엇보다도 자신들과그들의 ‘구원받은 귀한 형제들을 제외한 모든 이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고집하는, 그야말로 그것만 고집하는 이들의 정신이란 진정 얼마나 사악한가. 꽃이 결코 시들지 않으며 영원히 그대로 피어있는 이들의 ‘새 예루살렘‘이란 그 얼마나 불쾌한가! 시들지 않는 꽃을 소유한다는 건 그 얼마나 끔찍하게 부르주아적인가!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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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붙은 습관을 의식하면서 잘못된 몸의 움직임을 알게 되었다. 의도적인 의식상태로 내 몸의 움직임을 살피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알 수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나를 구해줄 것이다.

내 삶 속에서도 순간순간 조금씩이라도 인히비션과 진행과정을 실천한다면,고착화된 몸과 마음의 습관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상호 소통하는 존재로서의‘나‘가 될 수 있겠죠.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은 점차 신뢰감으로 바뀌고,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 또한 자라나게 됩니다. 이처럼 알렉산더 테크닉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는 것,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스스로를 대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어쩌면 오래된 몸과마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근본적 방법이 되는 것 같습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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