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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흑역사 - 아름다움을 향한 뒤틀린 욕망
앨리슨 매슈스 데이비드 지음, 이상미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에는 남자 주인공 ‘길’이 매일 밤 1920년대로 돌아가 당대의 예술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길은 1920년대가 바로 황금시대라며 1920년대를 동경하지만, 1920년에 살고 있는 애드리아나는 최고의 황금기는 벨 에포크 시대인 1890년대라며 그녀 역시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보다 앞선 시대를 동경한다.
<미드 나잇 인 파리>도 그렇고, <오만과 편견>, <마리 앙투아네트> 등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영화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당시 입었던 드레스나 장신구 등 아름다운 패션에 자주 시선을 빼앗기곤 한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면, 어떤 옷들은 여자라면 한 번쯤 입어보고도 싶은 공주 취향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어떤 옷들은 저렇게까지 불편을 감수하면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흥미와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던 옷들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흑역사가 숨어 있었다. 수은, 비소, 납 중독 같은 끔찍한 비밀이 아름답고 화려한 패션으로 포장되어 있었던 셈이다. 화학적 지식, 독극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옷이나 모자를 만드는 과정, 염색하는 과정에서 인체가 얼마나 많은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알고서는 절대 다루거나 입지 못했을 무서운 성분들이 ‘패션’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중독과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
캐나다의 패션스쿨 교수이자 전문 연구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화려한 패션에 숨겨진 <패션의 흑역사>를 이야기해준다. 책은 우리가 영화나 명화를 통해 자주 접했던 패션 복식과 함께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다루고 있다. 보통 패션이나 복식사를 다룬 책을 읽을 때 복식의 아름다움, 장신구의 화려함에 주로 눈길이 가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섬뜩하고 끔찍하기까지 한 패션의 비밀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비밀의 잔혹함은 여성의 발을 작게 하려고 천으로 발을 꽁꽁 묶어 키웠던 중국의 전족(纏足)이나 각종 염증과 통증, 골절 위험 등이 있는 현대의 하이힐 정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사실 하이힐도 고대 역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긴 하다).

(오늘날에도 다수의 립스틱에서 검출되곤 한다는) 납 성분이 든 화장품, 세균으로 뒤범벅된 옷, 패혈증 스커트, 수은이 든 모자, 중독성 강한 니트로벤젠이 주성분인 얼룩 제거제와 구두약 등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기 그지없다. 특히 매혹적이고 생생한 녹색의 드레스와 머리 장식이 움직일 때마다 당사자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비소 가루를 떨어뜨리는 주범이었다든지, 화려하게만 보이는 퍼킨스 퍼플의 보라색이 독성 가득한 아닐린이었다든지, 인화성 섬유와 가연성 재료로 만들어져 화상 사고의 주범으로 자주 등장하곤 했던 발레리나의 튀튀와 크리놀린은 안타까움과 충격의 연속이다.
‘완벽하게 차려입다 : 지옥에서 병원까지’(p.28)라는 표현처럼 패션의 아름다움은 옷 제작, 염색업 등 관련업 종사자들과 그 옷을 입은 향유자들까지 세상 모두를 치명적인 중독과 사망에 이르게 한 주범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는 약품이나 소재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현대를 사는 우리도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패션과 그 패션의 흑역사에 대해 들려준다. 흑역사임에도 책이 무척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다. 차마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한눈에 이해시켜주는 증거(?) 사진과 관련 자료들이 풍부한 점 또한 좋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패션 지식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합해져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된 독서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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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