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과 복지국가
T. H. 마셜 지음, 김윤태 옮김 / 이학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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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복지국가 논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지침서.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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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구미정 외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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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신학과 성서해석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한국교회를 위해 꼭 필요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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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철학 - 이야기는 무엇을 기록하는가
노에 게이치 지음, 김영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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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보는 안병무의 ‘이야기구원론’

 

일찍이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예수사건의 전승모체」(1984. 10)에서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전승주체와는 달리 (현존하는 마르코복음의 원자료가 되는) 예수사건전승의 모체(母體)가 오클로스(οχλος) 곧 민중이며, 이들이 사용한 전달의 방식은 변증이나 논증의 언어가 아닌, 이야기 곧 유언비어의 형태였다는 놀라운 가설을 제기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안병무의 논의의 출발점에는 마르코복음이라고 하는 텍스트가 글이 된 것은 어느 작가(혹은 공동체)의 창작물이거나 독자적인 기록물이 아니라, 이미 민중들 가운데서 오랜 기간 구전(口傳)되던 민중의 이야기가 채록된, 이른바 ‘구술문학(oral literature)적 텍스트’라고 보는 견해가 확고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1960년대 초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에게 영향을 받은 미디어 생태주의자 월터 옹(Walter J. Ong)이 성서텍스트의 구술성에 대해 주목할 만한 논지를 편 이후, 서구 신약학계에서는 베르너 켈버(Werner Kelber), 조안나 듀이(Joanna Dewey), 데이빗 로즈(David Rhoads), 피터 보싸(Pieter Botha), 크리스토퍼 브라이언(Christopher Bryan) 등이 1980-90년대에 마르코복음의 구술성과 기술성에 관한 중요한 연구들을 제출하였다.[각주:1]

마르코복음이 독자(reading audience)가 아니라 청중(listening audience)을 위해 쓰인 텍스트, 즉 글을 읽을 줄 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예를 들어 시장 바닥이나 저녁 모임, 혹은 회당 모임 자리)에서 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낭독하기 위하여 만든 구술문학의 일종으로서, 현장에서 연행을 통해 드러나는 시학적 요소들을 강하게 담지하고 있는 텍스트라는 주장은 현재 신약학계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클로스를 통해 마르코에게 전승된 예수전승의 형식적 특징이 이야기체 더 정확히 말해 유언비어였다는 안병무의 통찰이 갖는 중요한 함의는 예수 사후에 민중들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의 실질적인 중심에는 하느님/예수의 초월적인 역사하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의 오클로스들이 그들 당대의 고난 속에서 과거 예수와 함께 경험했던 사건과 그의 말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데서 찾아진다. 이를 ‘이야기구원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통한 구원사건의 추체험(追體驗)은 민중이 예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안병무가 제시한 마르코복음의 이야기구원론은 ‘예수사건은 후대에 어떻게 역사화되었는가’ 나아가 ‘성서는 어떻게 쓰여졌는가’라는 신학적·역사학적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된다. 안병무는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사건에 관한 역사적 보고들을 절대불변의 객관적인 것이 아니며, 오클로스를 위시한 원시그리스도교운동의 지지자들이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라는 무수한 시선의 복합체, 즉 ‘이야기의 집성’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구원사건의 이야기론에는 이미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기초로 성립된 종래의 서구 근대 역사비평학의 인식론적 한계를 뛰어넘는 이른바 ‘이야기로서의 역사’, 혹은 ‘역사로서의 이야기론’이 내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병무는 현존하는 마르코복음의 텍스트 안에서 예수 말의 주된 청중이자, 기적의 목격자 또는 수혜자이며, 나아가 하느님나라 선포의 수혜자로 그려지는 그 무명의 사람들 곧 오클로스들이 최초 예수사건의 담지자이자 마르코복음의 저자에게 예수사건을 전승한 전달자이며, 마르코적인 해석자였다는 주장을 통해 복음서에 관한 새로운 역사학을 썼다. 마르코복음서의 예수 전승이 유언비어의 형식을 띠고 있었으리라는 그의 통찰이 갖는 문제의식의 핵심은 전승의 내용과 성격이 전승집단의 정치적 조건 및 실존적 상황을 강하게 반영하여 재구성된 기억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1980년 광주’의 기억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는지를 보면서 안병무는 유언비어라는 예수 이야기의 전승을 착안했던 것인데, 이와 유사하게 예수 수난사 전승 속에는 예수 사후에 예수의 민중들이 경험했던 당대의 실존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예수의 수난에 대한 공감적 기억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평화적인 갈릴래아 시대에도 예수는 활동의 초창기부터 적대자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서술된 것(마르코 3, 6)은 저들의 실존적 상황을 노출한 것이며, 바로 그런 상황의 유사성이 저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고 위로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의 수난이야기는 유언비어로 활성화될 수 있었다.

이렇게 예수의 민중들이 예수를 공감적으로 기억했다는 것은, 그 기억의 내용 안에 ‘기억되는 예수’만 있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이들의 현재 삶’이 들어 있다는 것으로서, 기억은 기억하는 이와 기억되는 이의 소통의 결과가 되는 셈이다. 기억하는 이들이 오클로스이고 이들의 공감 아래서 유언비어 형식으로 마르코복음의 저자에게로 예수 이야기가 전달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 사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계층적·민족적 좌절의 구조와 그것을 탈출하려는 계층적·민족주의적 욕망과 꿈이 예수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각주:2]
 


2. 안병무와 더불어 노에 게이치를! 


