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란 무엇인가
앤서니 엘리엇 지음,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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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이래로 근대 철학에서 ‘자아’(self)는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지각하고 세계 내의 자율적인 존재로서 완전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성과 지적 능력의 인도를 받는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돼 온 용어이다. 물론 철학사에서 이러한 자아 개념은 끊임없이 비판되고 수정되어 왔다. 그래서 현대 철학에서는 ‘자아’라는 개념 대신에 ‘주체’(subject) 혹은 ‘주체성(subjectivity)’이라는 개념이 좀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아와 주체에 대한 개념적인 구분은 다음과 같다. 자아는 흔히 “내가 말이야”라고 말할 때의 그 ‘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관습적인 관점에서 ‘자아’는 언어를 생각의 전달 도구로 사용한다. 자아는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자기가 말하는 바를 의도한다. 곧 자아는 주인으로서의 ‘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의 장소를 ‘주체’로 표시하는 것은 관점의 일대전환을 요구한다. 주체들은 자기를 형성하는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것, 즉 ‘무의식’이라 이름 붙여진 차원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즉, ‘나도 나를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의 목적어 ‘나’가 주체인 것이다. 그 무의식으로서의 ‘나’가 표시하는 것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 욕망과 긴장, 에너지, 억압 등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경험은 ‘자아’로서 인식되는 경험이 아니라, 주체 자신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소유하는 경험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이처럼 자아에서 주체로 가는 철학적인 사유의 비판적 발전의 맥락과는 별도로 여전히 ‘자아’라는 개념의 이론적, 분석적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만나 볼 책이 바로 그러한 자아 개념의 철학적 해체의 유행을 거스르며(혹은 자극을 받으며), 자아의 사회적 구성에 관한 물음, 개인이 자아의 서사를 짜는 데 사용하는 상징적인 재료들에 관계된 논쟁, 자아 형성이 문화와 사회의 재생산이나 붕괴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관련된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사회과학적 자아 개념과 이론의 연구들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 대학의 사회정치 이론 교수이며, 비판이론 센터 소장으로 재직 중인 사회학자 앤서니 엘리엇이 쓴 이 책(원제『자아의 개념들 Concepts of the Self』, 2001)은 사회과학에서 개념화ㆍ이론화해 온 ‘자아(the Self)’에 대한 현대의 논쟁을 명료하게 소개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사회ㆍ정치 이론,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연구, 젠더연구 등의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자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을 위한 유용한 입문서인 이 책은 학제간의 관점들을 통합하는 새로운 길을 터놓고 있다. 저자인 앤서니 엘리엇이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전공분야인 상징적 상호작용론, 근현대 사회학이론을 넘어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스트 이론과 퀴어 이론, 정신분석학(프로이트-라캉-지젝으로 이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정체성의 정치학 등의 다양한 사상적 전통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아에 관한 폭넓고도 명료한 논의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엘리엇은 자아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회 이론가와 문화 분석가들에 초점을 맞추어, 자아 정체성과 자아성과 사적 정체성의 경험을 해명해 온 주요한 연구들을 상세하게 조망하는데, 그전에 먼저 자신이 지지하는 주요한 사회학적 전통의 견지에서 자아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전제하고 있다. “자아는 개인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벼려 내는 상징적인 기획이다. 자아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더 넓게는 사회를 인도하는 지향점을 주는 상징적인 기획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아는 상징적으로 공들여 만들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 동기와 다른 사람들의 행위 동기를 해석하기 위해서, 정체성의 서사를 이야기하고 다시 이야기하느라고 상징적인 재료들(언어, 이미지, 기호)을 이용한다. 어떤 논평자들은 그러한 상징적 또는 해석적인 영역들이 자아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본질적인 매개체가 아니라는 주장을 해왔다. 이러한 주장에는, 자아를 개인의 자기 해석이나 개인을 둘러싼 사회 세계와는 상관없이, 대상으로 놓고 연구할 수 있다는 가정이 들어 있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상 내가 이 책에서 개진하려고 하는 한 가지 주장은, 개인적인 주체나 인격체의 자기 해석과 분리해서는 자아를 충분하게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론, pp.12-13)

이러한 자아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를 가지고 1장 ‘자아, 사회, 일상생활’에선 자아 문제가 어떻게 사회학 안으로 들어왔는지를 살핀다. 엘리엇에 따르면, 20세기의 사회학 이론들은 자아의 구성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무기들을 제공했다. “나는 자아가 사회적 또는 정치적 개념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개념이라는 그러한 생각에 의문을 던지면서 이 책을 시작했다. 또한 나는 개인적 주체성이란, 자아가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행위 주체가 아니라, 문화의 의무 사항과 사회적 삶의 요구들을 개인이 내면화하고 그 과정에서 대응하는 방식의 산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이 모든 사회학의 중심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아의 사회학은 친밀성과 사적 생활의 변동을 열심히 탐색하지만, 자아 경험의 내적 세계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회학적 자아 이론의 맹점은 자아의 비합리적인 욕망과 사회문화적 질서의 억압적 성격을 간과한다는 데 있다. 정신분석학이 문제 삼는 것이 다름 아닌 사회학에서 말하는 단정하고 단단한 이성적 자아이다. 사회학적인 접근과는 달리 정신분석학은 자아를 무의식적인 억압과 환상에 의해서 형성되는 허구적 구성물로 파악한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자아의 자율성과 고결성과 독립성이야말로 인간의 나르시시즘이 만들어낸 환상이자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장 ‘자아의 억압’에서는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억압된 무의식은 자아가 자기 이해와 자기 인식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프로이트의 생각은 다양한 문화 분석가와 사회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허버트 마르쿠제부터 슬라보예 지젝에 이르기까지 자아에 대한 프로이트의 생각은 급진적인 사회 비평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적 연구가 이룬 개념적인 성과와 한계를 모두 보여준다.

