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설교를 통해 자기도 권리가 있다는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루터를 믿었다.
하지만 루터는 그들을 "지옥에서 온 악마들"로 규정하며 영주들에게
‘미친개를 죽이듯 목을 졸라 죽이고, 찔러 죽이라"고 선동하고 다녔다.
뮌처와 그를 따르던 농민들과 빈민들이, 아니 ‘악마들‘이 대량 학살당했던 바로 그 시점에 루터 신부는 결혼한다. 과연 그는 수녀였던 아내 폰보라와 행복했을까? 아내를 두고 "프랑스나 베네치아를 줘도 바꾸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면 그랬다고 보아야겠다.
루터의 아내는 수도원을 개조해 학생들과 손님들의 숙소로 만들었고,맥주 공장도 운영했다. ‘루터 맥주‘는 당시 선제후의 궁정에 납품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말년의 살찐 루터의 모습은 아마도 맥주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뮌처보다 일곱 살 연상인 루터는 뮌처와 농민들이 참수당한 뒤 21년을 더 아내와 더불어 살았다. -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