이상에서 검토한 대로 「예수사건의 전승모체」를 통해 드러난 안병무의 ‘이야기구원론’ 및 ‘이야기역사론’을 관통하는 핵심에 ‘이야기’의 개념이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이야기’라고 하는 개념은 안병무 뿐만이 아니라 서남동이나 김용복 같은 다른 민중신학자들에게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다.[각주:3]

민중신학의 이야기 개념을 다듬어 나가는 데 참조할만한 유용한 책이 최근에 번역 출간되었다. 일본의 저명한 과학철학자 노에 게이치가 쓴 『이야기의 철학』이 그것인데, 이 책은 과학철학을 중심으로 언어철학, 현상학, 해석학, 역사철학 등의 광범위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이른바 ‘이야기로서의 역사’ 혹은 ‘역사로서의 이야기론’를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동물’ 또는 ‘이야기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인간의 ‘이야기하기’ 행위가 멈추지 않는 한, 역사에는 ‘완결’도 ‘종언’도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 수정된 역사철학의 명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발표한 「역사는 끝났는가」(『내셔널 인터레스트』, 1989)라는 논문을 출발점으로 하여, ‘역사의 종언’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었다. 이 논문에서 후쿠야마는 ‘대문자의 역사History’는 종언됐다고 선언한다. 지금까지는 기원과 텔로스를 갖는 역사관이 지배해왔다. 그리스도교적 사상에 근거해 천지창조에서 구원의 완성까지를 그린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나라’와 헤겔에 이르기까지, 시작과 끝을 갖는 유럽적 역사철학이 주도해왔던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렇게 ‘대문자의 역사’의 허구성이 밝혀진 지금, 역사는 무엇인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답변을 역사기술에서 ‘이야기의 복권’을 촉구하는 데서 찾고 있다. 대문자의 ‘역사’가 종언을 고한 이후 ‘기원과 텔로스의 부재’라는 황량 장소에 서 있는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이야기하기’라고 하는 언어행위를 통해 역사를 내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와 이야기는 결코 대립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 역사적인 기억 없이는, 즉 이야기되거나 쓰여진 기억 없이는 실재적 역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3). ‘이야기하다’ 또는 ‘쓰다’라는 인간적 행위에 의해 비로소 실재적 역사가 성립한다. 그 ‘이야기하다’라는 행위를 ‘이야기행위’라고 부른다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이야기행위를 통해 인간적 시간 속으로 포함되어 역사적 사건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알렉상드르 코제브(Alexandre Kojeve)의 “‘역사’는 인간의 기억에 근거해서 이야기되는 내용 속에서만 존재한다”라고 하는 『헤겔 독해 입문』(Introduction to the Reading of Hegel)의 한 문장을 실마리로 삼아 논의를 펼쳐나간다.

저자가 제기하는 이야기의 역사론 혹은 역사로서의 이야기론이 안병무의 예수역사학에 던져주는 해석의 빛을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과거의 사건이나 사실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기’를 통해 해석학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역사의 반(反)실재론). 역사과정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의 시점으로부터는, 기억을 통해 ‘세계를 지금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이외의 방법이 없다. 해석학적 재구성 이전의 조작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과거 즉 초월적인 ‘과거자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망상이다. 기독교신학에서 이러한 초월적인 과거자체의 자리에 놓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양식사비평이 발견해낸 케리그마일 것이다. 케리그마는 공관복음의 모든 예수 기억을 케리그마의 시각에서 처리해버림으로써 예수사건의 역사성을 탈각시켜버렸다. 태초에 케리그마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태초에 예수사건이 있었다고 하는 안병무의 유명한 테제를 떠올려보라.

둘째, 역사적 사건(Geschichte)과 역사서술(Historie)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전자는 후자의 문맥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역사의 현상주의). 역사는 사건임과 동시에 역사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결국 역사적인 이야기는 실제의 역사적 행위나 사건과 동시에 나타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경험적 공감에 의해 예수에 대한 기억이 재구성될 수 있었다고 하는 안병무의 마르코복음 형성론에 이미 이러한 역사의 현상주의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역사서술은 기억의 ‘공동화’와 ‘구조화’를 실현하는 언어적 제작(Poiesis)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결국 ‘인간은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로 바꿀 수 있을 텐데, 마르코복음 연구를 통해 안병무 역시 역사란 결국 ‘기억하는 것’(상기)에 다름 아님을 갈파했다고 볼 수 있다. 노에 게이치의 주장대로, 과거는 ‘상기(想起)’라는 경험양식을 떠나서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상기는 단순히 과거를 한 번 더 지각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경험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경험들과 결합되고 구조화, 공동화되어 기억된다. 기억되고 상기되는 것은, 정확하게 재현된 과거가 아니라 해석학적 변형과 해석학적 재구성이 이루어진 과거인 것이다.

넷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축적된다.” 다시 말해 과거는 기억되어 현재 경험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습관이 되어 현재의 행동을 제약하고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역사는 언제나 미완결이며, 어떠한 역사서술도 개정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역사의 전체론).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역사의 수행론(Pragmatics)). 역사적 사건과 역사서술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 통일성이 우리의 언어행위로 뒷받침되고 있다면, 역사인식에 있어 우리가 ‘이야기’의 외부에 위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외부로 나아간다는 것은 곧 시간의 영역 밖에 위치하는 것으로, 그것은 신과 같은 ‘초월적인 시선’에 위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 이것은 민(民)의 이야기에 의해 쓰여진 역사는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대로 노에 게이치의 『이야기의 철학』은 민중신학의 이야기론이 이룩한 인식론적 성과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쓰여진 책이니 만큼 민중신학 저작들과 함께 놓고 읽어 나가면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적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 웹진 <제3시대>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 

 
  

 


1. Werner Kelber, Oral and Written Gospel: The Hermeneutics of Speaking and Writing in the Synoptic Tradition, Mark, Paul, and Q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Joanna Dewey, “Oral methods of structuring narrative in Mark”, Interpretation 43(1989) 32-44와 “The Gospel of Mark as Oral-Aural Event: Implications for Interpretation", in E. McKnight and E. S. Malbon (ed), New Literary Criticism and the New Testament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4), 145-163; David Rhoads, “Performing the gospel of Mark”, in Björn Krondorfer (ed), Body and Bible: interpreting and experiencing biblical narratives (Philadelphia : Trinity Press, 1992); P. J. J. Botha, “Mark's Story as Oral Traditional Literature: Rethinking the Transmission of Some Traditions about Jesus”, Hervormde Teologiese Studies 47(1991) 304-331; Christopher Bryan, Preface to Mark: Notes on the Gospel in Its Literary and Cultural Setting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참조.

2. 김진호, 「이름을 불러주기까지 그들은 ‘꽃’이 아니었다―안병무의 ‘오클로스론’ 다시 읽기」, 김진호 외.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 (서울: 삼인, 2006) 96-97 참조.