3장 ‘자아의 테크놀로지’의 주인공은 미셸 푸코. 그가 자아, 권력, 언어 혹은 담론의 분석에 기여한 바를 검토한다. 개인이 권력의 체계를 통해 자아와 개인적 주체성의 수준에서 자신을 가두어 놓는다는 사실과 그러한 권력의 체계를 밝혀내려는 푸코의 시도를 논의한다. 푸코는 자아가 어떤 권력기제와 테크놀로지를 통해 생산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푸코에 의하면 의료 가부장들, 종교 사제들, 상담 치료사 등과 같이 테크놀로지를 가진 전문집단과 제도적 장치들은 자아의 전방위 감시체계이다. 이렇게 본다면 푸코에게 치료사(therapist)는 치료의 미명 아래 개인에 대한 지식과 고백을 얻어내는 정신의 강간범(the rapist)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대해 엘리엇은 푸코의 선정적인 주장과는 달리 자아가 사회 권력에 일방적으로 순응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4장 ‘자아, 섹슈얼리티, 젠더’에선 낸시 초도로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또한 젠더 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에 대한 주디스 버틀러의 주장을 살펴보고 있다.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급진적 이론가들이라고 볼 수 있는 버틀러와 시지윅은 남성 중심적인 자아 이론에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도입함으로써 퀴어 정치성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엘리엇은 과격한 좌파 페미니스트들의 추상적 급진성이 오히려 반동적인 현실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탈근대성에 관한 논쟁을 다루는 5장 ‘탈근대적 자아’에서 저자는 왜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아성에 대한 오늘날의 경험에 정서적 활기를 불어넣으면서도 동시에 경험을 어지럽히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범주로서의 자아 개념을 인정하는 것이 실천의 장을 여는 데 유효한 것으로 이해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자아를 근대적이나 후기 근대적, 혹은 탈근대적이라고 하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체성들의 놀라운 혼합이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정신 상태와 자아 형태들은 종종 광적인 파괴와 폭력적 합리성에 사로잡힌 채로 계속된다. 전 세계에 걸친 인종적·민족적 갈등이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자아 정체성과 자아의 새로운 형식들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탈전통적이고 탈근대적인 방식들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완전히 탈근대적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탈근대적 사회 세계가 언뜻언뜻 보인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회과학의 도전은, 달라진 사회적 환경이 지구를 휩쓰는 상황 속에서 탈근대적 자아, 혹은 자아들의 다원성과 다양성에 새로이 직면하는 것이다. (5장 탈근대적 자아, pp.235-236)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미덕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책은 자아라는 자칫 딱딱하고도 복잡하게 느껴질 법한 사회학적 개념을 대중들에게 흥미롭고도 유용한 성찰의 주제로 소개하고 있다. 둘째, 이 책은 주제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독자에 자아 및 자아 정체성과 관련된 최근의 사회학 및 문화 연구 분야의 이론 지형을 가늠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조지 허버트 미드, 허버트 블루머, 어빙 고프먼, 앤서니 기든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빌헬름 라이히, 자크 라캉, 슬라보예 지젝, 미셸 푸코, 낸시 초도로우, 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장 보드리야르, 브라이언 터너, 지그문트 바우만 등 엘리엇이 다양한 이론을 재단하는 잣대는, 독자가 엘리엇의 주제에 동의하는 만큼의 설득력을 갖게 된다. 나아가, 이 책에서 저자의 논지에 동의했던 독자라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화가 일상의 차원에서 정치적인 관심사로 복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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