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게임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61
오정희 외 지음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화자인 ‘나’는 연로한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나’는 혼기를 놓치고 악성 빈혈에 시달리는 노처녀이며, 아버지는 위장을 반넘게 잘라 내고 정기적으로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는 삶에도 집요한 애착을 갖는 환자이다. 어느 날 문득 슬그머니 사라진 오빠로 인하여 '나'와 아버지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어머니는 이미 죽은 지 오래고 오빠마저 가출해버린 집에서, 두 부녀는 오빠의 부재를 순간순간 확인하며 저녁식사를 한다. ‘나’는 생활 곳곳에서 오빠의 존재를 확인하며 놀라고 아버지 역시 하루에 열 번 정도는 우편함을 열어 보고 화투패의 운수를 떼면서 오빠를 기다린다. 공연한 기다림으로 서성대는 아버지를 '나'는 공범끼리의 적의와 친밀감으로, 그리고 언제든 준비되어 있는 배반감으로 지켜본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부녀는 습관처럼 화투를 가지고 놀이를 한다. 이 화투 놀이라는 것이 실은 뒷면만 보아도 훤히 알 수 있는 화투장을 갖고 하는 것으로서, 속임수임을 서로 알면서 벌이는 일종의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날도 둘은 저녁 식사를 끝내고 늘 그러했던 것처럼 ‘저녁의 게임’인 ‘천끗 내기’ 화투 놀이를 시작한다.

오로지 아버지의 심심함을 덜어줄 목적으로 하는 무의미한 화투 놀이가 끝나자 화자는 아버지 몰래 조용히 집을 빠져 나와 어딘가로 향한다. 화자가 도착한 곳은 들판이 끝나는 곳, 바로 야산의 밋밋한 언덕받이의 주택공사장이다. 그곳에서 화자는 몇 번 관계를 맺은 바 있는 공사장 인부와 만나 ‘틀만 짜넣은 창문과 뚫린 지붕’만 있는 공간에서 ‘대팻밥과 각목토막들을 발로 지익지익 밀어 치워’ 놓고 정사를 벌인다. 남자에게 약값을 할 돈을 달라고 하지만, 그것을 화대를 달라는 요구로 알아들은 남자는 모레가 간조니 그때 오면 주겠다는 말을 하며 돈을 주지 않는다.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아버지가 눈치 채지 않게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서, 책상서랍을 열고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읽는다.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의 실체가 드러나고 '나'는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과 만난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재수패를 떼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찬 방바닥에 몸을 뉘인 채, “스커트를 끌어올리고 스웨터도 겨드랑이까지 걷어” 올리고는 “내리누르는 수압으로 자신이 산산히 해체되어 가는 절박감에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내쉬며” 자위행위에 빠져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