3. 서남동의 경우는 『민중신학의 탐구』에 수록된 「두 이야기의 합류」, 「민담에 관한 脫神學的 고찰」, 「민담의 신학-反神學」에서 ‘이야기’를 독자적인 민중신학의 주제로 다루고 있고, 김용복은 『한국민중의 사회전기: 민족의 현실과 기독교운동』에 수록된 ‘민중의 사회전기’를 주제로 한 몇 편의 글들에서 사회사적 의미로 확대된 이야기 개념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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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자 안병무 평전 - 성문 밖에서 예수를 말하다
김남일 지음 / 사계절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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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병무 선생과의 인연

 

지난 2006년 당시 나는 한백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한백교회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안병무 선생과 박성준 선생이 공동으로 설립한 평신도중심의 교회로서, 국내의 대표적인 민중신학적 신앙공동체이다. 그때 나는 한백교회 김진호 목사님의 소개로 심원안병무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하고 있던 안병무아키브 사업의 기초 작업인 안병무 선생의 저작총목록집 제작을 맡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을 위해 일산의 박영숙 선생(안병무 선생 미망인) 자택을 찾아가 그곳에 보관 중이던 안병무 선생의 저작들, 예컨대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들에서부터 미출간된 논문, 강연, 설교 원고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정리되어 있던 저작목록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심원기념사업회에서 내게 요청한 것이 바로 연대순으로 글을 정리하되, 중복게재 및 동고이제(同稿異題)를 확인 표기해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료를 모으는데 걸린 시간이 4개월 정도 소요되었고, 어느 정도 자료가 모였다고 판단된 시점부터는 모은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목록집을 작성하는 데 역시 4개월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렇게 총 8개월에 걸쳐 나는 박영숙 선생 자택과 천안의 옛 한국신학연구소 자료실,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한신대학교 도서관, 수유리 장공도서관, 그 외 안병무 선생을 잘 아는 분들의 댁을 찾아다니며, 선생이 쓴 모든 글을 수집하고 검토하여 선생이 평생 동안 쓴 글에 관한 총체적인 서지목록을 만들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나온 두 종류의 전집 열 세권(한길사판 총 여섯 권과 한국신학연구소판 총 일곱 권)이나 기타 선생의 이름으로 출간된 단행본 어디에도 수록된 바 없는, 그래서 기존의 저작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116편의 글을 새롭게 발굴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모아 기존 전집을 보완하는 의미의 안병무 저작 선집 세 권을 만들 수 있었다. 『안병무 저작선집 1: 성서의 법정신』(20편), 『안병무 저작선집 2: 그리스도와 국가권력』(51편), 『안병무 저작선집 3: 민중신학에 이르기까지』(45편). 이 책들은 비매품으로서 300부 정도만 제본하여 2006년 10월 안병무 선생 10주기 기념 출판행사 때 공식적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출판에 도움을 준 기념사업회의 몇몇 분들과 전국의 대학 도서관 및 연구소 등에 모두 기증되었다. 

나야 안병무 선생이 살아있을 때만해도 아직 어렸기에 그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분을 실제로 뵌 적도 없고,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책과 글을 통해 그를 만났고 누구보다 그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2006년 그 한 해 동안 나는 안병무 선생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웠던 차에 그 일을 맡아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당시 내면의 혼란을 안병무 선생의 글을 찬찬히 읽는 과정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

일제 식민치하였던 1922년에 태어나 간도 용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청년기에 해방과 전쟁 및 분단을 경험하고, 독일 유학 이후 교수로 지식인으로 7-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며 민중사건을 신학의 언어로 증언하고자 했던 신학자 안병무. 민중신학을 세계적인 신학으로 정초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신학자이자, 여전히 근대라는 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근대를 비판하고 근대를 넘어설 수 있는 신학적 사유와 비평의 가능성을 예시하여 준 脫/向의 신학자 안병무. 예수사건론 곧 민중사건론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발본적으로 재해석하고, 체제내화된 교회를 넘어 예수운동을 통해 역사적 예수에게로 가는 지평을 우리에게 보여준 예수 역사학자 안병무.  

전례가 없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거듭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기존 전집의 출전이나 목록에 나와 있지 않았던 원고를 우연히 새롭게 발견하면서 맛본 그 벅찬 감격과 환희 때문에 점점 안병무라고 하는 인물의 삶과 글쓰기의 세계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 들어갔다.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잡지를 네 개나 창간했고, 그 중 하나는 매회 직접적으로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실은 탓에 검열과 절취의 탄압을 당해야만 했으며 급기야는 강제로 폐간당하기까지 했다. 유학 전에 이미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했고, 유학 이후 한국신학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그 학교를 당시 한국에서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역동적인 신학교육을 수행하는 학교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학자로서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이루게 되는 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의 강단이나 연구실이 아닌 차디찬 감옥과 격렬한 투쟁의 시위현장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강제 해직의 기간 동안 그는 민중사건 속으로 더욱 깊이 자신을 침윤시켰으며 그때의 그 경험들-민중과의 만남-이 그를 민중신학자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사후에 「안병무는 정말 그리스도인이었는가」라고 하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단 논문까지 나올 정도로 그는 평생을 제도권 교회 및 주류적인 기독교 신앙/신학과 대립했던  급진적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평생 네 개의 각기 다른 지향성을 가진 교회(명동향린교회, 갈릴리교회, 강남향린교회, 한백교회)와 국내 최초의 개신교수녀공동체(디아코니아자매회)를 창립한 인물이기도 했다. 교회를 비판하고 거부하며 교회를 넘어 이제는 갈릴래아 예수-오클로스의 예수운동을 민중운동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가 평생 교회를 떠나지 않은 것도 모자라 결정적인 시기마다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는 교회들을 창립해왔다는 것은 내게도 매우 역설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단 그것들뿐이겠는가. 한국신학의 세계화 및 주체화를 위해 대학 밖의 독립적인 신학연구소를 세웠고 재야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기독교민중운동, 민중교회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했던 그의 삶을 어떻게 간단히 몇 줄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적어도 내가 분명히 확인한 것은 어쨌든 그는 그저 글로서 말하고 글로서 생각하며 글로서 싸웠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안병무아키브 작업을 하던 당시 끊이지 않고 내 머리 속을 맴돌던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렇게 미친 듯이 글을 썼을까?"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펜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지금도 나는 내가 그때 이후로 평생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안병무 선생처럼 살 자신은 도저히 없다. 나같은 사람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규모의 삶을 감당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성장한 토양이나 경험했던 현실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는 정말 알고 싶었다. 그가 그렇게 글을 계속 써야만 했던 이유 말이다. 그가 왜 그렇게 써야만 했는지를 내가 가슴으로 분명히 알게 될 때까지는 함부로 내 삶을 포기할 수 없을 듯 싶었다. 죽은 안병무 선생이 산 내게 남겨 준 것은 그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글들이었다. 그 글들 속에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도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다.

