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진
이동은.정이용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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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만화책이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만화들은 대체로 어딘가 쓸쓸하고 낮고 서늘하다.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닿는 마음들이 이어져 따스한 빛을 발하는 힘이 있다. '진, 진'은 어떨까?

표지 그림은 두 남성인 듯 보이지만 20대와 40대의 두 여성, 진과 진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20대 진아는 무연고자인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사망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다. 죽은 아버지를 사망자로 올릴 수 없어 답답하다. 여동생을 특별 전형으로 대학에 보내려면 아버지의 사망신고서가 필요한데 말이다. 그리고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40대 수진은 남편과 사별하여 홀로 아들을 키웠다. 언니와 함께 식당을 꾸려간다. 식당에 오는 단골손님과 사귀는 중에 임신을 한다. 아들의 애인도 임신을 하여 서둘러 아들의 결혼식을 치른다. 정작 본인은 병원에 찾아가 수술을 받는다.

두 여성의 삶은 다른 듯 보이지만 닮아 있다. 둘뿐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자신보다는 동생을 아들을 우선으로 여긴다는 점. 그래서 젊은 진과 중년의 진은 열심히 일하지만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현실 앞에 있다.

젊은 진은 고시원 식구들을 챙기며 관계를 돈독히 이어간다. 옆방 아주머니의 죽음을 막아주었으나 결국 죽고 말아서 대신 사망 신고를 하러 갔다. 그러다 우연히 아버지의 사망 신고까지 하게 되었다.


중년의 진은 이번 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선다. 처음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찾은 그녀가 붓으로 쓴 글자는 '다할 (진)' '나아갈 (진)' '진진'이다. 비둘기가 차나 사람을 안 피하는 모습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시야가 좁아서 잘 못 본다는 사실. 그래서 한 치 앞을 못 보니 겁 없이 막 산다는 언니의 말에 진은 비둘기에게 안쓰러움을 느낀다. 자신이 비둘기 모습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누워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녀의 독백에 독자의 마음도 뭉근해졌으리라.


진아, 수진 두 여성의 이야기가 어찌 그녀들만의 이야기일까. 쓸쓸하고 서늘하고 아픈 이야기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촛불처럼 두 여성의 삶에서 꺼지지 않는 잔잔한 빛이 느껴졌다. 만화의 톤과 인물의 표정이 생생하게 이야기와 어우러져 진, 진과 함께 한 시기를 머무른 느낌이다.

두 사람 진, 진이 내게 말한다. 살아만 있다면 살고자 한다면, 삶은 노래처럼 흘러갈 것이라고.

*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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