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벽 세시에 소스라치듯 놀라 일어났다.

전날 10시도 안되어 잠이 든 탓이기도 하지만, 나를 불안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난 그게 뭔지 바로 알아차렸다.

“휴대폰이 어디 갔지?”

가방에도, 화장실에도, 다른 방에도 내 휴대폰은 없었다.

안그래도 지난 수요일 버스에 휴대폰을 놓고 내려 고생을 했는데, 이번엔 또 어디다 흘렸을까? 게다가 이번엔 두 개 모두 없다!




집 전화를 가져다가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다가 관뒀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어도 자느라 못받을 것 같아서.

전화를 거는 대신 전날의 행적을 곰곰이 떠올렸다.

친구 셋과 더불어 술을 마셨고, “달렸다”고 할만큼의 양이었지만

9시 쯤 집에 온 탓에 취할 새도 없었다.

집에 올 때도 친구들과 같이 택시를 탔고, 내가 가장 먼저 내렸는데

택시에 놓고 왔다면 친구들이 챙겨줬을 거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점점 “2차 갔을 때 다른 테이블에 놓고 왔을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2차에서 전화를 한통 받았는데,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했던 것.

아무래도 그때, 전화기를 놓고 안가져온 모양이다.

속이 상했다. 그 안에 적혀있는 600여개의 전화번호들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다시금 잠이 들었을 때 휴대폰 2개를 모두 찾는 꿈을 꿨을 정도.


‘날이 밝으면 학교 가는 거 때려치우고 휴대폰이나 찾아야겠구나.’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하는데, 엄마가 내 전화기 두 대를 가지고 방에 들어오신다.

“아니 엄마! 그걸 왜 엄마가 갖고 계세요?”

“니가 어제 자는데 계속 전화벨이 울리잖아. 푹 자라고 전화기 엄마방에 감춰놨다.”

전화기를 보니 부재중 통화가 무려 15통, 그 중 14통이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이형택이 경기 시작하면 나 좀 깨워달라”고 부탁했던 내 친구였다.

“전화가 새벽 한시까지 오더라.”




배려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전화가 계속 오니 급한 전화인 걸로 생각하고 날 깨워줄 그런 배려와

보나마나 술마시러 나오라는 걸로 생각하고 전화기를 감춰 버리는 배려,

우리 어머니의 배려는 후자 쪽이었고

그간의 내 행태로 보아 그건 지극히 타당한 판단이었다.

그 배려 때문에 몇시간 동안 속상했고-휴대폰을 잃어버린 줄 알고-

이형택의 멋진 경기를 보지 못하는 등의 손해를 봤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 아무리 그래도 할머니의 배려는 좀 문제다.

선풍기를 얼굴에 쏘이지 않으면 잠을 못자는데

자꾸 선풍기를 꺼버리는 바람에 번번이 잠에서 깬다.

그러지 말라고 사정사정 하는데도 그 배려는 그치질 않고

오늘 아침에도 그래서 깼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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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0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친구분 잘 두셨는데요!

2007-07-01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7-07-0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배려에 대한 독특한 글 재밌게 보고가요
휴대폰 잃어버리셨다면 제가 다시 이곳에 번호 남기고 가려 했는데 다행이네요ㅎㅎ

Mephistopheles 2007-07-0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배려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종종 있죠..^^

무스탕 2007-07-0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통의 전화중 1통이 유일한 미녀분 전화?? ^^

비로그인 2007-07-0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풍기 얼굴에 쐬면 얼굴 부어요.

부리 2007-07-02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서님/제가 그래서 얼굴이 큰가봐요...
무스탕님/비밀이옵니다^^
메피님/님의 배려는 별로 부담 안됩니다 많이 배려해주세요!
춤인생님/님 번호는 절대 안까먹을 거예요!! 호호호
치카님/풍이라....선풍기는 바람이고 바람은 풍이니 풍이 맞겠군요 으음....그래도 더운데 어떡합니까...
아프락님/그 중 여덟통은 님이잖아요!

2007-07-03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