평전에 대한 독후감을 써야하는데 자꾸만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안병무 선생이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거리두기가 좀처럼 되지 않았고,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안병무의 모습과 작가가 복원한 안병무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겹쳐져서 비평적인 관점에서의 독서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민망하지만 내가 작업한 『안병무저작 총목록집』의 발간으로 국내의 안병무 연구는 진일보할 계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 분명 사실이고, 바로 이 목록집과 저작선집을 참조하여 안병무 평전도 출간될 수 있었다. 내가 편집한 자료들이 출간되던 2006년 10월 선생의 10주기 기념행사와 시기를 맞추어 안병무 평전 출간 사업이 비로소 추진되기 시작했고, 그 필자로 소설가 김남일 선생이 선정되었다는 소식까지도 들었다. 그리고 1년 만인 작년 10월에 드디어 안병무 평전이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안병무라는 이름으로부터 아직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었던 탓인지 책을 구입해놓고도 선뜻 평전을 읽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더구나 내 나름대로 1년 가까이 작업을 하면서 선생의 글을 읽었고, 그를 만났다는 생각 때문인지 굳이 다른 사람이 쓴 평전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신학윤리 수업에 제출할 평전 독후감 과제의 대상 도서를 찾다가, 문득 이 책이 생각났다. 굳이 새로운 책을 찾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결국 읽어야 할 책이었는데, 이제야 그 시기가 온 것이라 생각하며, 책을 구입한지 1년 만에 드디어 나는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앞서 안병무 선생에게서 가졌던 그 물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비록 글로서만 그분의 생애를 더듬어 갔지만, 이 평전의 작가인 김남일 선생은 안병무가 거쳐 온 모든 공간들과 만난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며 그분의 생애 전체를 보다 선명하게 복원한 것이었다.

이 평전 덕분에 나는 내가 그토록 궁금했던 것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즉 민중신학자 안병무로 하여금 그토록 평생 많은 글을 그것도 목숨 걸고 쓰게 한 그 이유와 동력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민중과의 만남. 물론 내가 여태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이 평전을 통해 즉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나는 안병무에게 있어서 이 민중과의 만남이야말로 그의 신학의 핵심이자 그의 신학을 윤리학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전거가 된다고 본다. 이 평전의 내용을 확인해나가면서 그 부분을 짚어보고자 한다.

 

 

2. 예수를 찾아 간 성문 밖에서 민중예수를 만나다

 

사전적인 정의대로 하자면, 평전(評傳)은 단순히 비범한 한 인간의 일생을 다룬 ‘전기'(biography)가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집필자의 일정한 평가와 해석이 담겨 있는 ‘비평적 전기’(critical biography)를 의미한다. 물론 그 어떤 전기이든 해당 인물에 대한 일정한 평가와 해석이 들어 있기 마련이지만, 일반적인 전기와는 달리 그 인물에 대한 뛰어난 업적과 더불어 한계와 인간적인 약점도 함께 드러내는 것이 올바른 의미의 평전이다.

나아가 ‘평전’은 문제적 개인의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하면서도 거기에 평전 작가의 서사적 상상력이 상당부분 개입하는 이른바 ‘사실적 허구’의 양식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 때문에 평전은 평전 작가의 비평적 해석과 평가가 깊이 매개될 수밖에 없는 인물 비평 양식인 것이다. 좋은 평전을 통해 우리는 한 시대의 중요한 인물을 둘러싼 사상 ․ 철학 ․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인물의 생각과 행동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동하는 양상에 대한 평전 작가의 날카로운 비평적 안목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남일이 쓴 이 평전은 역사의 격랑을 헤쳐나간 한 인물로서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삶과 신학, 그리고 그가 맞닥뜨렸던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대로, 자연인 안병무를 민중신학자 안병무로 만든 것은 ‘어머니 곧 선천댁’, ‘역사의 예수’, ‘한국의 민중’이었다. 안병무는 바로 그 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고 역사의 공간으로 뛰어들어 민중신학자가 되었다.

이 평전은 크게 보아 연대기적으로 서술되긴 했지만, 첫 장을 안병무 선생이 마지막으로 쓴 책인 『선천댁』(범우사, 1996)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점에서부터 보통의 전기와는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선천댁』은 본명 정원숙이란 이름 대신에 평생을 ‘선천댁’이라 불리며 살다간 안병무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야 말로 안병무가 평생을 쫒아 온 민중이었다. 물론 안병무는 그 민중을 통해 자신이 찾아 헤맸던 역사의 예수의 현존을 경험했다. 예수-민중-오클로스, 다시 오클로스-민중-선천댁으로 이어지는 안병무의 신학적 탐구의 여정은 고스란히 타자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신을 갈구하던 실존주의자 시절에 예수를 만나길 갈망했고, 그 예수를 찾아 불트만이 있는 독일로 갔었다. 하지만 그는 불트만으로부터 “역사적 예수는 찾을 수 없다”는 소위 역사적 예수에 관한 불가지론적 답변만 듣고 돌아왔다. 신을 만나기 위해 예수를 찾았고, 예수를 찾기 위해 독일까지 갔지만, 결국 독일에서 경험한 것은 엄혹한 조국의 현실이었고, 조국의 현실로 돌아와 그는 다시 예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어느 날 그의 눈 앞에 ‘전태일’로 돌아온다.

