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군가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미녀분한테서 미야베 미유키, 그분 표현대로 ‘미미 여사’의 책을 선물받았다. <누군가>는 그러니까 내가 읽은 미미 여사의 첫 번째 책인 셈이다.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시절 내가 읽은 거라곤 <삼국지> 네 번하고 추리뿐이었는데, 책을 마음잡고 읽고 나서부터 추리책을 읽는 경우는 점점 드물어진다. 그분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난 미미여사의 책을 모른 채 살았을 거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미미여사의 책이 나름대로 괜찮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읽은 셜록 홈즈는 사소한 사건도 곧잘 해결했다. <붉은 머리 클럽>의 범인은 머리 색깔을 이용해서 은행을 털어보고자 했고, <빈사의 탐정>에선 홈즈가 친구인 왓슨을 속여먹는 게 내용의 전부다. 하지만 요즘의 추리물들은 무지 스케일이 커서, 소박하게 한두명 죽이는 범인엔 별반 관심이 없다. <양들의 침묵>-이건 추리물인지 사실 좀 헷갈린다-의 범인을 보라. 사람을 죽이는 것도 그렇지만 피부까지 벗긴다. <본 콜렉터>의 링컨 라임이 상대해야 하는 범인도 흉악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살인마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되어 버렸는데, 미미 여사의 <누군가>는 사건 자체로만 보면 정말 밋밋하기 그지없다. 65세 노인이 자전거에 치여 죽는다. 이 사건을 탐정도 아닌 재벌 회장의 사위가 파헤친다. 머리가 좋아 나를 좌절시키는 포와르 류도 아닌, 그저 옆집 아저씨같은 남자가. 이런 것도 추리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지루하지 않은 건 책의 주인공들이 실제 인물처럼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이다. 여느 추리소설과 달리 삶 속에서 발생하는 주인공들간의 미묘한 갈등이 있고, 또 그걸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미 여사의 글재주까지. 예컨대 다음 표현을 보시라.
“우리는 애를 일찍 재운 젊은 부부에게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27쪽).”
책에 대한 미미여사의 관점도 드러나 있다.
“책은 늘 나와 내가 모르는 세계를 연결해 주는 친절한 중개자였다 (391쪽).”
이 문장 뒤에 미미 여사는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써놨다.
“나호코(회장 딸)가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다 해도 나는 결혼까지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야클님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뒤 결혼했다. 책을 읽자. 어서!