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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계절 - 일본 유명 작가들의 계절감상기 ㅣ 작가 시리즈 2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9월
평점 :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해서 여름이면 겨울을 기다리고, 추운 겨울이 되면 따뜻한 봄을 그리워한다. 때로는 꽃이 피고, 단풍이 드는 계절의 아름다움에 빠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바쁜 일상에 지쳐 봄이 오는지, 가을이 가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기도 한다. 연로하신 어른들은 종종 ‘앞으로 봄을 몇 번이나 볼까...’하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계절의 소중함이 새삼 더 크게 느껴지곤 한다.
계절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계절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시나브로 찾아온다. 계절 옷을 꺼내려 옷장 정리를 하거나, 몸에 닿기만 해도 꿉꿉하던 이불이 어느새 포근하게 느껴지거나, 시원하던 샤워기의 물이 차갑게 느껴지는 사이로 계절은 찾아온다. 누군가는 피어나는 꽃의 종류에서 혹은 나뭇잎 색의 변화에서 계절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계절>은 일본의 유명작가들이 계절에 대한 소회를 쓴 글들로 엮어진 책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등을 비롯한 일본의 근현대 작가 39인의 글을 만날 수 있다. ‘100년 전 일본’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차이는 있을지라도 계절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은 인지상정이기에 책은 지금 이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계절은 때로 사람들에게 감성을 충만하게 하는데, 감수성 가득한 작가들이니 그들은 과연 계절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일주일 지나자 금목서 향기가 사라졌다. 노란 꽃잎이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쇼팽의 전주곡 ‘빗방울’을 듣는 듯했다. 담배를 피우면 서늘한 공기가 연기와 함께 입속으로 들어왔다. 그것이 까닭없이 슬펐다.
-오다 사쿠노스케 (p.38)
눈 오는 밤의 고요함이란, 문밖은 소리 하나 없이 고즈넉했다. 땅에 내려 쌓여가는 눈에 깃든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었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메마른 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고요였다.
갑자기 북쪽 장지문이 환했다. 눈이 방 구석구석에 서린 어둠을 몰아낸 양. 눈이 내리면 어쩐지 기쁘니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 같은 사람은 눈이 반가운 어린애이지 싶다.
-시마자키 도손 (p.129)
초봄에 오는 비는 차갑다. 또 장맛비는 너무 우울하다. 하지만 그사이에 낀 늦봄 비는 밝고 쾌활하며 따뜻함으로 가득 차서 은빛으로 반짝인다. 초봄 비는 말없이 세상을 적시고, 이맘때 비는 소곤소곤 소리를 내며 내려온다.
-스스키다 규킨 (p.163)
작가들은 각자의 생활과 일상에서 느낀 계절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은 계절에 대한 섬세하고 세련된 묘사로 가득하다. 서두에는 간결하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작가의 이력이 나와있는 점도 좋았다. 동지팥죽을 먹는 우리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동짓날 단호박찜을 먹는 풍습이 있다는 등 생활상의 닮고 다른 모습을 알게 되는 것도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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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