이 평전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내가 선생의 아키브작업을 하면서 발견한 것 중에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것이 1970년 11월 13일이고, 당시 안병무는 『현존』이라고 하는 잡지를 내고 있었는데, 이 잡지의 11월호 편집후기에 전태일에 관한 글이 발견되었다. 잡지에는 발행일이 11월 1일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전태일에 관한 글이 있을까 신기했었다. 아마도 재판을 찍으면서 급하게 끼워 넣은 듯싶었다. 그만큼 그에게 그 사건이 충격으로 남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전태일이 그에게 예수로 다가왔고, 다시 그 전태일을 통해 그는 한국의 민중들에게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 민중을 통해 다시 성서를 읽으면서 <마르코복음>에서 예수와 오클로스를 발견했고 민중신학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에게서 신앙과 윤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윤리가 행위 혹은 실천의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서, 영원히 중단될 수 없는 주체의 존재양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윤리적 주체로서 "그리스도인-되기" 또한 현실 속에서 늘 새로운 타자,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라는 사건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사후적으로 추체험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전면(前面)에 인간됨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결정적인 반면(反面)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구원을 일시적으로 허락하는 '복음'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는 고통에 겨운 얼굴로 우리 앞에 현현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의 지평, 즉 윤리의 지평이 열린다. 타자의 고통스런 얼굴을 대하기 전에 주체는 단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향유(jouissance)의 존재, 또는 경제적 존재일 뿐이다. 자기의 거주와 향유 안에 고립된 주체는 어떤 윤리적 책임도 느낄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주체는 타자의 고통에 책임적으로 반응하는 윤리의 주체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신학자 안병무 역시 민중을 통해 예수를 발견했고, 신을 발견하며 자신의 신앙을 실천해나갔다. 신앙의 실천 과정이 곧 윤리적 실천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가 감옥에서 친구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종교적 행위가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삶 가운데서 신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본회퍼가 그랬던 것처럼 안병무에게서 그리스도인되기는 세상과 분리된 신을 향한 일방적인 경건이 아니라 신이 현존하고 있는 이 고통의 세계, 그 신의 현현이라 할 고통당하는 이 땅의 모든 예수들과 함께 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 평전은 “성문 밖에 예수를 말하”기 위해 여전히 “성문 밖에서 우리들의 이웃의 모습으로 고난당하고 있는 예수들을 찾아 갔던” 안병문의 일생을 속도감 있는 필치로 잘 그려내고 있었다. 더욱이 신학에 무지하고 기독교인도 아니라고 하는 작가가 그 어떤 신학자들보다도 안병무의 신학세계를 깊이 꿰뚫고 있다는 사실도 그저 놀라웠다.

 

 

3. 신학의 윤리-정치학적 과제에 관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안병무의 그 신학적 실천을 계승해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그의 신학에 대한 주석달기가 아닌 그의 작업을 오늘의 맥락 속에서 재현해내는 것, 즉 우리가 이제 그가 했던 것처럼 민중신학적 실천, 신학윤리적 실천을 반복해내가는 것이 필요하리라. 

나는 우리가 사회 밖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혹은 비시민, 사회적 무능자, 주변인, 배제당한 자들, 소수자, 하위주체, 민중 등으로 부를 수 있는)의 입장에 서지 못하는 한, ‘사회'에 대해 혹은 ‘교회’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이 위선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회적 약자의 당파성을 취하지 않는 모든 신학의 구원론은 정치적 중립을 가장하여 결국 상이한 이해관계, 상이한 입장을 가진 집단들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지배를 향유하는 집단, 특권을 향유하는 집단의 입장에 서는 것이고, 그리하여 사회 속에서 관철되고 있는 모순들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는 ‘그들만의 천국’ 이야기가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정치학에서는 ‘잊어버림'(즉 망각)의 정치라고도 한다. 따라서 잊어버림의 정치를 작동시키면서 ‘민주주의' 혹은 ‘하느님나라’를 운운하는 것은 언제나 위선일 수밖에 없다. 포스트맑스주의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라클라우와 무페가 말했듯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모순적으로 결합된 현대국가에서 조화로운 '사회'는 언제나 불가능한 것이며, 실재의 차원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현실의 모든 담론이 기실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말 그대로 현실 그자체이다.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과학적 비판담론은 오로지 우리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섬으로써만 그 성립 계기를 갖게 된다. 그래야지만 사회 속에 관철되고 있는 모순들이 전모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기초적 조건이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모순을 숨기지 않고 말함으로써만, 즉 부정성과 대면할 때만이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 대한 과학적 비판담론의 위상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면, 비시민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를 당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 예컨대 비정규 여성 노동자, 비정규 이주노동자, 비정규 청소년 노동자, 비정규 장애인 노동자, 도시빈민, 몰락 농민, 성적 소수자들, 실업계 고교생, 미취학 아동, 독거노인, 일급 지체 장애인, 감금된 정신병자, 화교,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비학생 청소년들, 전과자, 실업자, 일용직 노동자, 노숙자, 신용불량자(금융 채무불이행자), 매매춘 여성, 소위 이단적 소종파 종교인들(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 미자립 이혼여성, 소년소녀가장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단지 현상적으로만 기술하고 보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그러한 차별과 배제를 생산시킨 숨겨진 메커니즘에 대한 원리적 해명으로까지 우리의 분석을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메커니즘에 시민사회와 국가, 자본 등이 어떻게 연합적으로 공모하고 있는지를 밝혀내고, 또 그들이 각각 어떠한 이익을 구조적으로 누리고 있으며, 반대로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 자들이 겪는 희생과 고통을 인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배제와 차별의 기원, 망각과 재생산의 장치 혹은 기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해관계, 담론적 정당화, 윤리적 기술 등에 대한 세밀하고도 정교한 분석 없이는 대항담론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국가정책을 시정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를 운동의 동력으로 포섭해낼 수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특수성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란 결국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발전 및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 경로와 역시 매우 밀착되어 있다.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독특한 이중성 즉 이데올로기가 자율적으로 자기 운동을 벌이면서 생산되는 장소로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공간이라는 특성과 다른 한편으로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 더 큰 이익 또는 특권을 향유하기 위해 비시민적 타자들을 억압 차별 배제하는 행위들이 행해지면서 그러한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들이 부단히 생산하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비시민의 편에 서서 시민들과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시민사회를 넘어 국가 및 자본을 향한 해방적 담론투쟁을 전개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민중신학적 실천의 본령이 아닐까? 『안병무 평전』이 내게 가르쳐준 새삼스러운 신학의 윤리-정치학적 과제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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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6-1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안병무 선생의 책 몇 권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해방자 예수>(현대사상사)가 <갈릴레아의 예수>와 동일한 내용인지 알고 싶습니다.
 
욕구와 시장 그리고 신학
성정보 지음, 홍인식 옮김 / 일월서각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제1장 신학과 경제: 서론을 대신하여

인류 역사에 있어서 승리자 내지는 권력자 혹은 정복자들은 하느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승리한다는 신학, 만약 그런 신학이 올바르다면 우리는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 속에서 그 수많은 학살과 침략, 약탈로 성취된 승리와 정복도 하느님이 그들의 편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 신화에서 보듯, 승리가 반드시 정의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정의로운 자가, 하느님이 함께 하는 자가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비약하면 차라리 하느님이 함께 하는 역사는 세속사에서는 철저한 패배의 역사에 불과할 것이다. 세상의 논리에 따른 그런 승리를 주관하는 신이 정말 신이라면 그 신은 하느님이라기 보다는 악마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전지전능과 같은 신의 속성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대상으로서 신적 존재인 하느님의 속성이 아니라 오히려 악마의 속성이다. 그리스도교적 신앙, 예수적 신앙이 증거하는 신은 패배의 신인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신담론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승리와 정복, 권력, 경쟁의 윤리를 신의 속성으로 선전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신의 영광의 충만한 성육신은 우리가 잘 아는 바 죽음의 이데올로기적 무기로서 자본이 만들어내는 아우라, 곧 물신을 통해 절정에 달하고 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메시아에 대한 개념에 아주 큰 변화를 요구한다.

Jose Comblin은 말했다. "그리스도교는 메시아니즘이 아니다. 다른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메시아니즘의 주제를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예수가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의 승리로 인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을 선포하고 그 신실함의 이름으로 제국의 우상숭배적 권력에 대항하는 하느님의 사역에 대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절대적인 충성심 때문에 예수 그를 메시아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예수의 그 하느님이 예수에게 주지 못한 승리를 우리에게는 주실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 때문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리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현존하는 세상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것, 그 무모한 용기를 나는 차라리 신앙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치 죽음이 뻔히 보이는, 패배가 자명한 그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예수가 무모한 입성을 한 것처럼 말이다.]


희생자의 자유 가운데 실천하는 사랑을 억압하는 신성화된 법칙(초월적 법칙)의 이름으로 부여된 외부적 강압의 논리인 '희생'이 아닌 연대감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로운 사랑의 실천으로서 '드림의 은사'는 분명 다른 것이다. 단적으로 후자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제2장. 모방적 욕구와 사회적 소외 앞에 선 기독교

1. 욕구 대 필요, 그리고 소득과 부의 재분배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와 욕구의 개념 사이에 생겨나는 개념의 혼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 여기서 우리는 필요성이 너무나도 쉽게 욕구로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만약 우리가 더욱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우리의 투쟁을 전개시키길 원한다면 필요와욕구의 차이,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욕구의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과제이다. 부의 재분배에 대한 요구는 빈곤과 궁핍의 수준이 매우 심각하여 그로 인한 해결책이 시급하다는 것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경제성장 자체가 반드시 부의 최적 분배를 의미하지 않는데 그것은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한 경제 모델은 빈곤 퇴치를 위한 경제 모델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부를 증가시키기 위한 생산이 빈곤을 감소시키기 위한 생산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간과했다. ... 필요는 구매력의해 가능해진 욕망인 수요로 대체되고, 생산과정의 목적은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소비를 부추기기 위함이며, 효율성은 섭식을 향상시키기 위함이 아닌 수출을 위한 생산으로 여겨졌다.”


더 나은 분배와 경제ㆍ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대화를 심각한 사회적 불의라고 전제하고 과다하게 필요 이상으로 가진 사람들에게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대중들 대다수는 사회가 좀 더 평등해져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빈자들에게, 특히 시장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자신의 소득이나 부를 감소시키는 경제 정책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요컨대,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것’과 ‘필요 이하로 가지고 있는 것’의 차이는 소득 재분배와 사회적 구조 조정을 옹호하는 자들과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들을 가르는 분계선으로서, 필요성과 욕망에 관한 서로 상이한 인식의 차이이다. 전자가 가진 생각은 인간의 필요성의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고 후자는 (당연히) 제한이 없는 욕구의 자유로운 행사 권리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와 욕구의 개념의 혼동이다. 먼저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경제 이론과 개인 기업들의 생산은 소비자들의 욕구 만족에 목적을 두고 있다. 다만 그 욕구들이 때때로 필요성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혼동을 빚어낸다. 필요와 욕구를 구분 짓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위한 대화의 시도는 난점에 빠진다.

 

만일 우리가 부의 소유에 관하여 무한한 욕구의 개념으로부터 접근하면 한계는 사라지고 무한정으로 그 척도의 수위는 올라간다. 당연히 그들의 소득과 부에 대하여 재분배를 문제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우리가 더욱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우리의 투쟁을 전개시키길 원한다면 필요와 욕구의 차이,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욕구의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과제이다.


2. 경제발전과 모방적 욕구

소득의 분배 혹은 소득의 편중은 대부분 이미 재화의 생산 과정에서 아니 대중의 성장 과정에서 아니 대중의 출생과 동시에 결정된다. (formal subsumption, real subsumption, virtual subsumption)


1970년대까지 채택된 경제 발전 모델인 ‘수입 대체 산업’의 모델. “공업혁명을 주도한 국가들에 의해 실행되어 온 경제 발전은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실상은 부유한 국가의 소수 부유층의 소비 패턴이 제3세계 국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식되는 것. 이러한 소비 패턴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의식 속에 확산시켜 놓은 소비에 대한 열망과 정신 분열적으로 가속화된 소비 추구성향에 의해 조건지어졌으며, 소비가 경제 활동 자체와 문명화 과정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와 증가해 가는 사회적 소외 현상은 주변 사회에 기술적 진보가 이 같은 형태로 도입되면서 빚어낸 잘못된 결과이다. 선진국과의 노동 평균 생산성의 차이로 인해 후진국에서 생겨나는 소득의 불공평한 분배는 이 사회 내의 엘리트 계층들을 먹여 살리고 그들로 하여금 마음껏 소비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선진국의 소비문화를 모방한 것이 결국은 소득의 편중적인 분배와 사회적ㆍ경제적 이원화(20 대 80 사회)를 초래했다. 문제는 소비의 모방 욕구가 근대성의 중심부에 있다는 것이다. 근대성의 중심 이데올로기는 진보와 유토피아에 대한 낙관적 희망이다. 물론 그러한 희망은 기독교적 종말론에서와 같이 피안적 세계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술의 진보를 통해 현세의 가까운 미래에 달성될 그 무엇인 것이다. 그 가까운 미래로 우리를 인도하는 길은 오직 기술발전을 통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기술개발 논리의 핵심이 바로 이 모방 욕구에 있다. 원시 인류에서 모방 욕구가 차이의 상실을 가져왔고 결국은 폭력을 초래했다는 지라르의 점유의 모방 욕구 가설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대중들에게 끊임없는 소비의 모방 욕구를 작동시키며 소비문화 자체를 그 자신(자본주의)의 내적 실재로 삼아버렸다.


[지라르의 이론을 경제제도에만 옮겨놓는 것은 현실을 너무 간단하게 보는 것일 수 있다. 탈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추동하는 소비의 욕망은 단순히 재화를 소유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재화의 소유는 라이프스타일의 문제로 확장되었고, 유행은 트렌드의 차원으로 진화되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소비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주체는 소비를 향유하는 자본주의적 미학적 삶의 주인공 곧 고객으로 호명당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고객은 근대 자본주의적 권력, 즉 생명관리-권력의 관리 대상일 뿐이다.]


오늘의 사치품이 내일의 필수품이 되는 사회, 욕구가 필요로 변해가는 신비로운 전이가 발생하는 사회, 그러므로 하이에크에게 있어 모방 욕구는 이 세계가 더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로 진보하기 위한 촉진제이다. “그래서 발전의 단계에 있는 모든 사회는 배움과 모방의 과정 여하에 따라서 모방 심리의 자극을 낳는 욕구만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이 각 개인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방 욕구에 대한 자극물은 시장의 전쟁에 투입되기 위해 시장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장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욕구와 그렇지 못한 욕구를 구별한다.


지라르의 가설에서와 같이 모방 욕구의 기본적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결과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필연적인 결과 위에 기초해 있다. 필요가 아닌 상대방에 대한 모방의 욕구에서 시작한 소비문화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무한대로 확장될 욕구를 충족시켜줄 재화의 지속적인 공급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는 이러한 모방의 욕구를 능력에 따른 성과, 자유로운 경쟁의 원리 등과 같은 논리로 용납하고 이를 자본주의 발전의 촉진제로 활용한다. 자본주의에서 연대 의식 혹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 등의 개념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항상 욕구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상품이 생산되어 나오는 자본주의 경제적 역동성은 부족(항상 욕구와 비례해서)이라는 개념을 매번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부족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라이벌 의식과 폭력이 발생할 것이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현실이 빚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욕구를 덜 만족시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에 관하여 소수의 리더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로 답변을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이 사회가 많은 이들의 절망을 불가피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굳이 진보ㆍ모방 욕구의 역동성을 유지해야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지극히 합리적인 그러나 동시에 지극히 신비적인 논리로 답변을 한다. “이미 우리는 근대성의 진보라는 신화 속에서 기술 진보가 우리에게 지상 낙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살아간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이다. 세계 대중의 욕망의 좌절로 인한 심각한 국제적 분쟁이나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오로지 빠른 물질적 진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세계 평화와 인류 문명의 생존이 빠른 속도의 진보에 달려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엘리트들은 바로 이러한 시온으로 대중들을 인도하는 예언자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지금 가나안을 향한 고난의 행군을 계속 하고 있으며 이 행군의 대로에서 발생하는 생태계의 파괴나 능력의 부족으로 낙오하고 소외되는 자는 진보를 향한 필연적 희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시장을 절대화시킬 때, 그리고 그 논리가 초인적 결과를 나타내며 그 논리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저항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그 어떤 전능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종국에는 신자유주의자들조차도 시장 체제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무력함을 고백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축적의 논리, 원가와 이윤의 합리성이 인간의 삶보다 우선적이라는 가치관을 이끌어내는 이 전능함은 우리가 시장에 대해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만들어낸다. 시장의 전능함이 만들어내는 우리의 무력함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사람들의 사회로의 통합이나 소외당한 자들의 생존, 인간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생태계의 보전을 위한 그 어떤 시도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전능함의 무력함”이다.


사회의 이원화와 위기를 조장하는 시장의 비극적 폭력이 없는 발전의 개념을 거부하고, 현실의 불평등한 상황을 온몸으로 감수해나가며 여전히 모방성의 욕구에 근거한 경쟁의 발전모델을 지지하는 대중들에 관해서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3. 낙원의 약속과 필연적 희생

세 가지 가설

1) 경제 성장의 역동성과 관계하여, 대중의 필요성으로 변화된 욕구를 충족시키게 되리라는 약속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의 가시화. 그러나 이것 또한 기만적인 신화의 일부이다.

 

2) 모방 욕구와 결부된 근대성의 특성과 연관된 가설. 전근대 사회에서는 무분별한 욕구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사태를 막고자 제도적 방법을 통해 합법적으로(공권력의 권위로) 그리고 무의적으로 개인의 불만과 의태적 욕구를 잠재우는 재산 분배의 메커니즘을 생성, 작동시켜 왔다. 그러나 근대 사회 대중들의 욕구는 진보의 신화와 함께 이러한 억압과 금기마저 뛰어넘기에 이른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장벽이 무너져야 자신들의 욕구영역이 더 넓어지고, 욕구 자체의 결백함도 인정받으리라 믿는다. 제도나 법을 통한 강제적인 욕구의 억압 대신에 기술 진보를 통한 재화의 생산에 승부를 건 것이다. (이는 마치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분석한바, ‘성’을 전략으로 삼아 생명의 강화를 떠맡음으로써 행사되는 권력의 형태, 즉 ‘생명권력’(bio-power)이 <감시와 처벌>에서 묘사한 바, 판옵티콘을 중심으로 운위된 병과 죽음을 담보로 한 억압적 규율권력을 대체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문화적 금기 사항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실현시키지 못한 좌절한 이들, 곧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자본주의 사회의 죄인이자 패배자로 인식한다. 그는 자신의 현재 궁핍한 상황을 사회가 받아들인 발전 모델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저지를 잘못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그는 이 발전의 모델에 대한 저항마저도 포기한다.


그러나 사회의 상당수가 유토피아로의 약속 이행의 지연과 가난한 자들의 자책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진보가 가져단 준 혜택에 대한 참여와 욕구와 필요의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하면서 문제에 대하여 보다 ‘계급적인’ 관점을 제기하는 것에 이르면 자본주의적 강제의 합법화는 한계에 다다른다. 물론 자본주의는 국가권력으로 숨어들어가고, 국가는 자본주의를 지키고자 폭력을 사용한다.


3) 만약 발전이 모방 욕구의 역동성 안에서 가장 유능한 자들의 생존과 경쟁 법칙의 결실이라고 한다면, 거기서 능력이 떨어지는 자들의 희생이 그 발전 과정의 역동성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 변한다는 논리를 추정해낼 수 있다. 필연적인 희생의 논리는 모방 논리의 모순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게 되고, 빈민층은 가난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생각을 내면화하기에 이르고, 자신들이 필연적 희생의 제물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당연히 이 메커니즘 내에서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된다. 이미 자신들에게 주어진 혜택이 정당한 공로라고 생각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강요되는 희생이 공정한 것이라는 논리를 갖고 있는 것기 때문이다.    

 

[세속화에 관한 새로운 정의: 전통의 종교가 이미 사회 질서의 기반이 아니라는 사실이 꼭 새로운 기반이 예전에 종교계에 부여되었던 특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신성시된 교회의 중재 역할을 통한 신의 개입을 필요로 했던 천국의 실현이 이제는 발전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구원적 발전은 시장 안에서, 그리고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사회의 새로운 기반이 된 시장은 종교적 성스러움을 회복한 것이다. 결국 현대적 의미의 세속화란 사회가 신성함 혹은 종교성을 배제하는 것-막스 베버의 'Entzauberung', 불트만의 'Entmythologisierung'-만이 아니라, 종교와 신성함 혹은 성스러움을 담지하는 영역이 교회에서 시장으로-맑스의 ‘fetishism’-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로-지젝의 디지털 이단-이동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논리의 주장이 (필연적) 희생을 진정한 종교적인 희생의 개념으로 변화시키는 종교적 논리와 용어로 가득 차 있다.(힌켈라메르트, 물신:죽음의 이데올로기적 무기)

 

4. 금기와 인간의 존엄성

모방욕구가 형태를 달리하여 현대 자본주의에 기생하듯이 희생양 메커니즘의 금기 또한 다른 형태로 이 사회에 잔존하고 있다. 물론 이미 푸코가 잘 분석한 바대로, 금지나 억압이 아닌 개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욕망을 말하게 하고, 그것의 고백과 실천에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하여 마침내 시장의 원칙대로 규격화된 소비대중이 되어 가게 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상품은 상품 자체의 사용가치로서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상품은 그 상품을 사용하는 자의 삶의 스타일을 표상하는 대리인이 된다. 어떤 상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의 신분과 삶의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이다. 상품의 미신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5. 기독교를 위한 도전

1)과거 전근대 사회에서는 순결한 사회에 위험을 가져올지 모르는 모방 욕구를 길들이고자, 종교적 금기를 통해 대중의 정치적 권리마저 통제하려 했다. 물론 이 길은 잘못된 길이다.


2)사회적 소외를 극복하면서 이러한 과정에 맞서기 위한 가능한 방법 중 하나는 우리의 과장된 소비문화 안에 숨어 있는 희생 메커니즘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이다. 윤리적 정치학의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이런다고 해서 이미 끝없는 질주를 시작한 대중의 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빈곤한 자들과 자연과 단결된 회합과 공감 속에서 소유의 본능으로부터 탈피를 경험한 이를 모범적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전략이 있다. (아사시의 성 프란시스, 예수, 바울 같은 이들)


[물론 이러한 전략도 명백히 한계를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현재의 빈자가 반드시 욕구의 시장의 희생자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희생자라고해서 욕구가 없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과 제안.

1. 과연 저자의 논지대로 욕구와 필요성은 명백히 구분될 수 있는가? 그가 말하는 필요성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보편타당한 척도나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인가? 과연 나의 욕망을 욕구인지 필요성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초월적 권력자는 누구인가? 혹시 그것은 판옵티콘의 눈은 아닌가?


2. 성정모의 말인즉슨, 자본주의의 대중들이 자신의 욕구가 필요성인지 욕망인지를 점검하고, 마치 중세시대와 같이 욕망을 강제로 제거하거나 쾌락의 강도를 감소시키는 규격화된 성인의 모델을 모방하는 그런 수동적인 주체의 삶을 우리는 또 반복하란 말인가? 이 무슨 망발인가?    


3. 차라리 우리는 푸코가 제안하듯이 개인으로 하여금 쾌락을 활용할 줄 알고 자기를 배려할줄 아는, 그래서 자기와 타자를 그리고 공동체를 시의적절하게 통치할 수 있는 실존의 미학적 삶을 구축하도록 윤리적 정치학을 기획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자-되기”의 정치학을 심화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여성-되기, 남성-되기, 아이-되기, 동물-되기, …)


4. 성정모는 지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푸코가 그토록 비판한 사제권력을 통한 대중의 욕망통제를 기획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건 나의 오버일까? 우리는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바람직한 윤리학을 기획하고, 어떤 특정한 코드에의 복종으로서 실현되는 윤리가 아닌 개인 삶의 개별적 형성을 목표로 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윤리학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동시에 그러한 개인의 자유로운 삶이 동일화의 논리로 포섭당하면서 그 안에서의 생존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소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공적 구조와 제도를 보완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성정모 역시 후자에는 분명 동의할 것이라 믿는다. 문제는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이론적 기반이 이미 푸코에 의해 그 기만성이 철저히 폭로된 기독교적 주체의 윤리학, 곧 생명관리권력으로서 개인에 관한 정치의 테크놀로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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